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산, 명소, 자연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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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3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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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명소, 자연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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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에 우뚝 솟은 인왕산은 종로구와 서대문구에 걸쳐있습니다.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는 바위산으로 겸재 정선의 국보 <인왕제색도>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합니다. 고려 강감찬 장군부터 윤동주 시인 그리고 한국 전쟁의 비극까지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의 흥미로운 일화와 주요 사건들이 깃들어 있어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산입니다. 한때 통제되기도 했으나 현재는 아름다운 조망과 역사적 의미를 품은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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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 인왕산 호랑이 퇴치 전설]

고려 강감찬 장군이 젊은 시절 인왕산 일대에 출몰하던 호랑이들을 퇴치했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고려 시대 강감찬 장군이 젊은 시절 인왕산 판관으로 부임했을 때, 인왕산과 북한산 일대에 출몰하던 호랑이들로 인해 백성들이 고통받자, 노승으로 변신한 호랑이 대장을 알아보고 호통을 쳐 호랑이들을 쫓아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1600

[이항복, 인왕산 필운대 거주]

조선 중기의 명신 필운 이항복이 인왕산 부근 필운대에 거주하며 활동했습니다.

조선 중기 명신 필운 이항복이 인왕산 부근 필운대에 살았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1700

[박태성과 호랑이의 40년 인연]

조선 숙종 시대 박태성이 아버님 묘소를 오갈 때 인왕산 호랑이가 태워다 주었으며, 이 호랑이는 박태성 사망 후 함께 죽어 산소 옆에 묻혔습니다.

조선 숙종 치세 때 박태성이 고양군에 묻힌 아버지의 산소를 찾아뵐 때마다 무악재를 넘어야 했는데, 40년간 호랑이 한 마리가 박태성을 태워다 주었고, 박태성 사망 후 호랑이도 산소 옆에서 죽자 후손들이 함께 묻어주고 제사까지 지냈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묘소는 북한산에 위치합니다.

1880

[정약대, 인왕산에서 대금 연주]

대한제국 고종 시절 대금 명인 정약대가 매일 인왕산에 올라 대금을 불며 나막신에 모래를 채웠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대한제국 고종 시절 대금 명인이었던 정약대가 매일 인왕산에 올라 대금을 불었으며, 한 곡조가 끝날 때마다 나막신에 모래를 한 알씩 넣어 나막신이 가득 차면 돌아갔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1939

[인왕산 바위에 '동아청년단결' 글씨 새겨짐]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미나미 지로가 인왕산 바위에 '동아청년단결'이라는 구호를 새기도록 했습니다.

황기 2599년(1939년) 조선총독부 미나미 지로가 인왕산 허리의 큰 바위에 '동아청년단결'이라는 여섯 글자를 새기도록 했다. 이는 신동아의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상징으로, 동아의 오족(族)을 대표한 청년들의 단결을 굳게 할 것을 맹세하기 위한 것이었다.

1940

[윤동주 시인, 인왕산 부근 거주]

윤동주 시인이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 인왕산 부근에 거주했으며, 이를 기념하는 공원이 조성되었습니다.

윤동주 시인이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 인왕산 부근에 살았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윤동주 시인 공원이 자하문고개 근처에 조성되었습니다. 바로 옆 청운공원은 서울의 조망 명소 중 하나입니다.

1950

[한국 전쟁 중 안병범 대령 인왕산에서 자결]

한국 전쟁 당시 안병범 육군 대령이 낙오병을 모아 유격대를 조직, 인왕산에서 활동하다가 국군의 참패 소식에 조국을 한탄하며 자결했습니다.

한국 전쟁 당시 안병범 육군 대령(사후 준장 추증)은 낙오병 등을 모아 유격대를 결성하고 인왕산에서 활약했습니다. 그러나 국군의 참패 소식을 듣고 조국의 처지를 한탄하며 자결하였습니다.

1967

[영화 '대괴수 용가리' 인왕산 배경]

김기덕 감독의 영화 '대괴수 용가리'에서 인왕산 용가리가 서울 문화재를 파괴하고 주인공에게 물리쳐지는 내용이 다뤄졌습니다.

김기덕 감독의 1967년 영화 《대괴수 용가리》에서는 인왕산 용가리가 등장하여 경복궁, 서울특별시청 등의 문화재들을 파괴합니다. 해당 영화 극중 유광남 우주비행사(이순재 분)가 용가리를 물리칩니다.

1968

[인왕산, 1·21 사태 현장 되다]

1.21 사태 당시 북한 무장공비가 인왕산 부근에서 활동했으며, 최규식 총경 등이 전사하고 무장공비 김신조가 인왕산에서 생포되었습니다.

1968년 1월 21일 1·21 사태 발생 당시 서울 종로경찰서장 최규식 총경(사후 경무관 추서)과 정종수 경장(사후 경사 추서)이 무장공비를 막다가 자하문 아래에서 전사했습니다. 경복고등학교 수위였던 정사영 씨도 살해당했습니다. 무장공비 중 유일한 생존자인 김신조 씨는 인왕산에서 생포되었습니다.

1993

[인왕산, 25년 만에 부분 개방]

1.21 사태 이후 약 25년간 출입이 통제되었던 인왕산이 시민들에게 부분적으로 개방되었습니다.

1968년 1·21 사태 이후 인왕산은 약 25년 넘도록 출입이 통제되다가 1993년 이후 부분 개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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