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대통령 관저, 건축물, 역사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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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3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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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관저, 건축물, 역사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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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는 1948년부터 2022년까지 대한민국 대통령의 관저이자 행정기관으로 사용된 상징적인 건축물입니다. - 고려 시대부터 명당으로 주목받아 궁궐터로 쓰였고 조선 시대에는 경복궁 후원이었습니다. - 일제강점기에는 총독 관저로 이용되었으며 해방 후 이승만 대통령이 경무대로 명명하여 대통령 관저가 되었습니다. - 1960년 윤보선 대통령이 청와대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노태우 정부 때 현재의 본관과 관저 등이 신축되었습니다. - 제왕적 권력의 상징으로 여겨져 여러 차례 이전 논의가 있었고 결국 2022년 윤석열 대통령 취임과 함께 용산으로 대통령실이 옮겨지며 일반에 완전히 개방되었습니다. - 그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본관 영빈관 관저 여민관 등 주요 시설과 역사가 대중에 공개되어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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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숙종, 청와대 터에 남경 궁궐 조성 (추정)]

고려 숙종이 명당이라는 풍수지리적 예언에 따라 지금의 청와대 자리에 남경 궁궐을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터는 예로부터 중요한 지리적 요충지로 주목받았습니다.

풍수가 김위제가 삼각산을 등지고 남향한 선경으로, 이곳에 도읍을 세우면 9년 만에 사해가 조공할 것이라 예언하자, 고려 숙종은 이를 믿고 지금의 서울에 남경을 설치하고 궁궐을 만들었습니다. 현대 학계에서는 이 궁궐터가 지금의 청와대 자리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1394

[조선 태조, 경복궁 북쪽에 전각 건설]

조선 태조가 한성부를 새 수도로 정하고 경복궁 북쪽에 새로운 궁궐을 건설했습니다. 이 장소는 고려 남경 궁궐터 근처였으며, 충순당, 취로정 등 여러 전각이 있었습니다.

조선 태조는 한성부를 새로운 수도로 정한 뒤, 고려 남경 궁궐터 인근인 경복궁 북쪽에 새 궁궐을 지었습니다. 현재의 청와대 자리에 해당하는 이곳에는 충순당, 취로정 등의 전각이 있었으며, 임금과 개국공신의 후손들이 모여 대규모 회맹을 하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1865

[흥선대원군, 경복궁 후원에 '경무대' 조성]

임진왜란 이후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경복궁이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재건되었습니다. 이때 지금의 청와대 자리에 후원이 조성되고 융문당, 융무당 등과 함께 경무대가 만들어졌습니다.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소실된 후 오랫동안 방치되다가 고종 대에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경복궁이 재건되었습니다. 이때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 밖에 지금의 청와대 자리에 후원이 조성되었으며, 후원에는 임금의 휴식 공간인 오운각을 비롯한 32동의 건물과 함께 융문당, 융무당 등의 전각과 '경무대'가 만들어졌습니다. 융문당에서는 과거제를, 융무당에서는 군사 훈련을 하기도 했습니다.

1927

[일제, 경무대 등 청와대 터 건물 철거]

일제강점기 동안 경복궁 후원에 있던 경무대를 비롯한 여러 전각들이 대규모로 철거되었습니다. 이는 일제의 식민 통치 정책의 일환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27년, 경무대를 포함한 경복궁 후원의 수많은 건물들이 훼철되었습니다. 이는 조선의 역사적 상징을 훼손하려는 일제의 정책 중 하나였습니다.

1937

[조선총독 관저(구 본관) 기공]

일제강점기에 경복궁에 있던 조선총독 관저를 지금의 청와대 자리로 옮기기 위한 구 본관 건물이 착공되었습니다.

1937년 3월 22일, 일제는 경복궁에 있던 총독 관저를 지금의 청와대 자리로 옮기기 위해 구 본관 건물의 기공식을 가졌습니다.

1939

[조선총독 관저, 청와대 터로 이전]

경복궁에 있던 조선총독 관저가 현재의 청와대 자리인 경복궁 후원 자리로 이전되었습니다. 이 관저는 이후 미군정장관의 관저로 사용됩니다.

1939년, 일제는 경복궁에 위치했던 조선총독 관저를 경복궁 후원, 즉 현재의 청와대 자리로 옮겼습니다. 이 건물은 해방 이후 미군정청 존 하지 군정장관의 관저로 사용되었습니다.

