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
고대 유적, 거석 유적, 무덤, 청동기 시대, 세계문화유산
최근 수정 시각 : 2025-10-12- 04:27:51
고인돌은 거대한 바위로 만들어진 고대 거석 구조물로 주로 무덤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세계 고인돌의 절반 이상인 약 4만 개가 한반도에 분포하며 이는 세계 최대 규모입니다. 청동기 시대의 지배층이 권력을 과시하며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며 단순한 무덤을 넘어 제단이나 묘표석의 역할도 했습니다. 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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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아프리카 고인돌 시초]
유럽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거대한 돌 무덤, 고인돌이 처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의 고인돌은 주로 주변에 흙이나 작은 돌로 덮어 무덤을 조성하는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BC 2k
[한반도 고인돌, 4900년 전 유물 발견]
북한 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한반도 고인돌에서 지금으로부터 약 4,900여 년 전의 유물이 출토되었다고 주장됩니다.
이는 한반도 고인돌의 역사가 생각보다 훨씬 오래되었음을 시사하는 중요한 발견입니다.
[동아시아 고인돌의 시작]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고인돌이 축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의 고인돌은 후대까지 이어지며, 각 지역의 특징을 담은 형태로 발전하게 됩니다.
특히 한국은 세계 고인돌의 보고로 자리 잡습니다.
BC 1k
[양평 양수리 고인돌 4천년 전 확인]
남한강 유역의 양평 양수리 고인돌에서 출토된 유물을 방사능 연대 측정한 결과, 약 4,00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추정치가 나왔습니다.
이는 고인돌의 제작 시기가 기존 청동기 시대보다 이른 신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BC 3C
[고인돌, 역사 속으로 사라지다]
기원전 3세기경, 한반도에 철기가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 고인돌 축조는 점차 막을 내립니다.
수백 명에서 수천 명의 인력 동원이 필요한 고인돌 대신, 더 효율적인 나무널무덤이나 움무덤 등으로 장례 문화가 변화하게 됩니다.
1935
[한흥수, '고인돌' 명칭 첫 사용]
한국 1세대 고고학자 한흥수가 논문 <조선의 거석문화 연구>에서 '고인돌'이라는 우리말 명칭을 학계에 처음으로 선보였습니다.
이는 '지석묘'로 불리던 거석 무덤에 우리말 이름이 부여된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1967
[고인돌에서 사람뼈 최초 발굴!]
충북 제천 황석리 고인돌에서 거의 완벽한 상태의 사람뼈가 발굴되면서, 고인돌이 '무덤'이라는 주된 기능을 가졌다는 사실이 명확하게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고인돌의 용도에 대한 오랜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결정적인 증거였습니다.
1984
[지석묘 대신 '고인돌' 공식화]
한국고고학연구소의 <한국고고학개정용어집>에서 '지석묘' 대신 순우리말 '고인돌'을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자고 권고했습니다.
이는 일본식 명칭 사용에 대한 문제의식과 고인돌의 다양한 기능적 측면을 반영한 중요한 변화였습니다.
2000
[한국 고인돌, 세계유산 등재!]
전라북도 고창, 전라남도 화순, 그리고 인천 강화에 위치한 한국의 대표적인 고인돌 유적들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이는 세계 고인돌의 절반 이상을 품고 있는 한국의 고인돌이 전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음을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