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도

섬, 군사 요충지, 서해 5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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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3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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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군사 요충지, 서해 5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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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서북단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인 백령도는 서해 5도 중 가장 끝자락에 자리하며 남북관계의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대한민국에서 15번째로 넓은 섬으로 황해도 문화가 잘 보존된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점박이물범 등 천연기념물이 다수 지정될 만큼 수려한 자연경관과 독특한 지질을 자랑합니다. 군사 보안상 내비게이션 및 위성지도 서비스에 제약이 따르는 특징을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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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의 옛 이름 '곡도']

고구려 시대에 백령도를 '곡도'라 불렀다.

고구려 시기에 현재의 백령도는 '곡도(鵠島)'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이는 백령도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이다.

1018

['백령도' 이름의 시작]

고려 현종 9년부터 이 섬은 '백령도'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백학도'라는 이름과 관련된 설화도 전해진다.

고려 현종 9년(1018년)부터 현재의 이름인 '백령도'로 불리기 시작했다. 또한, '백학도'라고도 일컬어졌으며, 섬의 이름에 얽힌 사또의 딸과 선비에 관한 흥미로운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백령진(白翎鎭) 설치]

고려 시대인 1018년에 백령진(白翎鎭)이 설치되어 군사적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고려 현종 9년(1018년), 백령도에 백령진(白翎鎭)이 설치되어 이 지역의 군사적 방위 거점으로서의 역할이 시작되었다.

1428

[조선 시대 황해도 장연군 편입]

조선 세종 10년인 1428년에 백령도는 황해도 장연군에 속하게 되었다.

조선 세종 10년인 1428년, 백령도의 행정구역이 황해도 장연군에 편입되면서, 조선 시대의 중요한 해양 거점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1945

[해방과 38선 이남 편입]

일본 항복 후 한반도 분할 점령으로 백령도는 38선 이남에 편입되었고, 황해도 옹진군이 경기도 옹진군으로 재편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고 9월 2일 한반도가 38도선을 경계로 분할 점령되자, 백령도는 대청도, 소청도와 함께 38선 이남에 속하며 인근 옹진군에 편입되었다. 이로 인해 황해도 옹진군은 경기도 옹진군으로 재편되었다.

1950

[한국전쟁 발발과 북한군 점령]

한국전쟁 발발 직후, 백령도는 3개월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의해 점령되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백령도는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직후 약 3개월 동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군대에 의해 점령되는 아픔을 겪었다.

1953

[정전협정으로 대한민국 영토 확정]

한국전쟁 정전협정에 따라 백령도 등 서해5도는 대한민국의 영토로 최종 확정되었다.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백령도는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와 함께 서해5도 중 하나로 대한민국의 영토임이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 이는 남북 분단 상황에서 백령도의 지위를 명확히 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1995

[인천광역시로 행정구역 편입]

백령도는 1995년 3월 1일 인천광역시로 편입되어 현재의 행정구역에 속하게 되었다.

1995년 3월 1일을 기해 백령도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으로 편입되어 현재의 행정구역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이로써 백령도는 인천광역시의 가장 서쪽 끝 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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