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사
사찰, 문화재, 역사 유적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38:50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사찰 중 하나로 손꼽히는 전등사입니다. 고구려 시대 창건 이래 고려 왕실의 후원과 조선 시대 국가 중요 기록물 보관처 역할을 수행하며 역사적 깊이를 더했습니다. 대웅전의 흥미로운 나부상 전설과 보물급 문화재들을 소장하고 있어 방문객들에게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강화도의 상징이자 살아있는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대중의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381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년), 아도화상이 '진종사'를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시기에 창건되었다면 현존하는 한국 사찰 중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게 된다.
1097
현재 보물 제393호로 지정된 전등사 범종은 중국 북송시대 허난성 백암산 숭명사에 있던 것으로, 1097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전해진다. 이 종은 일제강점기에 강제로 빼앗겼다가 광복 후 부평 군기창에서 발견되었다.
1259
고려 고종 46년(1259년), 강화도에 임시 도읍을 정했던 고려 왕실이 진종사 경내에 가궐을 짓고 잠시 머물렀던 기록이 등장한다.
1266
고려 왕실의 각별한 관심 속에 진종사가 대대적으로 중창(다시 지어짐)되는 역사가 기록되었다.
1282
고려 충렬왕 8년(1282년), 충렬왕의 왕비인 정신부주(정화궁주)가 진종사에 시주를 하면서 절의 이름이 '전등사'로 변경되었다. '전등'은 '불법의 등불을 전한다'는 깊은 뜻을 담고 있다.
1615
조선 광해군 7년(1615년)에 발생한 화재로 소실된 전등사의 건물을 재건하기 위한 대웅전 공사가 기공되었다.
1621
조선 광해군 대에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던 전등사의 여러 건물들이 1621년에 재건되었다. 현재 보물로 지정된 약사전 역시 이 시기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622
조선 광해군 7년(1615년)에 착공된 전등사 대웅전 재건 공사가 1622년에 완료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 건물은 현재 보물 제178호로 지정되어 있다.
1653
마니산에 있던 조선왕조실록 보관처인 마니산 사고가 병자호란으로 훼손된 후 효종 4년(1653년)에 화재로 완전히 소실되었다.
1660
1653년 마니산 사고가 화재로 소실되자, 전등사 경내에 정족산 사고가 새롭게 설치되어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1707
[정족산 사고 개축 및 보사권봉소 지정]
강화 유수 황흠이 정족산 사고를 개축하고 별관인 취향당을 지어 왕실 문서까지 보관하는 보사권봉소로 지정되었다.
1707년, 당시 강화 유수였던 황흠이 정족산 사고를 고쳐 짓고, 별관인 취향당을 추가로 건립하였다. 이때부터 정족산 사고는 실록뿐만 아니라 왕실의 중요 문서까지 보관하는 '보사권봉소'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1726
1726년, 조선의 영조 임금이 전등사를 직접 찾아 취향당에 친필로 쓴 편액을 하사하며 왕실의 각별한 관심을 표현했다.
1749
1749년, 영조 임금이 직접 목재를 시주하여 전등사의 중수(다시 지음)가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