[조선총독 관저(구 본관) 완공]

일제가 경복궁 후원에 건설을 시작했던 조선총독 관저인 구 본관 건물이 완공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이후 해방 후에도 중요한 용도로 사용됩니다.

1939년 9월 20일, 일제강점기 조선총독 관저의 구 본관 건물이 완공되었습니다.

1948

[이승만 대통령, 총독 관저를 '경무대'로 지정 및 관저로 사용]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일제 총독 관저를 '경무대'로 명명하고 대한민국 대통령 관저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기존 조선총독 관저였던 건물을 '경무대'로 명명하고 대통령 관저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써 이곳은 대한민국의 심장이 되었습니다.

1960

[윤보선 대통령, '경무대'를 '청와대'로 개칭]

4.19 혁명 이후 윤보선 대통령이 독재 정권의 이미지를 벗고자 '경무대'라는 명칭을 '청와대'로 변경했습니다. '푸른 기와집'이라는 뜻으로 한국 고유 문화를 나타내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4·19 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고 윤보선이 대통령이 된 후, '경무대'라는 이름이 독재 정권과 부정부패의 이미지가 강하게 느껴진다는 이유로 지금의 '청와대'로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김영상 서울시사편찬위원장의 제안 중 '푸른 기와집'이라는 뜻의 청와대가 한국 고유 문화를 나타낸다는 의미에서 채택되었습니다.

1967

[신라호텔 영빈관 완공]

국빈 맞이 공간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이승만 정부가 추진했던 영빈관 건설이 신라호텔 영빈관으로 완공되었습니다.

이승만 정부가 1958년부터 장충단공원에 건설을 시작했던 영빈관이 1967년 2월 '신라호텔 영빈관'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이는 국빈 접대 공간이 부족했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1968

[청와대 경내 녹지원 조성]

청와대 경내에서 야외 행사 공간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잔디를 심고 아름다운 정원인 녹지원을 조성했습니다.

1968년, 청와대 내에서 다양한 야외 행사를 개최할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기존 조선총독 관저 정원이었던 곳에 잔디를 심어 녹지원을 조성했습니다. 초기에 5,289㎡ 규모였던 녹지원은 이후 확장되었습니다.

1969

[여민2관(구 별관) 준공]

청와대 비서동 중 하나인 여민2관(당시 별관)이 준공되었습니다. 이는 청와대 비서 기구 확장에 따라 필요한 업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1969년, 청와대 비서동의 하나인 여민2관이 '별관'이라는 이름으로 준공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이후 오래된 건물로 D등급 안전진단을 받기도 했습니다.

1972

[여민3관(구 동별관) 준공]

청와대 비서동 중 하나인 여민3관(당시 동별관)이 준공되었습니다. 이는 비서진의 업무 공간 확충을 위한 조치였습니다.

1972년, 청와대 비서동의 하나인 여민3관이 '동별관'이라는 이름으로 준공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여민2관과 함께 노후화된 건물에 속합니다.

1973

[신라호텔 영빈관 매각 및 현재 신라호텔로 전환]

국빈 위주 운영으로 경영난을 겪던 신라호텔 영빈관이 일반에 매각되어 지금의 신라호텔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청와대 내 국빈 행사 공간의 필요성이 다시 대두되었습니다.

1967년 완공되었던 신라호텔 영빈관은 국빈 위주 운영으로 경영난을 겪게 되었고, 결국 1973년 일반에 매각되어 현재의 신라호텔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청와대 경내에 국빈을 맞이할 공식적인 공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다시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1975

[박정희 대통령, 청와대 내 전시 대피 시설 건설]

박정희 대통령 재임 시절, 국가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전시 대피 시설인 지하 벙커가 청와대 내에 건설되었습니다.

1975년, 박정희 대통령은 청와대 내에 국가 위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전시 대피 시설을 건설했습니다. 이 시설은 훗날 노무현 정부 때 국가위기관리센터 상황실로 수리 및 재활용되었습니다.

