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섬, 군사 요충지, 어업 기지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38:29
• 서해 5도 중 하나이자 대한민국 관할의 섬 • 황해 바다 한가운데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 • 꽃게를 중심으로 한 풍부한 어장을 형성 • 남북 간 해상 경계인 NLL과 인접하여 크고 작은 군사적 분쟁이 발생한 역사적인 곳
1938
1945
[38선 분할, 경기도 편입]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38선을 기준으로 분할 점령하며, 38선 남쪽에 위치한 연평도는 경기도 옹진군에 편입되었습니다.
이 행정구역은 한국전쟁 이후에도 유지되었습니다.
1968
[조기 파시의 소멸]
한때 1,500척 이상의 어선이 모여 장관을 이루었던 연평도의 조기 파시(波市)가 이 시기를 기점으로 사라졌습니다.
이후 조기 대신 꽃게를 중심으로 한 어장이 형성되었습니다.
1995
[인천광역시 편입]
경기도 옹진군이 인천광역시로 편입되면서, 연평도 또한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으로 행정구역이 변경되었습니다.
1999
[제1연평해전 발발]
NLL(북방한계선)을 둘러싸고 대치하던 남북한 해군 간에 연평도 근해에서 첫 대규모 해상 충돌인 '제1연평해전'이 발생했습니다.
이 전투로 북한군에 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남북한 해군이 서로 NLL 침범을 주장하며 대치하던 중 전투가 벌어졌으며, 조선인민군 측에 5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02
[제2연평해전 발발]
제1연평해전 발발 3년 만에 북한 해군이 NLL로 출동한 우리 해군 고속정에 기습적으로 발포하며 다시 한번 '제2연평해전'이 벌어졌습니다.
양측에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북한의 기습 발포로 시작된 이 전투는 양측에 수십 명의 사상자를 발생시켰으며, 북방한계선을 둘러싼 긴장을 다시 한번 고조시켰습니다.
2010
[연평도 포격전 발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대한민국의 대연평도를 향해 갑작스럽게 170여 발을 포격한 사건입니다.
정전협정 체결 후 상대방 영토에 직접 포격을 가한 최초의 사례로 기록되었으며, 우리 군인 2명과 민간인 2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오후 2시 30분경 발생했으며, 대한민국 국군은 진돗개 1호를 발령하고 80여 발의 대응사격을 실시했습니다. 이 사건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후 상대방의 영토에 대해 직접 포격을 가한 첫 번째 사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