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죽교
교량, 문화유산, 역사 유적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38:58
선죽교는 고려 시대에 지어진 유서 깊은 돌다리입니다. 고려 충신 정몽주가 암살된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으로 유명합니다. 다리에는 그의 핏자국이 남아있다는 전설과 대나무가 솟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현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919
[선죽교 추정 축조]
고려 태조 왕건이 송도(개성) 시가지 정비 과정에서 선죽교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전형적인 널다리 형태로, 그 역사가 천 년을 넘는 유서 깊은 다리이다.
1392
[정몽주 피살 사건]
고려의 충신 정몽주가 이방원의 지시를 받은 조영규 일파에게 선죽교 위에서 암살당한 비극적인 사건.
그는 이성계의 집에서 돌아오던 길에 변을 당했으며, 그의 피가 다리에 얼룩으로 남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 사건 이후 다리 이름이 '선죽교'로 바뀌었다고 한다.
정몽주는 이성계의 문병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이방원의 계략에 휘말렸다. 그는 술을 마시고 말을 거꾸로 타는 기이한 행동으로 죽음을 직감했음을 암시했으나, 결국 선죽교에서 조영규 일파의 철퇴에 의해 살해당했다. 다리 돌에는 그의 핏자국이 남아있다는 전설이 있으며, 그의 충절을 기리듯 다리 옆에서 대나무가 솟아났다고 하여 원래 '선지교'였던 다리 이름이 '선죽교'로 바뀌었다.
1780
[선죽교 돌난간 설치]
정몽주의 후손인 정호인이 개성유수로 재직하며 선죽교 위에 돌난간을 설치했다.
이는 사람들이 더 이상 비극의 현장이 된 이 다리를 밟고 다니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으며, 옆에 새로운 다리를 놓아 통행하도록 했다.
1947
[김구, 선죽교 방문]
독립운동가 김구가 선죽교를 방문했을 때, 정몽주가 흘린 피얼룩이 여전히 남아있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는 비극적인 역사의 흔적이 오랫동안 보존되었음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1971
[북한 국보 지정]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선죽교를 국보로 지정하며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했다.
초기에는 국보급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되었으나, 이후 국보 문화유물 제159호로 변경되었다.
2013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선죽교는 개성역사유적지구의 일부로서 201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이는 선죽교가 가진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