1978

[청와대 영빈관 건설 착공]

청와대 내 국빈 행사를 위한 공간의 필요성이 커지자, 기존 경농재 터에 현재의 영빈관 건물을 짓는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1978년 1월, 청와대 내에 국빈을 접대하고 대규모 회의를 개최할 공식적인 공간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경농재 옛 터에 현재의 영빈관 건물을 짓는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양식 목조 상춘재 신축]

기존 매화실(상춘실)을 철거하고, 73m2 규모의 천연슬레이트 지붕을 가진 양식 목조 건물인 새로운 상춘재가 신축되었습니다.

1978년 3월, 일제강점기 매화실이었던 상춘실을 헐어내고 73m2 규모의 천연슬레이트 지붕을 가진 양식 목조 건물인 상춘재가 신축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다과나 만찬 행사 등 의전용 건물로 사용되었습니다.

[청와대 영빈관 준공]

국빈 접대 및 대규모 회의 개최를 위한 영빈관 건물이 청와대 경내에 준공되었습니다. 이는 현재 청와대 내 현대식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1978년 12월, 대규모 회의, 외국 국빈 영접, 공식 행사 등을 개최하는 청와대 영빈관이 준공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현재 청와대 경내의 현대식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입니다.

1982

[전통 한옥 '상춘재' 신축]

기존 상춘재를 철거하고 417.96m2 규모의 전통 한옥 상춘재가 신축되었습니다. 이는 청와대 경내에 건립된 최초의 전통 한옥으로, 200년 넘은 춘양목을 사용하여 지어졌습니다.

1982년 11월, 기존의 양식 목조 상춘재를 헐어내고 417.96m2 규모의 전통 한옥 상춘재가 반년 만에 완성되며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청와대 경내에 건립된 최초의 전통 한옥으로, 200년이 넘은 춘양목을 활용하여 지어졌으며, 외빈 접견 등의 용도로 사용됩니다.

1985

[녹지원 확장]

청와대 경내 야외 행사 공간인 녹지원이 기존 5,289㎡에서 5,620㎡ 규모로 확장되었습니다.

1985년, 청와대 내의 야외 행사 공간인 녹지원이 기존의 5,289㎡에서 5,620㎡ 규모로 확장되었습니다.

1989

[경주 미남석불, 청와대 관저 뒤뜰로 이전]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미남석불)이 청와대 관저 신축 과정에서 현재의 관저 뒤뜰로 이동 배치되었습니다. 이 불상은 일제강점기에 경주에서 총독 관저로 옮겨졌던 유물입니다.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 일명 미남석불은 원래 경주에 있었으나 일제 시대 데라우치 마사타케 총독이 총독 관저로 옮겼고, 1930년대 관저 신축 시 한 번 더 옮겨졌다가 청와대 관저 신축에 따라 다시 현재의 관저 뒤뜰로 이동되었습니다.

[새로운 청와대 본관 기공]

노태우 정부 시절, 협소하고 노후화된 기존 건물을 대체하기 위한 새로운 청와대 본관 건물의 기공식이 진행되었습니다.

1989년 7월 22일, 노태우 정부는 협소하고 노후화된 기존 대통령 집무실 및 관저 건물을 대체하기 위해 새로운 청와대 본관 건물 기공식을 가졌습니다.

1990

[청와대 대통령 관저 준공]

노태우 정부 당시 대통령과 가족의 생활 공간인 청와대 대통령 관저가 준공되었습니다. 이로써 대통령 관저가 본관과 분리되어 별도의 독립된 공간이 되었습니다.

1990년, 노태우 정부는 대통령과 그 가족이 생활하는 공간인 청와대 대통령 관저를 신축하여 준공했습니다. 주거 공간의 기능을 최대한 확보하면서 전통 건축 양식을 도입한 것이 특징입니다.

[춘추관 준공]

대통령 기자회견 장소 및 출입기자들의 기사 송고실로 사용될 춘추관이 준공되었습니다. 이는 언론 소통의 중요한 창구 역할을 하게 됩니다.

1990년 9월 29일, 대통령의 기자회견 장소와 출입 기자들의 기사 송고실로 사용되는 춘추관이 준공되었습니다. 연건평 1,028평 규모의 지상 3층·지하 1층 구조로, 맛배 지붕에 토기와를 얹은 전통 양식을 따랐습니다. 명칭은 고려와 조선 시대의 춘추관에서 유래했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 관저 완공]

노태우 정부 시절 건설된 대한민국 대통령 관저가 공식적으로 완공되었습니다. 이는 대통령과 가족의 독립적인 주거 공간을 제공했습니다.

