개성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 역사유적지, 고려시대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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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3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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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역사유적지, 고려시대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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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역사유적 지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개성 일대에 집중된 고려 시대의 중요한 유적지입니다. 2013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이는 북한의 두 번째 세계유산이기도 합니다. 고려의 정치와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12곳의 유적들로 구성되어 고려 왕조의 수도였던 개성의 역사적 가치를 세계에 알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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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성벽 건설 시작]

고려 개창자 왕건이 송악의 호족 시절, 아버지 왕륭을 따라 궁예에게 귀부하며 송악에 발어참성 건설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훗날 개성 성벽의 기원이 됩니다.

이 성벽은 고려 왕조 전 시대는 물론 조선 왕조가 세워지는 1391년~1393년까지 내성(内城)이 세워지는 등 증축과 보수가 이루어졌습니다. 현재 내성의 성벽 다섯 곳, 총 175.8ha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919

[만월대 완공 및 관측]

고려 태조가 왕조의 대궐터인 만월대를 세웠습니다.

만월대 가까이 있는 첨성대에서는 같은 해부터 천체와 기상 관측이 고려 전 시대에 걸쳐 이어졌습니다.

만월대는 송악산 남쪽 기슭에 위치했으며, 공민왕 10년(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불타 폐허가 되었습니다. 세계문화유산 등록 면적은 만월대와 개성 첨성대 합쳐 43.5ha입니다.

1361

[만월대 홍건적 소실]

공민왕 10년, 중국 본토에서 쫓겨온 홍건적이 개경을 함락하고 고려 왕궁의 심장부인 만월대를 불태웠습니다.

이 사건 이후 만월대는 재건되지 못하고 주춧돌만 남게 되었습니다.

1372

[공민왕릉 완공]

고려 제31대 개혁군주 공민왕이 사망하기 2년 전, 자신과 왕비 노국대장공주의 합장무덤인 현릉(玄陵)을 완성했습니다.

개성 시가지 중심에서 남서쪽으로 14km 떨어진 개풍군 해선리에 위치한 이 능은 총 3단으로 구성되어 왕과 왕후의 두 봉분이 서로 근접해 있으며, 석인 등의 석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세계유산 등록 면적은 51.6ha입니다.

1391

[개성 남대문 수축 시작]

고려 왕조 말기인 공양왕 3년부터 내성(内城)의 남문인 개성 남대문의 수축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한반도에 남아있는 성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기도 합니다.

이 수축 작업은 왕조가 멸망한 이듬해인 조선 태조 2년(1393년)에 완료되었으며, 당대의 건축 양식을 잘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등록 범위 면적은 0.5ha입니다.

1392

[고려 왕조 멸망]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이 이성계에게 폐위되며 고려 왕조가 멸망했습니다.

왕건이 수도로 삼았던 개성은 천여 년 고려 왕조의 흥망성쇠를 함께 했습니다.

이성계는 3년 뒤 조선을 선포하고 한양으로 천도하였습니다. 고려 멸망 이후 왕궁을 비롯한 유적들은 거의 대부분 재건되지 못했습니다.

1393

[개성 남대문 수축 완료]

조선 태조 2년, 고려 말기부터 시작된 개성 남대문의 수축이 완료되었습니다.

1573

[숭양서원 건물 건립]

고려 말 유학자 정몽주의 옛 집터 위에 조선 시대의 서원인 숭양서원의 현재 건물이 선조 6년에 세워졌습니다.

숭양서원은 조선 시대 반가의 자제를 위한 유교 교육 공간이자 정몽주를 비롯한 유학자들을 제사지내는 사당으로 기능했습니다. 세계유산 등록 면적은 2.9ha입니다.

1740

[선죽교 표충비 건립]

정몽주가 이방원의 자객에게 최후를 맞이한 선죽교 가까운 곳에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표충비 중 북쪽 비석이 영조 16년에 세워졌습니다.

선죽교는 화강암 돌다리로 폭 3.36m, 길이 8.35m입니다. 두 개의 표충비 중 남쪽 것은 1872년(고종 9년)에 세워졌습니다. 선죽교와 표충비의 세계유산 등록 범위는 모두 합쳐 1.8ha입니다.

1872

[선죽교 표충비 건립 (남)]

정몽주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표충비 중 남쪽 비석이 고종 9년에 세워졌습니다.

1994

[태조 왕건릉 개건]

고려 왕조 개창자 태조 왕건과 신혜왕후 류씨의 합장 능묘인 현릉(顯陵)이 북한 정부에 의해 현재의 모습으로 개건되었습니다.

현릉은 만월대 서쪽 3km에 위치하며, 능역과 함께 북서쪽의 칠릉군(일곱 기의 왕릉 추정)과 남서쪽의 명릉군(충목왕릉 포함)을 합친 총 214.6ha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칠릉군은 12~13세기 건립 추정이나 피장자가 불확실하며, 명릉군도 충목왕릉 외 2기의 피장자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2004

[고구려 고분군 등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첫 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고구려 고분군이 등재되었습니다.

2007

[개성 유적지 첫 신청]

북한이 개성 역사유적 지구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신청했습니다.

2008

[개성 유적지 등재 보류]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개성 역사유적 지구에 대한 등재 보류 판정을 내렸습니다.

2012

[개성 유적지 재신청]

등재 보류 판정을 받았던 개성 역사유적 지구가 다시 세계유산으로 등재 신청되었습니다.

2013

[개성 유적지 세계유산 등재]

제37차 유네스코 세계유산 위원회 프놈펜 회의에서 개성 역사유적 지구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공식 등록되었습니다.

이는 2004년에 등재된 고구려 고분군에 이어 북한의 두 번째 세계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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