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산, 국립공원, 명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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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3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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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국립공원, 명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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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경기도에 걸쳐 있는 북한산은 세계적으로 드문 도심 속 국립공원입니다. 약 1억 7천만 년 전 형성된 웅장한 화강암 봉우리와 맑은 계곡이 어우러져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며 연평균 650만 명이 방문하는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국립공원이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북한산성 등 풍부한 역사 유적과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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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10m

[북한산 지형 형성]

약 1억 7천만 년 전, 거대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북한산의 주요 암봉들이 형성되었습니다.

북한산은 약 1억 7천만 년 전에 거대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주요 암봉들이 솟아오르며 현재의 수려한 지형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 암봉들 사이로 수십 개의 맑고 깨끗한 계곡이 형성되어 산과 물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BC 1C

[마한의 땅, 북한산]

북한산 일대는 한반도 고대 국가인 마한의 영토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산은 고대 삼국시대 이전 한반도에 존재했던 마한의 영토에 속해 있었으며, 이 지역은 고대부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로 여겨졌습니다.

[백제 시대의 북한산 이름]

삼국시대 백제에서는 북한산을 '한산'으로, 인수봉을 '부아악'으로 불렀으며, 시조인 비류와 온조 형제가 이곳에 올랐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백제 시대에 북한산은 '한산'이라 불렸고, 그중 인수봉은 '부아악'이라는 이름을 가졌습니다. 백제의 시조로 알려진 비류와 온조 형제가 이 산에 올랐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백제 건국 초기부터 중요한 의미를 지닌 산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1

[북한산, '횡악'으로 개칭]

서기 31년 이후, 북한산은 '횡악'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게 되었습니다.

31년 이후, 북한산은 '횡악(橫嶽)'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이는 산의 지형적 특징이나 당시의 문화적 배경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475

[고구려, 북한산군 설치]

고구려가 북한산 지역을 정벌하고 '북한산군'이라 칭하며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중요성을 더했습니다.

475년, 한성백제 멸망 후 고구려가 이곳을 정벌하고 행정 구역으로 '북한산군(北漢山郡)'을 설치하면서 북한산 지역은 고구려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는 삼국시대 한강 유역 쟁탈전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553

[신라, 북한산 지역 정벌]

신라가 고구려를 물리치고 북한산 지역을 정벌하며 한강 유역의 주도권을 장악했습니다.

553년, 신라가 고구려로부터 북한산 지역을 빼앗고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는 중요한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이는 신라가 삼국 통일의 기반을 다지는 결정적인 사건 중 하나입니다.

557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건립]

신라는 북한산 지역에 '북한산주'를 일시적으로 설치하고, 진흥왕의 영토 확장을 기념하는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를 세웠습니다.

557년, 신라는 북한산 일대에 '북한산주(北漢山州)'를 일시적으로 설치하고, 신라 진흥왕이 북한산까지 영토를 확장했음을 기념하는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를 세웠습니다. 이 비석은 신라의 삼국 통일 과정에서 중요한 역사적 증거로 남아 있습니다.

676

[신라 시대의 '부아산' 명칭]

남북국시대 신라에서는 북한산을 '부아산'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남북국시대 신라에서 북한산은 '부아산(負兒山)'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며, 여러 시대에 걸쳐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던 북한산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993

[삼각산이라는 이름의 시작]

북한산의 주요 봉우리인 인수봉, 백운대, 만경대가 마치 삼각처럼 보여 '삼각산'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993년 이후, 북한산의 주요 봉우리인 부아봉(현 인수봉), 중봉(현 백운대), 국망봉(현 만경대) 세 봉우리가 모여 있는 모습이 마치 삼각처럼 보인다 하여 '삼각산(三角山)'으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명칭은 조선 시대까지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1711

[북한산성 대규모 축성]

조선 시대에 고려 시대 축성된 중흥산성을 보수하고 확장하여 '북한산성'을 축성하며 수도 한성의 방어 체계를 강화했습니다.

1711년, 조선 시대에 고려 시대에 축성된 중흥산성을 대규모로 보수하고 확장하여 '북한산성'을 완성했습니다. 이는 수도 한성의 북쪽 방어를 위한 중요한 군사 시설로, 이후 산의 이름이 '북한산'으로 불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10

['북한산' 명칭의 정착]

일제강점기 이후 '삼각산' 대신 '북한산'이라는 명칭이 점차 정식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조선 시대에 '한성부의 북쪽에 있는 산'이라는 의미에서 별칭으로 사용되던 '북한산'이라는 명칭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삼각산' 대신 점차 공식적인 산 이름으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1983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승격]

북한산은 대한민국에서 15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수려한 자연경관과 문화유산을 보전하고 탐방객들에게 쾌적한 휴식처를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1983년 4월 2일, 북한산은 대한민국의 15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도심 속에 위치하여 수려한 자연경관과 풍부한 생태계를 자랑하며, 북한산성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유적을 품고 있어 연간 650만 명 이상의 탐방객이 찾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자연공원입니다. '단위면적 당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국립공원'이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2003

[북한산(삼각산), 명승 지정]

북한산(삼각산)은 수려한 자연 경관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명승 제1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2003년 10월 31일, 북한산(삼각산)은 그 빼어난 자연 경관과 오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명승 제1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는 북한산이 단순한 산이 아닌, 국가적 보존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2010

[북한산 둘레길 개방]

북한산의 저지대 자락을 연결하는 둘레길 코스가 개방되어, 더 많은 사람이 북한산의 자연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10년 8월 말, 북한산 국립공원 외부 탐방 수요에 발맞춰 북한산 저지대 자락을 연결하는 '북한산 둘레길' 코스가 개방되었습니다. 이는 탐방객들에게 보다 다양한 형태의 자연 휴식 공간을 제공하며, 산림 복지 증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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