1990년 10월 25일, 대통령과 그 가족의 주거 공간인 청와대 대통령 관저가 완공되었습니다.

1991

[청와대 본관 완공]

노태우 정부의 자문위원회를 거쳐 1989년부터 신축이 진행되던 청와대 본관이 완공되었습니다. 이는 대통령 집무실 및 주요 회의 공간으로 활용되었습니다.

1991년 9월 4일, 노태우 정부의 자문위원회를 통해 계획되고 1989년 7월 22일 기공된 새로운 청와대 본관이 완공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대통령 집무실과 국무회의 등 주요 기능을 담당하는 핵심 공간이 되었습니다.

1993

[궁정동 안가 철거 및 무궁화동산 조성]

김영삼 정부의 탈권위 조치로 궁정동 안가 5채가 철거되고 그 자리에 시민들을 위한 무궁화동산이 조성되었습니다.

1993년 7월, 김영삼 정부는 군사 독재 정치와의 결별을 상징하는 조치로 궁정동 안가 5채를 철거하고 10,560㎡ 규모의 시민공원인 무궁화동산을 조성했습니다. 동산 가운데에는 궁정동을 의미하는 우물 정(井) 자 모양의 우물이 있으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자리에는 돌담이 세워졌습니다.

[청와대 구 본관 철거]

김영삼 정부의 지시로 일제강점기 조선총독 관저로 사용되던 구 본관 건물이 철거되었습니다. 이는 식민 잔재 청산의 상징적 의미를 가졌습니다.

1993년 10월 15일, 김영삼 정부는 일제 잔재 청산의 의미로 기존 조선총독 관저였던 청와대 구 본관 건물을 모두 철거했습니다.

[구 본관 철거 자리에 '수궁터' 복원]

구 본관 철거 후 그 자리를 옛 모습대로 복구하고 '수궁터'로 명명했습니다. 이는 경복궁을 지키던 수궁들이 있던 곳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되살린 것입니다.

1993년 11월, 일제 시대 조선총독 관사 건물인 구 본관이 철거된 뒤, 그 자리를 옛 모습대로 복구하고 '수궁터'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이는 옛날 경복궁을 지키던 수궁들이 있던 곳이라는 유래를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1995

[청와대 최초 로고 제정]

김영삼 정부 시절, 청와대의 상징인 로고가 처음으로 제정되었습니다. 이는 청와대와 대통령의 이미지를 대중에게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김영삼 정부(문민정부) 시절인 1995년에 청와대 로고가 처음으로 제정되었습니다.

1996

[청와대 앞길 개방 및 '효자동 사랑방' 조성]

김영삼 정부의 탈권위 정책의 일환으로 청와대 앞길이 개방되면서 대통령비서실장 공관이 '효자동 사랑방'이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1996년 2월, 김영삼 정부가 청와대 앞길을 개방하면서 기존 대통령비서실장 공관이 국민들을 위한 편의와 볼거리 제공을 위한 복합문화공간 '효자동 사랑방'으로 바뀌었습니다.

1997

['서별관 회의' 최초 개최]

IMF 경제 위기 논의를 위해 청와대 서별관에서 비밀리에 '서별관 회의'가 처음으로 개최되었습니다. 이 회의는 이후 역대 정부에서도 중요한 경제 현안을 비공식적으로 논의하는 통로로 활용되었습니다.

1997년 IMF 경제 위기 상황을 논의하기 위해 청와대 서쪽에 위치한 서별관에서 고위급 경제 관계자들이 모이는 '서별관 회의'가 처음으로 개최되었습니다. 이 회의는 청와대 내부에 위치하고 출입 기록이 남지 않아 보안 유지가 쉽다는 이점 때문에 이후 역대 정부에서도 경제 현안을 논의하는 중요한 비공식 통로로 활용되었으나, 밀실 합의라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2000

[영빈관 주변 노후 건물 정비 및 재단장]

청와대 영빈관 주변 노후 건물들이 정비되고 새롭게 단장되어, 영빈관의 기능과 미관이 더욱 개선되었습니다.

1998년 10월부터 시작된 영빈관 주변 노후 건물 정비 작업이 2000년 6월에 완료되어 영빈관이 새롭게 단장되었습니다.

