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궁궐, 유적,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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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3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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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유적,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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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은 조선 성종 대에 세 분의 대비를 모시기 위해 확장된 궁궐입니다. 임진왜란 이후 여러 차례 소실과 재건을 반복하며 왕실의 비극적인 사건들을 품은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창경원으로 격하되어 유원지로 변모하는 수난을 겪었으나 해방 후 복원 사업을 통해 본래의 궁궐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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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8

[수강궁 창건]

세종대왕이 즉위하며 상왕 태종을 모시기 위해 지금의 창경궁 자리에 '수강궁'을 지었습니다.

이는 훗날 창경궁 역사의 시작점이 됩니다.

1484

[창경궁으로 확장 개칭]

성종 15년, 세 분의 대비(정희왕후, 소혜왕후, 안순왕후)를 모시기 위해 기존 수강궁을 대대적으로 확장하고 '창경궁'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경복궁, 창덕궁과 달리 동향으로 지어진 것이 특징입니다.

성종 때 정전인 명정전, 편전인 문정전, 침전인 수령전 등이 건립되었으며, 궁의 둘레는 4,325척이었습니다.

1592

[임진왜란으로 전소]

조선에 큰 상처를 남긴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방화로 창경궁의 모든 건물이 불에 타 소실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1616

[광해군 대 재건]

임진왜란 이후 오랜 공사 끝에 광해군 7년 주요 건물들이 재건되었습니다.

이후 창경궁은 창덕궁과 함께 '동궐'로 불리며 왕조 역사의 중요한 무대가 됩니다.

창경궁 재건보다 7년 앞서 창덕궁이 먼저 재건되어 법궁이 됨에 따라 창경궁은 조선 전기에는 그다지 활용되지 않았으나, 창덕궁과 인접한 관계로 조선 왕조 역사의 중요한 무대로 활용되는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1624

[이괄의 난으로 소실]

인조반정 후 발생한 이괄의 난으로 인해 통명전 등 여러 건물이 다시 불에 타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창경궁은 잦은 화재로 소실과 재건을 반복하는 운명을 맞이했습니다.

1701

[장희빈 저주 사건]

숙종은 계비 인현왕후를 저주한 혐의를 받은 희빈 장씨를 창경궁 내 취선당에서 처형했습니다.

이곳은 왕실의 크고 작은 비극이 일어난 현장이기도 합니다.

1762

[사도세자 비극]

영조는 자신의 아들 사도세자를 창경궁 선인문 안뜰의 뒤주에 가두어 죽이는 임오화변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1830

[대규모 화재 발생]

환경전에서 시작된 큰 불로 영춘헌 등 여러 전각들이 소실되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창경궁은 역대 왕들의 거처이자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곳이었습니다.

1834

[창경궁 재건 완료]

순조 34년에 대규모 재건 사업이 진행되어 불에 탔던 대부분의 전각들이 다시 지어졌습니다.

이는 창경궁의 모습을 되찾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1909

[창경원 격하 및 대온실 완공]

일제강점기, 일본 제국은 순종 황제의 마음을 달랜다는 명목으로 창경궁을 대대적으로 훼손하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어 '창경원'으로 격하했습니다.

이 시기에 동양 최대 규모의 목조 식물원인 대온실이 준공되었습니다.

일본은 궁궐 내부의 궁문, 담장, 전각들을 훼손하고 일본식 건물을 세웠습니다. 권농장 자리에는 춘당지를 파고, 연못가에 정자를 짓는 등 궁원을 일본식으로 바꾸었습니다. 또한 1911년에는 이왕가박물관이 지어졌습니다. 이는 단순한 유원지 조성을 넘어선 문화재 훼손이자 역사 왜곡이었습니다.

1924

[밤 벚꽃놀이 시작]

일제는 1922년에 수천 그루의 벚꽃을 심고, 1924년부터 밤 벚꽃놀이를 열어 창경궁을 유원지로서의 이미지를 굳혔습니다.

1932

[종묘-창경궁 도로 개통]

1912년 일제가 계획했으나 순종의 반대로 미뤄졌던 창경궁과 종묘 사이의 도로가 순종 승하 후 강행되어 개통되었습니다.

이는 조선 왕실의 중요한 상징인 궁궐과 종묘의 맥을 끊는 행위였습니다.

1963

[사적 제123호 지정]

대한민국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서 창경궁이 사적 제12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는 복원을 위한 첫걸음이 됩니다.

1981

[창경궁 복원 계획]

대한민국 정부가 창경궁의 원래 모습을 되찾기 위한 복원 계획을 공식적으로 결정했습니다.

오랜 수난 끝에 다시 궁궐로서의 위상을 회복할 기회를 맞았습니다.

1983

[창경궁 명칭 회복]

'창경원'으로 불리던 이름이 본래의 '창경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이는 궁궐의 역사성과 정통성을 되찾는 중요한 상징적 조치였습니다.

1984

[동물원/식물원 이관]

궁궐 내부에 남아있던 동물 사육장이 서울대공원으로 완전히 이관되고 폐쇄되었습니다.

이로써 창경궁은 유원지로서의 기능에서 벗어나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1월에는 수정궁 철거가 시작되었습니다.

1986

[주요 구역 일반 공개]

동물원, 식물원 시설 및 일본식 건물이 철거되고 명정전, 문정전 등 주요 전각들이 옛 모습대로 복원되어 일반에 공개되었습니다.

창경궁이 다시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순간이었습니다.

1992

[일본식 장서각 철거]

일제강점기에 건립되었던 일본식 건물인 장서각이 최종적으로 철거되었습니다.

이는 창경궁 복원 사업의 중요한 마무리 단계 중 하나였습니다.

2004

[대온실 문화재 지정]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대온실이 근대 건축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제83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는 역사의 흔적을 보존하는 중요한 결정이었습니다.

2006

[창경궁 방화 사건]

방화범 채종기가 창경궁 문정전에 불을 질러 건물 일부가 소실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다행히 큰 피해는 막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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