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유교 사당, 세계유산, 사적, 건축물, 제례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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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3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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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사당, 세계유산, 사적, 건축물, 제례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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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의 역대 국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시고 제례를 봉행하는 유교 사당입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위치하며 조선시대에는 궁궐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2001년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조선시대 조상에 대한 예절을 중요하게 여겼던 정신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그 건축과 의례의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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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

[태조, 4대조 왕 추존]

조선 태조가 즉위 12일 만에 자신의 4대 조상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에게 왕의 칭호를 올리고, 그 왕비들에게도 존호를 올렸다.

이는 조선 왕실의 정통성을 확립하는 중요한 절차였다.

1394

[한양 천도 최종 결정]

조선 태조가 한양을 새로운 도읍지로 최종 결정했다.

신하들의 반발로 잠시 유보되었던 천도 계획이 확정되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한양 천도 단행]

태조가 새 도읍지 한양으로 천도를 단행했다.

이는 조선 왕조의 안정적인 기틀을 마련하는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종묘 건립 시작]

태조가 유교 이념에 따라 궁궐인 경복궁 동쪽에 종묘를 가장 먼저 짓기 시작했다.

이는 조상에 대한 예와 효를 중시하는 조선의 건국 정신을 보여주는 행보였다.

1395

[종묘 정전 완공]

1394년 12월에 시작된 종묘 건설 공사가 이듬해 9월에 마쳐졌다.

창건 당시 대실 7칸, 석실 5칸 규모였으며, 공신당, 신문 등이 함께 지어졌다.

[4대조 신주 봉안]

종묘가 완성되자 태조는 날을 받아 4대 조상의 신주를 개성에서 옮겨와 종묘에 봉안했다.

이는 종묘가 조선 왕조의 정신적 중심지로 자리매김하는 순간이었다.

1419

[정종 신위 봉안 논의]

세종 원년에 2대 왕 정종이 승하하며 그의 신위를 종묘에 모시게 되었다.

그러나 종묘 정전 5칸에 태조와 4대조 신위가 모두 차 있어, 정종 신위를 어떻게 모실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1421

[영녕전 건립 결정]

정종 신위 봉안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 송나라의 예를 따라 종묘 서쪽 바깥에 별묘를 세워 목조의 신위를 옮겨 모시기로 결정했다.

이 별묘가 바로 '영녕전'이다.

[영녕전 완공 및 신위 이전]

“조종과 자손이 함께 길이 평안하라”는 뜻의 영녕전이 완공되었다.

목조의 신위는 영녕전으로 옮겨졌고, 정전에는 익조 이하의 신위가 차례로 위로 옮겨졌다.

1443

[망묘루 연못 조성]

세종 25년에 망묘루 옆에 사각형 연못이 조성되었다.

연못 가운데 둥근 섬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평평하다는 고대 사상을 반영하며, 향나무가 심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1592

[종묘, 임진왜란 소실]

임진왜란 발발로 종묘 정전과 영녕전이 모두 불에 타 소실되었다.

이는 조선 왕실의 정신적 상징이 큰 타격을 입은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1608

[종묘 재건 시작]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종묘의 재건 공사가 선조 41년(1608년) 1월에 시작되었다.

재건 형식 논의 끝에 임진왜란 이전의 11칸 규모로 정전이 재건되었다.

[종묘 재건 완공]

1608년 1월에 시작된 종묘 재건 공사가 광해군이 즉위하고 나서 5개월 뒤인 5월에 완공되었다.

소실되었던 종묘가 다시 왕실의 중심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1667

[영녕전 증축]

영녕전이 현종 8년에 좌우 협실 각 1칸씩 증축되었다.

이는 모셔야 할 신위 수가 늘어남에 따라 공간 확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1726

[정전 4칸 증축]

종묘 정전이 영조 2년에 4칸 증축되었다.

불천위 제도의 영향으로 정전에 모시는 신위 수가 늘어나면서 건물이 확장되었다.

1836

[정전·영녕전 대규모 증축]

헌종 2년에 종묘 정전이 4칸, 영녕전 좌우 협실이 각 2칸 증축되었다.

이로써 정전은 19칸, 영녕전은 현재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1963

[종묘, 사적 지정]

종묘가 대한민국 사적으로 지정되어 보존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1969

[종묘제례 연 1회 봉행]

조선시대 횃불과 초를 밝히고 한밤중에 봉행되던 종묘 제례가 1969년부터 해마다 한 차례씩 낮에 봉행되기 시작했다.

1971

[종묘제례 정기 봉행]

1971년 이후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에서 매년 5월 첫째 주 일요일 낮에 정전과 영녕전에서 각각 한 차례씩 종묘제례를 올리고 있다.

1995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종묘의 건축물과 600여 년간 이어진 제례행사의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은 조선 왕실의 보물이다..

2001

[종묘제례악 무형유산 등재]

조선 왕조의 역대 왕과 왕비에게 올리는 종묘제례와 세종대왕이 작곡한 종묘제례악이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등록되었다.

이미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종묘와 함께 그 문화적 가치를 더욱 드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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