2001

[칠궁 일반에 재개방]

1.21 사태 이후 관람이 금지되었던 칠궁이 청와대 관람과 연계하여 일반 대중에게 다시 개방되었습니다.

1.21 사태 이후 보안 문제로 관람이 금지되었던 칠궁이 2001년 11월 21일 청와대 관람 프로그램과 연계하여 일반 대중에게 다시 공개되었습니다.

2003

[지하 벙커, 국가위기관리센터 상황실로 재활용]

노무현 정부가 박정희 대통령 시절 만들어진 전시 대피 시설을 수리하여 국가위기관리센터 상황실(지하벙커)로 재탄생시켰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1975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 만들어졌던 전시 대피 시설을 2003년에 수리하여 국가위기관리센터 상황실, 즉 지하벙커로 개설했습니다.

2004

[여민1관 건설 착공]

노무현 정부가 참모와의 소통 강화를 목표로 '한국형 웨스트 윙'을 구상하며 새로운 비서동인 여민1관의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2004년 5월, 노무현 정부는 참모와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한국형 웨스트 윙'을 구상하며 새로운 비서동인 여민1관의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여민1관 완공]

노무현 정부의 비서동인 여민1관이 완공되었습니다. 이곳에는 비서실장실, 국정상황실, 대통령 간이 집무실 등이 마련되어 대통령과 참모들의 긴밀한 소통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었습니다.

2004년 12월, 노무현 정부가 참모와의 소통 강화를 위해 건설을 시작했던 여민1관이 완공되었습니다. 연건평 974평 규모의 지하 1층, 지상 3층 구조로, 2층에는 비서실장실과 국정상황실이, 3층에는 대통령 간이 집무실과 소회의실, 대회의실 등이 위치하여 대통령과 참모들이 보다 가깝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했습니다.

2005

[노무현 정부, 청와대 로고 수정 공개]

노무현 정부가 청와대 로고의 색상과 글꼴을 수정하여 새로운 로고를 공개했습니다. 이는 청와대의 변화된 이미지를 반영하려는 시도였습니다.

노무현 정부(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에 기존 청와대 로고의 색상과 글꼴을 수정한 새로운 로고가 공개되었습니다.

2007

[청와대 안내실 명칭 변경]

노무현 정부는 청와대 방문객들의 편의를 위해 안내실 명칭을 기존 번호 위주에서 '북악안내실'과 '분수대안내실'로 변경했습니다.

2007년 8월,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방문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기존 '55면회실'과 '22안내실'로 불리던 안내실 명칭을 각각 '북악안내실'과 '분수대안내실'로 변경했습니다.

2008

[이명박 정부, 청와대 로고 개선 공개]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의 권위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개선된 새로운 로고가 공개되었습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과 동시에 청와대의 권위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개선된 새로운 로고가 공개되었습니다.

[청와대 구내 은행 입점 및 안내실 '연풍문', '시화문'으로 개칭]

이명박 정부가 청와대 방문객 및 직원들의 편의를 위해 구내 입점은행을 농협으로 선정하고, 안내실 명칭을 '연풍문'과 '시화문'으로 변경했습니다. 이는 '시화연풍'의 의미를 담아 화합과 경제 성장을 기원하는 뜻이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청와대 구내에 방문객과 직원들을 위한 입점 은행으로 농협을 선정했습니다. 또한, 기존 북악안내실과 분수대안내실의 명칭을 '화합의 시대를 열고 해마다 경제가 성장한다'는 뜻의 '시화연풍'에서 따온 '연풍문'과 '시화문'으로 변경했습니다.

2009

[청와대 방문객 안내 건물 '연풍문' 준공]

청와대 방문객 안내 건물 역할을 하는 '연풍문'이 준공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지열 및 태양광 시스템을 적용한 친환경 건축물로 건설되었습니다.

2009년 2월, 청와대 방문객 안내 건물 역할을 하는 '연풍문'이 준공되었습니다. 지상 2층, 지하 1층 규모로, 1층에는 방문객 안내실, 휴게실, 출입게이트, 농협 청와대지점이 있으며, 2층에는 북카페와 접견실이 있습니다. 지열 및 태양광 시스템을 적용한 친환경 건물입니다.

