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도

수중 암초, 해양 과학 기지, 영유권 분쟁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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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3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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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 암초, 해양 과학 기지, 영유권 분쟁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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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중국해에 잠긴 신비의 암초 이어도. 대한민국은 이곳에 세계적 수준의 해양과학기지를 세워 해양 연구와 기상 관측의 전초기지로 삼고 있습니다. 한반도에 상륙하는 태풍의 길목에 위치해 재해 예방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한중 간 배타적 경제수역(EEZ) 분쟁의 주요 쟁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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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10k

[이어도, 빙하기 육지에서 간빙기 해저 대륙붕으로 변화]

빙하기에는 제주도와 이어져 육지였으나, 간빙기가 되며 바닷물 수위 상승으로 해저 대륙붕이 되었다.

약 1만1000년 전 빙하기에는 제주도와 연결된 육지였으나, 현재의 간빙기가 되면서 바닷물의 높이가 상승해 해저 대륙붕이 되었다.

BC 5C

[중국 고대 기록 '산해경'에 쑤옌 언급]

중국 고대 지리서 '산해경'에 '동해 밖 태황 가운데 산이 있으니 이름하여 의천소산(쑤옌)이라 한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것이 지금의 이어도를 가리키는지는 불확실하다.

중국의 고대 지리서이자 각종 신화·전설들을 기록한 산해경(B.C. 475년 ~ B.C. 221년 경)에 '동해 밖 태황 가운데 산이 있으니 이름하여 의천소산(쑤옌)이라 한다'는 구절이 있으며, 이것이 수중 암초인 지금의 이어도를 가리킨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된다.

1675

[하멜 표류기, 이어도 추정 암초 기록 논란]

17세기 후반에 쓰여진 하멜 표류기에 '조그마한 섬 근처에 큰 암초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를 이어도로 추정할 개연성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17세기 후반에 쓰여진 하멜 표류기에 "8월 1일 새벽에 우리는 조그마한 섬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그 섬 바로 뒤편에 큰 암초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닻을 내린 상태로 있어야만 했으며 바다는 더욱더 거세어졌다"는 구절이 있으며, 이를 이어도로 추정할 개연성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1900

[영국 상선 소코트라호, 이어도 국제적 발견]

영국 상선 소코트라호에 의해 이어도가 범 국제적으로 공식 발견되었으며, 이후 영어권에서는 선박 이름을 따 '소코트라 암초'라고 불리게 되었다.

1900년 영국 상선 소코트라(Socotra)호에 의해 이어도가 범 국제적(한반도 주변국 외), 공식적으로 발견되었다. 이후 영어권에서는 영국 상선 소코트라(Socotra)호가 1900년에 발견하였다는 것에서 착안해 선박의 이름을 따서 '소코트라 암초'(Socotra Rock(Reef))라 한다.

1910

[영국 해군, 이어도 수심 5.4m 측정]

영국 해군 측량선 워터위치호에 의해 이어도의 깊이가 5.4m로 측정되었다. 일부에서는 1901년에 측량 조사가 이뤄졌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1910년 영국 해군 측량선 워터위치호(Waterwitch)에 의해 그 깊이가 5.4m 정도인 암초로 측정되었다. 이와는 별개로, 영국 해군 중장이었던 Archibald Day는 그의 저서 <1795~1919년간의 영국 해군 본부 수로 측량국(기록), (The Admiralty Hydrographic Service, 1795~1919)>에서 해당 측량 조사가 1901년에 행해졌다 주장하기도 하였다.

1938

[일본, 이어도 인공 구조물 설치 계획 무산]

일본 제국이 해저진선 중계시설 및 등대 설치를 위해 이어도에 콘크리트 인공 구조물을 설치하려 했으나, 태평양 전쟁 발발로 무산되었다.

1938년, 일본 제국에 의해 해저진선 중계시설과 등대를 설치할 목적으로 직경 15미터, 수면 위로 35미터에 달하는 콘크리트 인공 구조물을 설치할 계획이었으나 태평양 전쟁의 발발로 무산되고 말았다.

1944

[미 해군 Icefish호, 이어도 순찰 보고서에 기록]

미 해군 전함 Icefish호가 황해 순찰 중 소코트라 암초(이어도)를 2차 세계대전 2번째 순찰 보고서에 기록하였다.

1944년 12월 25일 오후 7시 경, 미 해군은 미 해군의 전함(잠수함) Icefish 호를 수면위로 떠오르게 한 뒤, 황해를 향하여 서쪽으로 진행하다 이윽고 북진하며 순찰하던 중 소코트라 암초(Socotra rock)를 미 해군 Icefish 호의 2차세계대전 2번째 순찰 보고서《USS Icefish, 2nd War Patrol Report-2nd patrol》에 기록하였다.

