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
사찰, 불교 사찰, 문화유산, 역사적 장소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38:56
백제 시대에 창건된 화엄사는 지리산에 자리한 유서 깊은 사찰입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여러 차례 중건을 거쳐 수많은 국보와 보물을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국내 현존하는 석등 중 가장 큰 규모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삼신불 작품을 보유하며 그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544
[화엄사 창건]
인도에서 온 연기 승려가 화엄경의 ‘화엄’ 두 글자를 따서 화엄사를 창건했습니다.
이는 백제 시대에 이루어진 중요한 불교 건축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입니다.
643
[자장 법사 증축]
신라 선덕여왕 12년에 자장 법사가 화엄사를 증축하며 석존사리탑, 7층탑, 석등롱 등을 건조하여 사찰의 규모를 확장했습니다.
677
[의상대사 각황전 건립]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아 각황전을 짓고, 석판에 새긴 화엄경 80권을 보관했습니다.
이로써 화엄사는 화엄 10대 사찰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875
943
[고려시대 첫 중수]
고려 태조 26년에 도선 국사의 뜻에 따라 오백선찰 건립 사업이 시작되면서, 화엄사는 기존 사찰 중 가장 먼저 중수되었습니다.
이는 고려 시대 화엄사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이후 고려 광종, 문종, 인종, 충숙왕대에 걸쳐 총 네 차례 더 중수가 이루어졌습니다.
1593
[임진왜란 화재 소실]
조선 선조 26년, 임진왜란으로 인해 화엄사가 큰 피해를 입어 장육전을 비롯한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 소실되었습니다.
청석에 새겨진 화엄경도 함께 파괴되는 비극을 맞았습니다.
지금도 간혹 남아있는 당시의 청석 조각에서는 당나라 초기의 글씨체를 엿볼 수 있습니다.
1630
[벽암선사 재건 시작]
조선 인조 8년부터 7년간 벽암선사가 화엄사의 재건을 시작하여 대웅전을 비롯한 일부 건물을 복구했고, 재건 후에 화엄사는 선종대가람으로 승격되었습니다.
재건은 인조 14년(1636년)까지 이어졌으며, 현재 화엄사의 대부분 건물은 17세기에 건축된 것입니다.
1699
[각황전 신축 시작]
조선 숙종 25년부터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던 장육전 자리에 각황전이 신축되었습니다.
이는 경복궁 근정전 다음 가는 웅장한 규모로 지어졌습니다.
숙종 28년(1702년)에 완공되었으며, 숙종 임금이 직접 '각황전'이라는 이름을 내렸습니다. 각황전은 석가모니, 아미타불, 약사불의 삼존불과 사보살 상을 모신 화엄사의 중심 법당입니다.
1701
[화엄사 중건 완성]
조선 숙종 27년에 화엄사의 중건이 완전히 마무리되어 선종과 교종 모두의 중심 사찰인 '선교 양종 대가람'으로 그 위상을 높였습니다.
1962
[주요 국보 지정]
화엄사 각황전(국보 제67호),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국보 제12호),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국보 제35호)이 대한민국의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특히 각황전 앞 석등은 현존하는 석등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합니다.
1997
[괘불탱 국보 지정]
화엄사 영산회 괘불탱(국보 제301호)이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괘불탱은 가로 7.76m, 세로 11.95m에 이르는 거대한 불화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1998
[사적 및 명승 지정]
지리산화엄사일원이 대한민국의 사적 및 명승 제7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는 화엄사 일대의 자연 경관과 문화유산의 가치를 국가가 인정한 것입니다.
2009
[명승 64호 지정]
지리산 화엄사 일원이 대한민국의 명승 제6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는 화엄사의 수려한 자연 경관이 국가 명승으로서 보호받게 됨을 의미합니다.
[사적 505호 지정]
구례 화엄사가 대한민국의 사적 제505호로 지정됨과 동시에, 기존에 지정되었던 사적 및 명승 제7호 지정이 해지되어 새로운 문화재 분류 체계에 맞게 재정비되었습니다.
2021
[삼신불좌상 국보 승격]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국보 제336호)이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되었습니다.
이 불상은 비로자나불-노사나불-석가모니불로 구성된 우리나라 유일의 삼신불 작품으로 그 역사적, 미술사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