2010

['청와대 사랑채' 리모델링 및 재개관]

기존 '효자동 사랑방'으로 불리던 건물이 리모델링을 거쳐 '청와대 사랑채'라는 이름으로 재개관했습니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배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습니다.

2010년 1월, 노후화된 '효자동 사랑방' 건물이 리모델링을 거쳐 '청와대 사랑채'라는 이름으로 재개관했습니다. 이곳은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배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1층에는 한국관광전시관과 기념품점, 쉼터 등이, 2층에는 청와대관과 국민소통체험관 등이 조성되었습니다.

2013

[박근혜 정부, 청와대 새 로고 공개]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의 새로운 로고가 공개되었습니다. 이 로고는 2022년까지 사용되었습니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과 동시에 대한민국 청와대의 새로운 로고가 공개되었습니다. 이 로고는 문재인 정부 임기 종료 시점인 2022년까지 사용되었습니다.

2016

['서별관 회의' 폐지]

대우조선해양 지원 방안 논란 등으로 '밀실 합의' 비판을 받던 서별관 회의가 마지막으로 개최된 후 폐지되었습니다.

대우조선해양 지원방안 결정 등 여러 논란으로 '관치의 온상', '밀실 합의'라는 비판을 받던 청와대 서별관 회의가 2016년 6월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개최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2017

[문재인 대통령 취임, 여민관 소통 행보 시작]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며 여민관 명칭을 환원하고, 여민관에서 주로 업무를 보는 등 참모들과의 소통을 강화하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기존 '위민관'이었던 비서동 명칭을 노무현 정부 시절 이름인 '여민관'으로 되돌렸습니다.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 한다'는 뜻의 여민관에서 주로 업무를 보며 참모들과의 소통을 강화하는 등 '광화문 대통령' 공약을 실현하기 위한 소통 행보를 시작했습니다.

[청와대 비서동 명칭 '여민관'으로 환원]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청와대 비서동 명칭을 '위민관'에서 '여민관'으로 공식 환원했습니다. 이는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2017년 5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비서동 명칭을 이명박 정부 시절 변경된 '위민관'에서 노무현 정부 시절의 '여민관'으로 환원했습니다. 이는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 한다'는 《맹자》의 '여민동락'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청와대가 국민을 위하는 것이 아닌 국민과 함께하는 모습을 지향한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2018

['서별관 회의', '경제현안조율회의'로 부활]

폐지되었던 서별관 회의가 문재인 정부에서 '경제현안조율회의'라는 이름으로 부활했습니다. 이는 경제 현안 논의를 위한 고위급 협의의 필요성 때문이었습니다.

2016년 6월 폐지되었던 서별관 회의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2018년 12월, '경제현안조율회의'라는 이름으로 부활했습니다. 이 회의는 밀실 논의를 양지로 끌어올리고 실무급도 이용하는 회의장으로 변모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2019

[청와대 서별관 내부 구조 리모델링]

낙후되고 폐쇄적이라는 지적을 받던 청와대 서별관의 내부 구조가 리모델링되었습니다. 이는 밀실 회의의 오명을 벗고 실무 회의 공간으로 활용도를 높이기 위함이었습니다.

청와대 서별관은 겉모습을 유지한 채 내부 구조를 리모델링했습니다. 이는 낙후되고 폐쇄적인 건물이라는 지적과 회의실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으며, 밀실에서 진행되던 회의를 양지로 끌어올리고 고위급뿐만 아니라 실무급도 이용하는 회의장으로 변모시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2022

[청와대, 대통령 관저 기능 상실]

대한민국 대통령이 기거하던 대통령 관저이자 국가 행정의 중심이었던 청와대가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으로 관저로서의 기능을 공식적으로 상실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1948년 8월 15일부터 기거하던 대통령 관저이자 국가 행정기관이었던 청와대가 윤석열 대통령의 집무실 이전 공약 이행에 따라 대통령 관저로서의 기능을 공식적으로 상실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및 청와대 전면 개방]

윤석열 대통령 취임과 함께 대통령 집무실이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되었으며, 청와대는 대통령 관저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고 일반 대중에게 전면 개방되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며 대선 공약이었던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공식화하고 용산구 국방부 청사로 집무실을 이전했습니다. 이에 따라 청와대는 대통령 관저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고, 국민들에게 전면 개방되어 역사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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