1950

[중국 인민해방군, 이어도 조사 착수]

중화인민공화국 인민해방군 소속 동해함대가 이어도에 대한 조사를 시행하였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었으나 국공내전이 아직 진행중에 있었으므로 저우산도 근처의 동중국해 일대는 중화민국 해양 순시선 관할 하에 있었다. 당시 순시선은 이어도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내지는 못하였고, 이후 1950년대에 중화인민공화국 인민해방군 소속 동해함대 이어도에 대한 조사를 시행하였다.

1951

[한국산악회와 해군, 이어도 탐사 및 영토 표지 설치]

국토규명사업을 벌이던 한국산악회와 대한민국 해군이 공동으로 이어도 탐사에 나섰으며, '대한민국 영토 이어도'가 새겨진 동판 표지를 수면 아래 암초에 가라앉혔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51년 국토규명사업을 벌이던 한국산악회와 대한민국 해군이 공동으로 이어도 탐사에 나서 높은 파도와 싸우다 바다 속의 검은 바위를 눈으로만 확인하고 ‘대한민국 영토 이어도’라고 새긴 동판 표지를 수면 아래 암초에 가라앉히고 돌아왔다.

1952

[이승만 정부, 평화선 선언으로 이어도 관할 명문화]

이승만 정부가 《국무원 고시 제14호》를 통해 한국 인접해양에 대한 주권을 담은 평화선을 공식 선언하며 이어도를 포함한 한반도 주변 해역을 한국 관할 수역으로 명문화했다.

1952년 이승만 정부는 《국무원 고시 제 14호》를 통해, 한국 인접해양에 대한 한국의 주권 내용을 담고 있는 평화선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여 이어도를 포함한 한반도 주변 해역을 영해와 한국 관할 평화선(평화선이란, 현 국제 해양법 상 배타적 경제 수역 개념과 유사하며, 당시 해당 개념을 관습적으로 따르는 경향이 있었으나, 현 배타적 경제 수역 개념과의 세부적 차이와 당시 해당 개념이 법적으로 명문화 돼 있진 않았으므로, 편의상 직접적으로 배타적 경제 수역이라 부르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다.) 내부 수역으로 포함, 명문화시켰다.

1963

[중국 '약진'호, 이어도 인근 침몰 사건 발생]

중국 자체 제작 원양화물선 '약진'호가 처녀 항행 중 이어도를 향해 가다 부딪혀 침몰했으며, 어뢰 공격설은 선원들의 방향 오판으로 인한 착각으로 일단락되었다.

1963년 5월 1일 13시 55분경, 중화인민공화국이 자체 제작한 최초의 원양화물선 "약진"(Yuejin)호(15,930톤)가, 칭다오를 거쳐 일본 나고야로 가기위해 처녀항행 중 해수면 및 어떤 물체에 부딪혀 침몰하였으나, 승선했던 선원 59명은 부근에서 조업중이던 일본 어선에 의해 무사히 구조되었다.(5월 2일 19시30분경 귀환) 사건 초기엔 어뢰의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한 선원들의 발언에 의해 국제 분쟁으로 발전할 뻔했으나, 사건이 해명되는 과정에서, 당시 배는 이어도를 향해 가다 부딪친 것으로 밝혀졌고, 어뢰공격설은 선원들의 방향 오판으로 인한 착각으로 간주되어 사건이 일단락되었다.

[중국 상하이해상관함대, 이어도 인근 난파선 발견]

상하이해상(수로)관함대가 난파선을 이어도로부터 남서쪽으로 2.8km 떨어진 곳에서 발견하였다.

1963년 5월 1일 - 6월 3일, 상하이해상(수로)관함대가 난파선을 이어도로부터 남서쪽으로 2.8km 거리만큼 떨어진 곳에서 발견하였다.

1970

[대한민국, 이어도 해역 제4광구 지정 '해저광물자원개발법' 제정]

대한민국 정부가 이어도 해역을 제4광구로 지정하는 '해저광물자원개발법'을 제정 및 공포했으나, 중국은 별다른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1970년, 대한민국 정부가 이어도 해역을 제4광구로 지정한 '해저광물자원개발법'을 제정 및 공포하였다. 이에 대해 중화인민공화국은 별다른 공식적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1984

[한국 탐사팀, 이어도 위치 재확인 및 '파랑도' 명명]

한국해양소년단연맹 및 제주대학교-KBS 학술탐사팀이 이어도의 정확한 위치를 재확인하고, 이를 '파랑도'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1984년 한국해양소년단연맹 이어도 탐사대의 수중탐사 등을 포함한 조사에 의해 그 정확한 위치가 재확인되었고, 이후 동년 제주대학교-KBS의 파랑도 학술탐사팀의 조사에 의해 그 정확한 위치가 다시 확인되어 '파랑도'라고 명명되기도 하였다.

