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구단
역사적 제단, 국가유산, 대한제국 유적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37:42
환구단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제단이자 대한제국 고종이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며 독립 의지를 표명한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일제에 의해 훼철되어 본래의 모습을 잃었지만 황궁우와 석고 등이 남아 대한제국의 위용과 아픈 역사를 동시에 증언하는 중요한 국가유산입니다.
983
[고려 성종, 환구제 처음 시행]
고려 성종이 즉위 2년째 되던 해 정월, 환구단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환구제가 처음으로 시행되었다. 이후 여러 번 설치와 폐지를 반복했다.
고려 성종 2년 정월, 천자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환구제가 처음으로 시행되었다. 환구제는 설치와 폐지를 반복하다가 조선 초기에 제천 의례가 억제되면서 폐지되었다.
1456
[조선 세조, 환구제 부활 시도]
조선 세조가 왕권 강화를 위해 환구제를 일시적으로 제도화하고, 이듬해 환구단을 설치하여 제사를 다시 지내도록 했다.
조선 세조 2년(1456),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환구제를 일시적으로 제도화하였고, 1457년 환구단을 설치하여 제사를 다시 올리게 되었다.
1464
[조선 세조, 환구단 제사 중단]
세조 10년에 마지막 환구단 제사를 지낸 후, 환구단에서의 제천 의례는 중단되었고 종묘로 대체되었다.
세조 10년(1464년)에 행해진 제사를 끝으로 환구단에서의 제천 의례는 중단되었고, 이후 종묘에서 대체되었다.
1897
[대한제국 선포와 고종 황제 즉위, 환구단 재건]
고종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선포하고 황제에 즉위하며, 황제국으로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환구단을 재설치했다. 당시 환구단은 중국 사신을 접대하던 남별궁 터에 화강암 3층 단으로 지어졌다.
1897년(광무 원년),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환궁한 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선포하고 환구단에 나아가 천지에 고하는 제사를 드린 후 황제로 즉위했다. 이때 만들어진 환구단은 중국 사신들을 접대하던 남별궁 터에 화강암 3층의 단으로 조성되었으며, 중앙 상부는 금색 원추형 지붕이었다. 환구단에서는 동지나 새해 첫날 천지만물에 깃든 신의 신위를 모시고 제천 의식을 거행했다.
1899
[황궁우 건립]
환구단 북쪽에 화강암 기단 위에 세워진 3층 팔각 정자인 황궁우가 건립되었다. 이곳에 신위판을 모시고 제천 의식을 보조하는 역할을 했다.
환구단이 조성된 지 2년 후인 1899년(광무 4년), 환구단 북쪽에 화강암 기단 위에 세워진 3층 팔각 정자 형태의 황궁우가 건립되었다. 황궁우는 건물 내부는 통층으로 되어 있고, 천장의 칠조룡 조각은 황제를 상징하며, 이곳에 신위판을 모셨다.
1902
[고종 즉위 40년 기념 석고 설치]
고종 황제의 즉위 40년을 기념하여 황궁우 앞에 돌로 만든 북, 즉 석고 3개가 세워졌다. 석고는 제천 의례에서 사용되는 악기를 상징하며, 화려한 용 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1902년(광무 7년), 고종 황제 즉위 40년을 기념하기 위해 황궁우 앞에 돌로 만든 북, 석고 3개가 세워졌다. 이 석고는 제천 의례를 위한 악기를 상징하며, 몸체에는 화려한 용 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1912
[일제에 의한 환구단 본단 철거]
일본 제국이 대한제국의 상징이었던 환구단 본단을 강제로 철거하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 철도호텔을 세웠다. 이로 인해 원형의 환구단 본단은 완전히 사라졌다.
1912년, 일제는 대한제국의 황제국 위용을 상징하던 환구단 본단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 철도호텔을 세웠다. 이 건물은 1968년 지금의 조선호텔 건물로 대체되었다. 환구단 본단은 완전히 사라졌으나, 황궁우와 석고 등은 남았다.
1924
['원구단' 명칭 사용 기록]
1924년 11월 24일자 동아일보 기사에서 '환구단'이 '원구단'으로 한글 표기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이는 당시 '圜' 자가 '원'으로 읽혔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1924년 11월 24일자 동아일보 기사를 통해, 당시에는 '환구단(圜丘壇)'이 한글로 '원구단'으로 표기되었음이 확인된다. 이는 圜(둥글 원, 돌 환)이라는 글자가 당시 '원'으로 주로 읽혔음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기록이다.
1925
['원구단' 명칭 사용 기록 (2차)]
1925년 6월 25일자 동아일보 기사에서도 '환구단'이 '원구단'으로 한글 표기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이는 圜 자가 '원'으로 읽혔던 당시의 언어 습관을 재확인시켜준다.
1925년 6월 25일자 동아일보 기사에서도 '환구단(圜丘壇)'이 한글로 '원구단'으로 표기되었음이 확인된다. 이는 圜(둥글 원, 돌 환)이라는 글자가 당시 '원'으로 주로 읽혔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역사적인 기록이다.
1953
[화폐개혁으로 '환' 발음 정착]
1953년 화폐개혁 당시 화폐 단위를 圓에서 圜으로 변경하고 음독을 '환'으로 정하면서, '원구단'도 '환구단'으로 불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추정된다.
1953년 화폐개혁이 단행되면서 화폐 단위가 '圓'에서 '圜'으로 바뀌고, 이때부터 圜의 음독이 '환'으로 공식 변경되었다. 이로 인해 기존에 '원구단'으로 불리던 명칭이 '환구단'으로 바뀌어 불리게 된 주요 계기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1967
[환구단, 사적 제157호로 지정]
환구단이 대한민국의 사적 제157호로 지정되어 국가 문화재로서 보존 관리의 중요성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1967년 7월 15일, 환구단은 대한민국의 사적 제157호로 지정되었다. 이는 대한제국의 중요한 역사적 유산으로서 국가적 보호와 보존의 필요성이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1968
[조선호텔 신축]
일제가 세웠던 총독부 철도호텔 건물이 헐리고, 그 자리에 현재의 웨스틴 조선호텔 건물이 신축되었다. 이는 환구단 본단 자리가 계속해서 상업 시설로 사용됨을 의미한다.
1968년에 1912년 일제가 환구단 본단 자리에 세웠던 총독부 철도호텔 건물이 철거되고, 그 자리에 현재의 웨스틴 조선호텔 건물이 신축되었다. 이는 환구단 본단이 훼손된 자리가 현재까지도 상업 시설로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07
[환구단 정문 발견]
1960년대 해체되어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던 환구단의 정문이 강북구 우이동에서 발견되었다. 이로써 정문의 복원 공사가 시작되었다.
1960년대에 해체되어 없어진 것으로 알려졌던 환구단의 정문이 2007년 8월 강북구 우이동 옛 그린파크호텔 터에서 발견되었다. 이 발견을 계기로 환구단 정문의 복원 공사가 시작되었다.
2009
[환구단 정문 복원 완료]
2007년 발견되었던 환구단 정문의 복원 공사가 2년여 만에 마무리되어, 고종의 혼이 서린 환구단 정문이 42년 만에 제 모습을 찾게 되었다.
2007년 8월 발견되어 복원 공사가 진행되던 환구단 정문이 2009년 12월에 마침내 복원 공사를 완료하였다. 이로써 일제강점기 이후 사라졌던 환구단의 정문이 42년 만에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