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성당
로마 가톨릭 성당, 사적, 건축물, 종교시설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38:43
- 전주 전동성당은 호남 지역에서 최초로 세워진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입니다. - 1791년 신해박해 등 많은 천주교 신자가 순교한 역사적인 자리에 세워진 성지입니다. - 명동성당을 설계한 프와넬 신부가 설계를 맡아 1908년에 착공 1931년에 완공되었습니다. - 아름다운 건축미 덕분에 영화 촬영지나 결혼식 장소로 사랑받는 문화유산입니다. - 1981년 사적 제288호로 지정되었습니다.
1791
[신해박해 발생]
한국 교회 최초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와 그의 외종형 권상연 야고보가 전동성당이 위치한 풍남문 밖에서 순교했습니다.
이는 호남 지역 천주교 박해의 시작을 알리는 비극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전동성당 터는 1791년 신해박해 당시 한국 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와 그의 외종형 권상연 야고보가 순교한 곳이며, 윤지충이 참수당할 때 튄 피가 붙은 전주성의 돌이 전동성당의 주춧돌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1801
[신유박해 순교지]
신유박해 때 유항검, 유관검 형제가 육시형을, 윤지헌, 김유산, 이우집 등이 교수형을 당하는 등 호남 지역의 많은 가톨릭 신자가 이곳에서 순교했습니다.
이곳은 박해의 아픔을 간직한 순교 성지가 되었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 때에는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유관검 형제가 육시형을, 윤지헌 프란치스코, 김유산 토마스, 이우집 등이 교수형을 당하는 등 호남 지역의 많은 가톨릭 신자가 순교한 자리였습니다.
1891
[임시 본당 설립]
19세기 말 기독교 신앙이 허용되면서, 전주성당(현 전동성당) 주임 보두네 신부가 현재 위치의 민가를 사들여 임시 본당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전주 지역 천주교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첫걸음이었습니다.
19세기 말에 이르러 기독교 신앙이 허용되면서 개항지가 아니었던 전주시에도 선교사가 들어왔으며, 1891년에는 전주성당(현재의 전동성당) 주임인 프랑수아 보두네 신부가 현재의 위치에 있었던 민가를 사들여 임시 본당으로 삼았습니다.
1894
[신자 수 급증]
동학 농민 운동 등 사회적 혼란 속에서 산골 지역에 밀집했던 신자들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더 큰 성당의 필요성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본당이 처음 생겼을 때에 전주읍성 주변에 신자는 거의 없었고, 주로 산골인 대승리, 고산 되재, 천호동, 배재 등지에 신자가 밀집해 있었으나,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나는 등 여러 사건이 일어나면서 신자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였습니다.
1908
[대규모 성당 착공]
명동성당 내부를 건축한 빅토르 루이 프와넬 신부의 설계로 대규모 성당 건축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호남 지역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자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의 시작이었습니다.
신자 수가 급증함에 따라 기존 성당보다 더 큰 성당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1908년 명동성당의 내부를 건축한 빅토르 루이 프와넬 신부의 설계로 성당이 착공되었습니다. 성당 주춧돌은 1908년 대한제국을 간접 통치하던 일본 제국 통감부가 헐은 전주읍성의 풍남문 인근 성벽 돌을 이용하였고, 성당을 구성하는 벽돌의 일부도 헐린 성벽에서 나온 흙을 구워 만들었습니다. 나머지 석재와 목재들은 익산시 황등면의 채석장과 승암산의 목재를 사용하였습니다.
1914
[성당 외관 공사 완료]
1908년 착공된 성당의 외관 공사가 드디어 마무리되었습니다.
웅장한 로마네스크 양식과 비잔틴 양식의 뾰족 돔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성당은 1914년에 비로소 외관 공사가 끝났으며, 이후로도 계속 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1931
[성당 완공 및 축성]
20년이 넘는 대장정 끝에 마침내 전동성당이 최종 완공되었고, 대구대목구 드망즈 교구장 주례로 웅장한 축성식을 가졌습니다.
이로써 전주는 천주교 성지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했습니다.
1908년부터 시작된 성당 건축 공사가 1931년에 최종 완공되었고, 그 해 6월 18일에 천주교 대구대교구의 플로리앙 드망즈 교구장을 주례로 하여 축성식을 가졌습니다.
1937
[전주교구 주교좌]
대구대목구에서 전주지목구가 분리되면서 전동성당이 전주교구의 첫 주교좌 성당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초대 교구장 김양홍 신부가 착좌하며 지역 천주교의 중심 역할을 시작했습니다.
1937년에는 대구대목구에서 천주교 전주교구가 분리되면서 주교좌 성당으로 지정되었으며, 첫 교구장인 김양홍 신부가 착좌하였습니다.
1957
[주교좌 성당 역할 종료]
중앙성당으로 주교좌가 옮겨감으로써 전동성당은 주교좌 성당의 역할은 종료되었지만, 전주 지역 천주교의 상징적인 성지로서의 위상은 변함없이 이어졌습니다.
계속해서 주교좌 성당으로의 역할을 하다가 1957년 중앙성당으로 주교좌가 옮겨감으로써 다시 평범한 성당으로 돌아왔으나, 이후로도 계속 전주 지역의 천주교 성지 중 하나로써 상징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1970
[군사정권 항거 시위]
1970년대와 1980년대, 전동성당은 군사정권에 항거하는 시위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임 신부와 보좌신부가 경찰 폭력에 노출되는 아픔도 겪었으며, 민주화를 향한 중요한 역사의 현장이었습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대한민국의 군사정권에 항거하는 시위가 성당에서 몇 차례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주임 신부 및 보좌신부가 경찰의 폭력에 노출되기도 하였다.
1981
[사적 제288호 지정]
역사적,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전동성당은 대한민국의 사적 제288호로 공식 지정되었습니다.
이는 성당의 보존과 문화유산으로서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1년 9월 25일에 대한민국의 사적 제288호로 지정되었다.
1988
[원인 불명 화재]
원인 불명의 화재로 성당의 일부가 전소되는 안타까운 사건을 겪었습니다.
아름다운 건축물에 큰 상처를 남긴 이 사건은 성당의 보존 중요성을 일깨웠습니다.
1988년에는 원인 불명의 화재가 일어나 성당의 일부가 전소되는 등의 일도 겪었다.
2009
[반기독교 낙서 사건]
일부 기독교 교회의 사회 봉사보다는 외연적 성장에 치중하는 것에 분노한 20대 청년 2명이 건물 정문에 반기독교적 낙서를 했다가 붙잡혔습니다.
2009년에는 대한민국의 일부 기독교 교회가 사회 봉사보다는 외연적 성장에 치중하는 것에 분노한 20대 청년 2명이 건물 정문에 반기독교적 낙서를 하였다가 붙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