1986

[대한민국 수로국, 이어도 암초 수심 4.6미터 측정]

대한민국 수로국 조사선에 의해 이어도 암초의 수심이 4.6미터로 측량되었다.

1986년 대한민국 국립해양조사원(당시 대한민국 수로국) 조사선에 의해 암초의 수심이 4.6미터로 측량되었다.

1987

[대한민국, 이어도에 등부표 설치 및 국제 공표]

대한민국 해운항만청이 이어도에 최초의 구조물인 등부표를 띄우고 이를 국제적으로 공표했다.

1987년, 대한민국 해운항만청이 이어도 최초의 구조물인 이어도 등부표를 띄우고 국제적으로 공표하였다.

1995

[대한민국 해양수산부, 이어도 과학기지 설치 현장조사 착수]

대한민국 해양수산부가 해양연구, 기상관측, 어업활동 등을 위한 이어도 과학기지 설치를 위해 현장조사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1995년에는 대한민국 해양수산부가 해양연구·기상관측·어업활동 등을 위한 이어도 과학기지 설치를 위해 해저지형 파악과 조류관측 등 현장조사를 실시하기 시작하였고, 기지는 2001년에 착공하여 2003년 6월경 완공하였다.

2001

[한·중 어업협정, 이어도 공동 조업지대 설정]

한ㆍ중 어업협정에서 이어도 유역이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어선의 공동 조업지대로 설정되어 논란이 있었으나, 이는 근본적인 해안 경계 획정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2001년, 한ㆍ중 어업협정에서 이어도 유역이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어선의 공동 조업지대로 설정되어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였으나, 단순 어업 한정으로 맺은 협정이므로, 한-중간 근본적인 해안 경계 획정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2003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 완공]

해양수산부가 1995년부터 추진한 이어도 과학기지 설치가 2001년 착공을 거쳐 2003년 6월경 완공되었다. 이 기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과학기지이다.

1995년에는 대한민국 해양수산부가 해양연구·기상관측·어업활동 등을 위한 이어도 과학기지 설치를 위해 현장조사를 실시하기 시작하였고, 기지는 2001년에 착공하여 2003년 6월경 완공하였다. 대한민국 3대 해양과학기지 중 가장 처음 지어졌으며, 우리나라에서 세운 최초의 해양과학기지이다.

2006

[한·중 양국, 이어도 영토분쟁 대상 아님에 합의]

한ㆍ중 양국은 이어도가 수중 암초이며 섬이 아니므로 국제 해양법상 영토 지위를 갖지 못하여 영토분쟁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 기본적인 합의를 이뤘다.

2006년, 한ㆍ중 양국은, 이어도는 수중 암초로 섬이 아닌 만큼 영토분쟁의 대상이 아니라는 데 기본적인 합의를 하였다. 본래 국제 해양법 상 이어도는 원래 암초로 분류됐고, 영토의 지위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이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이전부터 불가능하였다. 또한 EEZ 해안 경계 획정과 영토분쟁은 해양법 상 다른 차원의 문제이므로, 이것 또한 한-중간 근본적인 해안 경계 획정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2007

[이어도 과학기지 운영권 국립해양조사원으로 이관]

무인으로 자동 운영되는 이어도 해양과학기지의 운영·관리 권한이 한국해양연구원에서 국가기관인 국립해양조사원으로 이관되었다.

무인으로 자동 운영되는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는 초기에는 한국해양연구원이 운영하다가, 2007년부터 국가기관인 국립해양조사원으로 이어도 기지의 운영·관리 권한이 이관됐다.

2013

[중국, 이어도 포함 방공식별구역 선포]

중화인민공화국이 이어도를 포함하는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여, 한·중간 갈등이 발생했다.

2013년 11월 23일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이어도를 포함하는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였고, 이에 12월 8일 대한민국 측에서도 방공식별구역을 이어도까지 확장 선포하여 갈등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방공식별구역 이어도까지 확장 선포로 대응]

중화인민공화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에 대응하여, 대한민국 측도 방공식별구역을 이어도까지 확장 선포하여 갈등이 심화되었다.

2013년 11월 23일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이어도를 포함하는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였고, 이에 12월 8일 대한민국 측에서도 방공식별구역을 이어도까지 확장 선포하여 갈등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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