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
사찰, 불교, 문화유산, 승보사찰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38:54
한국 불교의 대표 승보사찰 송광사는 전남 순천 조계산 자락에 자리 잡은 유서 깊은 사찰입니다.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 이후 16국사를 배출하며 한국 불교의 중심지로 우뚝 섰으며 국보 4점을 포함한 수많은 문화재를 품고 있어 박물관 같은 위용을 자랑합니다. 그 역사와 가치를 직접 경험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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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엽, 혜린대사가 조계산 북쪽 기슭에 작은 암자를 짓고 길상사(吉祥寺)라 불렀습니다. 이는 현재 송광사의 시초가 되는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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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인종 재위 기간 중 석조대사가 길상사를 확장하려 계획했으나, 불행히도 타계하여 그 뜻을 이루지 못했고, 사찰은 이후 약 50여 년간 방치되어 폐허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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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보사찰의 기틀 마련]
보조국사 지눌이 정혜결사를 길상사로 옮겨와 한국 불교의 중심으로 발전시켰으며, 고려 희종이 길상사를 수선사로, 송광산을 조계산으로 개명했습니다.
50여 년간 폐허로 버려졌던 길상사는 보조국사 지눌이 정혜결사를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중창되고 한국 불교의 중심으로 각광받게 되었습니다. 이때 고려 희종은 길상사를 수선사(修禪社)로, 송광산을 조계산(曹溪山)으로 개명하며 승보사찰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하는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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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국사 배출과 승보사찰 위상 확립]
보조국사의 법맥을 이은 진각국사 이후 조선 초까지 약 180년 동안 16명의 국사를 배출하며 송광사는 명실상부한 승보사찰의 지위를 확고히 했습니다.
보조국사의 법맥을 진각국사가 이어받아 사찰을 중창한 때부터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약 180년 동안 무려 16명의 국사를 배출하며 송광사는 한국 불교의 승맥을 잇는 승보사찰로서의 지위를 굳건히 하였습니다.
1597
임진왜란 이후 이어진 정유재란(1597-1598)으로 송광사는 큰 피해를 겪었지만, 이후 지속적인 중창불사(사찰 재건 및 보수)를 통해 지금의 웅장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1950
1950년부터 1953년까지 이어진 한국 전쟁으로 송광사는 또 한 번 심각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전후 지속적인 중창불사로 대규모의 사찰 시설들이 복구되어 지금의 위용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1975
[명승 지정 및 변경 (1975)]
'승주송광사선암사일원'이 명승 제5호로 지정되었다가, 1998년 '조계산송광사·선암사일원' 사적 및 명승 제8호로 재지정되며 변경되었습니다.
승주송광사선암사일원이 대한민국의 명승 제5호로 지정되었으나, 이후 1998년 12월 23일 해지되고 '조계산송광사·선암사일원' 사적 및 명승 제8호로 통합 재지정되었습니다.
1984
송광사가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43호로 지정되어 지역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이후 1998년 12월 23일 해지되었습니다.
1998
1975년에 지정된 명승과 1984년에 지정된 문화재자료가 해지되고, '조계산송광사·선암사일원'이 대한민국의 사적 및 명승 제8호로 통합 지정되어 유산의 중요성이 다시 한번 강조되었습니다. 이 지정은 2009년 12월 9일 해지되었습니다.
2009
1998년 지정되었던 사적 및 명승 제8호가 해지되고, '조계산 송광사·선암사 일원'이 대한민국의 명승 제65호로 재지정되어 뛰어난 자연 경관과 문화적 가치를 다시 한번 인정받았습니다.
'순천 송광사'가 역사적,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대한민국의 사적 제506호로 정식 지정되었습니다.
2023
[문화재 관람료 면제 및 무료입장 시작]
대한불교조계종 산하 사찰의 문화재 관람료가 면제됨에 따라 송광사도 무료입장이 가능해졌습니다.
2023년 5월 4일부터 대한불교조계종 산하 사찰에 입장할 때 징수하던 문화재 관람료가 면제되면서, 순천 송광사도 국민 누구나 무료로 방문하여 문화유산을 향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