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산, 국립공원, 명산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37:38
• 충청남도 공주 계룡시 대전 유성구에 걸쳐 있는 높이 845m의 명산. • 닭의 볏을 쓴 용을 닮아 계룡산이라는 신비로운 이름이 붙여진 곳. • 1968년 대한민국 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국가적 보물. • 동학사 갑사 등 유서 깊은 사찰과 남매탑이 자리한 역사적 요충지. • 조선 개국 전 도읍지로도 거론된 비범한 기운의 명당. • 일출 낙조 폭포 단풍 등 팔경과 공주 십경에 빛나는 절경의 보고.
660
[백제 시대의 계룡산 이름, 계람산 기록]
백제시대부터 계룡산은 '계산' 또는 '계람산'으로 불렸으며, 중국 당대의 문헌에도 백제의 동쪽에 '계람산'이 있다는 기록이 확인된다.
계룡산은 백제시대에 '계산' 또는 '계람산'으로 불렸다는 기록이 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중국 당대(唐代) 장초금이 지은 <한원>이라는 책의 '괄지지' 부분에 '國(백제)東有鷄籃山'(백제의 동쪽에 계람산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백제 멸망 시점(660년)까지 계룡산이 중요하게 인식되었음을 시사하며, 신라에서도 '계람산'으로 불렸던 것으로 미루어 계룡산의 오랜 역사를 엿볼 수 있다.
750
통일신라시대에는 계룡산이 '오악'의 하나로 중요시되었다. 신라는 국가의 제사를 대사, 중사, 소사로 분류했는데, 계룡산에서 지내는 제사는 중사에 해당될 정도로 중요한 위상을 가졌다. 이 신앙은 고려와 조선에 걸쳐 전해져 내려왔으며, 신원사의 중악단에서 제사가 지내져왔다.
850
[계룡산성 축조 (나말선초)]
9세기 중엽, 나말선초 시기에 계룡산 능선을 따라 3.5km 길이의 계룡산성이 축조되었으며, 이는 후백제가 처음 쌓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계룡산성은 나말선초(9세기 중엽)에 연천봉, 관음봉, 쌀개봉 능선을 거쳐 서쪽 계곡 합류 지점까지 약 3.5km에 걸쳐 축조된 산성이다. 계룡산의 서쪽에 위치한 점을 미루어 후백제가 처음 축조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1392
[조선 개국 전 도읍 후보지 논의]
조선 왕조 개국 직전, 이성계가 계룡산 신도안을 새 도읍지로 삼으려 궁궐 공사까지 진행했으나, 산신령의 경고로 중단했다는 흥미로운 설화가 전해진다.
계룡산의 남쪽 지역인 신도안은 조선 왕조 개국 직전 도읍 후보지로 꼽혔다. 태조 이성계는 신도안에 도읍을 정하려 궁궐 공사를 시작했으나, 반년쯤 공사가 진행되었을 때 하얀 할머니(계룡산 산신령)가 나타나 공사를 중지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울 것이라 경고했다. 할머니는 '정도령'이라는 신인이 이곳에 도읍을 정하고 800년간 다스릴 것이니 이성계는 500리 북쪽으로 올라가 도읍을 정하라고 조언했다. 이에 이성계는 공사를 중지했고, 그때 일꾼들이 신발에 묻은 흙을 털어 신털봉이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1968
계룡산은 1968년 12월 31일, 지리산에 이어 대한민국에서 2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이로써 계룡산은 동학사지구, 갑사지구, 신원사ㆍ수통골지구 등 3개 구역으로 나뉘어 관리되고 있다.
2012
[공주 10경 선정]
공주문화원 등 지역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에서 계룡산이 '공주 10경' 중 하나로 최종 선정되었다.
2012년 7월 2일, 공주문화원, 공주예총, 향토사학자, 언론인, 사진작가 등으로 구성된 공주 10경 선정위원회에서 선정한 후보지 15개소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계룡산이 최종적으로 공주 10경에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