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주사
사찰, 불교, 문화유산, 세계유산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38:55
- 대한민국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에 위치한 천년고찰 -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되어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함 - 유네스코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에 등재 - 국보 3점 보물 13점 등 수많은 문화재를 보유 - 특히 국내 유일의 고식 목탑인 팔상전(국보 제55호)을 품고 있음
553
[의신조사 법주사 창건]
신라 진흥왕 14년, 의신조사가 천축(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을 흰 노새에 싣고 다니다 지금의 법주사 터에 이르러 절을 창건했습니다. 절 이름은 부처님의 법이 머물렀다는 뜻에서 '법주사'라 지어졌습니다.
신라 진흥왕 14년(553년), 의신조사가 천축(인도)에 갔다가 불경을 백나귀에 싣고 돌아와 절을 지을 터를 찾던 중, 흰 노새가 현재의 법주사 터에 멈춰 울었고, 이에 의신조사는 그곳에 절을 지었습니다. 인도에서 가져온 경전, 즉 부처님의 법이 머물렀다는 의미에서 절 이름을 법주사라 명명했습니다.
1046
고려시대에는 많은 고승들이 법주사에 주석하며 절의 중창에 힘썼습니다. 특히 문종의 다섯째 아들인 도생승통이 법주사의 주지를 역임했습니다.
1266
고려 원종 재위 기간 중 미수대사는 왕명을 받들어 총 92권에 달하는 경전을 찬술하는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1341
[자정국존비 건립]
고려 충숙왕 1년에 세워진 자정국존비는 충혜왕의 명을 받아 국사의 반열에 오른 스님의 비문을 자연 암벽에 새긴 것으로,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를 지닌 문화재입니다.
고려 충숙왕 1년(1341)에 자정국존비가 세워졌습니다. 충혜왕의 명으로 국사의 반열에 오른 스님의 비문이 자연 암벽에 새겨져 있어 그 독특한 형태로 인해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귀중한 문화재입니다.
1363
[공민왕, 법주사에 부처님 사리 봉안]
1363년(공민왕 12년), 공민왕이 직접 법주사를 방문하여 양산 통도사에 모셔진 부처님 사리 1과를 법주사에 봉안하도록 했습니다. 당시 봉안된 사리탑은 현재도 능인전 뒤쪽에 남아있습니다.
1363년, 고려 공민왕은 직접 법주사를 찾아 양산 통도사에 모셔져 있던 부처님의 사리 1과를 법주사에 봉안하도록 했습니다. 이 사리를 모셨던 사리탑은 지금도 법주사 능인전 뒤편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1460
[세조 임금, 법주사 중창 지원]
조선 세조 임금도 법주사에 들러 복천암에 머물던 신미대사를 도와 절을 크게 중창하여, 법주사의 번영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조선시대 세조 임금은 법주사에 방문하여 복천암에 주석하던 신미대사를 지원하며 법주사를 대대적으로 중창하는 데 일조했습니다.
1592
[임진왜란으로 법주사 소실]
조선 중기 60여 동의 전각과 70여 개의 암자를 지닌 대찰이었던 법주사는 임진왜란으로 인해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는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조선 중기에는 60여 동의 전각과 70여 개의 암자를 거느린 거대한 사찰이었던 법주사는 1592년에 발발한 임진왜란으로 인해 대부분의 전각이 불타 소실되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1605
[사명대사 및 벽암각성 스님, 법주사 중건 시작]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법주사는 1605년(선조 38년)부터 1626년(인조 4년)에 걸쳐 사명대사와 벽암각성 스님 주도로 팔상전 등 주요 전각들이 다시 지어지며 복구되었습니다.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법주사는 1605년(선조 38년)부터 1626년(인조 4년)에 걸쳐 사명대사와 벽암각성 스님의 주도로 팔상전을 비롯한 주요 전각들이 중건되어 다시 옛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1723
[신법 천문도 병풍 제작]
경종 3년(1723년)에 중국인 쾨글러의 별자리표를 관상감 김태서와 안국빈이 직접 배워 그린 '신법 천문도 병풍'(보물 제848호)이 제작되었습니다. 이 병풍은 쾨글러 천문도 중 가장 크고 훌륭한 사본으로 세계적으로도 귀중한 유물입니다.
경종 3년(1723년)에 중국에 체류하던 쾨글러(I.Koegler)가 작성한 300좌, 3083성의 대규모 별자리표를 관상감의 김태서와 안국빈이 배워 직접 그린 '신법 천문도 병풍'(보물 제848호)이 제작되었습니다. 이 병풍은 쾨글러의 천문도 중에서 가장 크고 훌륭한 사본으로, 불교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세계적으로 매우 귀중한 천문 유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939
[김복진, 미륵불상 조성 추진]
1939년 당시 주지였던 장석상 스님의 의뢰로 당대 최고의 조각가 김복진이 법주사 미륵불상 조성을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1939년, 법주사의 주지 장석상 스님의 요청으로 당대 최고의 조각가로 손꼽히던 김복진이 법주사 미륵불상 조성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나, 한동안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1964
[동양 최대 미륵불상 완공 및 점안식]
1939년부터 추진되던 미륵불상 조성이 1964년 완공되었고, 높이 27m에 달하는 동양 최대의 거불 점안식이 6월에 거행되었습니다.
1939년부터 조성이 추진되었던 법주사 미륵불상은 마침내 1964년 완공되었으며, 6월에는 높이 27m에 달하는 동양 최대의 거불에 대한 점안식이 성대하게 거행되었습니다.
1966
[속리산법주사일원 사적 및 명승 지정]
1966년 6월 24일, '속리산법주사일원'이 사적 및 명승 제4호로 지정되며 법주사의 역사적, 경관적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1966년 6월 24일, 속리산법주사일원이 대한민국의 사적 및 명승 제4호로 지정되어 그 역사적, 문화적, 자연적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1984
[팔상전, 유일한 고식 목탑으로 남다]
우리나라 유일한 고식 목탑으로 쌍봉사 대웅전과 함께 두 기였으나, 1984년 쌍봉사 대웅전이 불타는 사고로 인해 법주사 팔상전(국보 제55호)이 현존하는 유일한 목탑이 되었습니다.
법주사 팔상전(국보 제55호)은 과거 쌍봉사 대웅전과 더불어 우리나라에 남아있던 두 기의 고식 목탑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1984년에 쌍봉사 대웅전이 화재로 소실되면서, 법주사 팔상전은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식 목탑이라는 기록적인 가치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2009
[보은 법주사, 사적 제503호로 지정]
2009년 12월 21일, '보은 법주사'가 사적 제503호로 지정되며 그 중요성이 부각되었고, 기존 '속리산법주사일원'의 사적 및 명승 지정(4호)은 해제되었습니다.
2009년 12월 21일, 법주사 자체가 '보은 법주사'라는 명칭으로 대한민국의 사적 제50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기존의 '속리산법주사일원'(사적 및 명승 제4호) 지정은 해제되었습니다.
2018
[법주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2018년, 법주사가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2018년, 법주사가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공식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이는 한국 불교 산사의 고유한 문화적 가치와 건축 미학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중요한 사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