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릉

왕릉, 고분,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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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3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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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 고분,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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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 무령왕과 왕비의 능이자 1971년 발굴 당시 도굴되지 않은 채 발견된 세계 유일의 신원 확인 삼국시대 왕릉. - 왕과 왕비 신분 밝힌 지석 금제관식 석수 등 국보급 유물 2900여 점 쏟아져 나온 백제 문화의 보고. - 일본산 금송 목관 중국 양나라 양식 벽돌무덤은 백제의 활발한 국제 교류를 증명하는 핵심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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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3

[무령왕 붕어]

백제의 제25대 왕인 무령왕이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죽음은 훗날 발견될 무령왕릉 지석에 정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령왕릉 지석에는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이 62세 되는 계묘년(523년) 5월 7일 임진날에 돌아가셨다'고 기록되어 있어, 왕의 사망 일시를 분명히 알려줍니다.

525

[무령왕 대묘 안치]

무령왕이 대묘(大墓)에 정식으로 안치되었습니다.

이는 왕이 붕어한 지 약 2년 3개월간의 가매장을 마친 후 이루어진 것으로, 왕릉 지석에 그 내용이 명확히 새겨져 있습니다.

지석에는 '을사년(525년) 8월 12일 갑신날에 이르러 대묘에 예를 갖추어 안장하고 이와 같이 기록한다'고 되어 있어, 왕릉의 실제 축조 및 안치 시점을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526

[무령왕비 붕어]

무령왕비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왕비의 죽음 이후, 왕비 역시 남편과 마찬가지로 3년상을 치른 것으로 보입니다.

왕비의 묘지 내용은 왕의 지석 뒷면에 새겨져 있으며, 이는 왕비의 죽음과 안치 과정을 짐작게 합니다.

529

[무령왕비 대묘 안치]

무령왕비가 무령왕의 옆에 합장되어 대묘에 안치되었습니다.

왕비 역시 3년상을 치른 후 정식으로 왕릉에 모셔졌습니다.

왕비의 안치 시점은 왕비 붕어 후 3년상 기간을 고려하여 추정된 것입니다. 왕과 왕비는 영원히 함께 이 무덤에 잠들었습니다.

1971

[무령왕릉 첫 발견]

공주 송산리 5, 6호분 배수로 공사가 진행되던 중, 인부들이 우연히 벽돌 무덤의 일부분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1,400여 년간 잠들어 있던 무령왕릉이 세상에 드러나는 역사적인 순간의 시작이었습니다.

발견 당시 무덤 입구는 벽돌과 백회로 빈틈없이 밀봉되어 있었고, 이는 도굴의 흔적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 사실만으로도 학계는 물론 국민 전체의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왕릉 입구 확인]

발굴팀이 무덤의 아치형 입구를 확인했습니다.

쏟아지는 호우 속에서도 발굴 작업을 멈추지 않고 자정까지 배수로를 파며 유적 보존에 힘썼습니다.

이 날은 무령왕릉의 공식적인 발굴이 시작된 날로 기록됩니다.

이 발견은 도굴되지 않은 백제 왕릉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을 한껏 높였으며, 발굴의 긴박하고 열정적인 분위기를 엿볼 수 있게 합니다.

[무령왕릉, 주인 밝혀지다]

드디어 무덤 입구가 열리고, 널길 중앙에서 놀라운 유물들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특히 왕과 왕비의 지석 2매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는데, 이를 통해 무덤의 주인이 백제 무령왕과 왕비임이 1442년 만에 세계 최초로 명확히 밝혀지는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입구를 열자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고, 도굴되지 않은 채 보존된 무려 2900여 점의 유물들이 발견되어 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지석에 새겨진 남조풍 해서체 기록은 삼국시대 고고학 편년 연구의 기준 자료가 되었으며, 이 발견으로 무령왕릉은 삼국시대 왕릉 중 유일하게 주인을 확인할 수 있는 무덤이 되는 역사적인 기록을 세웠습니다. 발굴팀은 곧바로 기자들에게 이 역사적인 발견을 발표하고 밤샘 유물 수습이 진행되었으며, 이 모든 과정은 백제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2001

[일왕의 무령왕릉 언급]

당시 아키히토 일본 천황이 자신의 생일 기자회견에서 간무 천황의 어머니가 백제 무령왕의 10대손이라는 사실을 언급하며, 일본 왕실과 백제의 깊은 역사적 연관성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습니다.

이 발언은 무령왕릉에 대한 일본 사회의 관심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한일 고대사 연구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며 양국 간의 문화적 유대감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4

[일본 구황족 무령왕릉 참배]

일본의 구황족인 아사카 도모히코가 대한민국을 방문하여 무령왕릉을 직접 찾아 참배했습니다.

그는 조상을 기리는 마음으로 제사를 지내고, 천황가의 제사용품까지 공주시에 기증하며 깊은 경의를 표했습니다.

이 참배는 무령왕릉이 단순한 역사 유적을 넘어, 한일 양국의 문화적, 혈연적 연결고리를 상징하는 중요한 공간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기증품의 행방은 훗날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2011

[왕릉 속 은어뼈 발견]

무령왕릉 발굴 당시 묘의 석실 바닥에서 긁어모은 티끌과 흙을 정밀 분석한 결과, 은어의 등뼈 141점 등 다수의 생선 뼈 조각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백제 왕실의 식생활이나 당시 제례 문화에 대한 새로운 단서를 제공합니다.

푸른빛으로 변색된 뼈들은 청동 그릇 녹물의 영향으로 추정되며, 은어 부장이 제수용이었거나 부활을 상징하는 제의적 의미였을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백제인들의 사상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발견입니다.

2012

[무령왕릉 공주 10경 선정]

무령왕릉이 공주문화원, 향토사학자, 언론인 등으로 구성된 '공주 10경 선정위원회'의 설문조사를 거쳐 최종 '공주 10경'에 당당히 선정되었습니다.

이는 무령왕릉이 공주시를 대표하는 핵심 문화유산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무령왕릉은 공주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장소로서, 많은 관광객과 역사 연구자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이번 선정으로 그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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