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황사

사찰, 불교유적,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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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3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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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불교유적,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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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선덕여왕 시기 창건된 천 오백 년 역사의 고찰. 신라 불교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자장 원효 등 고승들의 수행처이자 학문의 중심지. 동양 최초이자 유일하게 벽돌을 모방해 만든 모전석탑을 비롯 다양한 문화유산을 품고 있음. 신라 왕실의 깊은 염원이 담긴 호국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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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2

[창건 시작과 이름]

신라 선덕여왕 즉위 무렵부터 창건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분황사는, 이름 그 자체가 '향기로운 임금', 즉 선덕여왕을 위한 사찰임을 암시합니다.

이는 여왕의 권위와 성골 왕실의 정통성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기록의 차이(완공 vs 착공)를 고려할 때, 선덕여왕 즉위 이전 진평왕 말기부터 공사가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분황사는 신라 왕실 사찰의 전통을 이어받아 황룡사와 담을 맞댈 정도로 가까운 곳에 지어졌습니다.

634

[신라 불교의 심장]

선덕여왕 3년, 분황사가 마침내 위용을 드러내며 신라 불교의 핵심 도량으로 자리매김합니다.

이로써 분황사는 황룡사와 함께 신라의 국력을 상징하는 불교 중심지로 성장하게 됩니다.

《삼국사기》는 분황사가 634년에 완공되었다고 기록하며, 이는 신라가 불교를 국력의 근간으로 삼았던 전성기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바로 옆 황룡사지와 더불어 신라 왕경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왕실 가람으로서의 중요성이 컸습니다.

640

[고승들의 발자취]

분황사는 자장율사와 원효대사 등 신라 불교의 기둥과도 같았던 고승들이 머물며 학문을 닦고 사상을 꽃피운 곳으로 역사에 기록됩니다.

특히 원효는 이곳에서 《금강삼매경론》 등을 저술하고 '분황원효'라 불리며 분황종을 창시했습니다.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신라의 계율을 정비한 자장율사가 분황사에 주석했으며, 원효대사는 이곳에서 많은 저작 활동을 하여 해동종을 창시하고 '분황종'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원효가 입적하자 아들 설총이 유해로 상을 만들어 봉안했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750

[기적의 천수관음]

분황사에서는 경덕왕 때 눈 먼 아이가 천수관음에게 간절히 기도하여 시력을 되찾았다는 감동적인 전설이 전해집니다.

이 이야기는 백성들의 고통을 보살피는 사찰의 역할을 보여주며, 분황사가 오랜 세월 민중에게 위안을 주었음을 알려줍니다.

신라의 화가 솔거가 그린 관음보살상도 있었으며, 《삼국유사》에 수록된 이 전설은 분황사 좌전 북쪽 벽에 그려진 천수대비상 앞에서 시작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775

[거대한 약사여래상]

경덕왕 14년, 본피부의 강고가 무려 30만 6,700근에 달하는 구리를 사용하여 거대한 약사여래상을 조성해 분황사에 안치했습니다.

이는 당시 신라의 뛰어난 야금 기술과 불심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1300

[전란 속 사라진 영화]

고려 후기 몽골 제국의 침략과 조선 시대 임진왜란을 겪으며, 분황사의 웅장했던 전각들과 귀중한 유물 대부분이 소실되는 비극을 맞이합니다.

한때 신라 불교의 중심이었던 사찰의 영광이 퇴색되는 아픈 역사가 이어집니다.

1592

[석탑의 아픔과 복원]

임진왜란으로 본래 7층 또는 9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모전석탑은 크게 파괴되어 현재는 3층만이 남아있습니다.

이 탑은 안산암을 벽돌처럼 다듬어 쌓은 독특한 형식으로,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건축 양식입니다.

이 시기에 현재의 금당인 보광전이 창건 당시 중금당 부지의 오른쪽 모퉁이에 지어졌습니다.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은 국보 제3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2008

[근대 발굴과 재발견]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의 발굴 조사를 통해 분황사의 중문터가 확인되며, 석탑과 금당, 중문이 남북 일직선에 위치한 전형적인 평지 가람 형식임이 밝혀집니다.

또한 2중 회랑의 복랑 구조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사찰의 웅장했던 규모가 재조명됩니다.

이 발굴은 신라 왕실 사찰의 건축 양식과 규모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습니다.

2019

[국가 사적으로 지정]

분황사지는 황룡사지와 더불어 신라 왕경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왕실 가람으로서의 높은 역사적,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사적 제548호로 지정됩니다.

이는 분황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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