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장

직위, 행정 관료, 지방자치단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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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3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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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의 행정 사무를 총괄하는 광역지방자치단체장입니다. 다른 광역단체장과 달리 유일하게 장관급 대우를 받으며 독자적인 예산 편성과 세금 조달 권한을 가집니다. 현재는 오세훈 시장이 재임 중입니다.

연관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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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초대 경성부윤 취임]

광복 직후 초대 경성부윤으로 김창영이 취임하며 도시 행정의 첫걸음을 떼었습니다.

이는 해방 직후 혼란스러운 시기에 서울의 기초를 다지는 중요한 시작점이었습니다.

[美 군정 첫 경성부윤]

미군정 최고사령관 존 하지에 의해 현역 육군 소령 제임스 S.

킬러프가 경성부윤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는 미군정 시기 서울 행정의 시작을 알리는 주요 사건입니다.

[이범승 경성부윤 취임]

이범승이 3대 경성부윤으로 취임하여 혼란 속에서 도시 행정을 이끌었습니다.

1946

[김성환 총무부장 대리]

총무부장 김성환이 경성부윤직을 임시 대리하며 행정 공백을 메웠습니다.

[김형민 경성부윤 취임]

김형민이 4대 경성부윤으로 취임하며 한성시장 명칭을 같이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서울이 독립적인 지위를 얻기 전 과도기적 상황을 보여줍니다.

[초대 서울특별자유시장]

김형민이 서울특별시가 경기도에서 독립한 후 초대 서울특별자유시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전재민 수용 계획을 추진하며 남산동 일본인 여관을 수용소로 활용하는 등 전후 복구에 힘썼습니다.

요정, 사찰, 빈집 등을 개방하여 전재민을 수용하는 등 광복 직후 서울의 재건을 위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48

[윤보선 서울시장 취임]

윤보선 시장은 문맹퇴치를 위해 9개 초등학교를 신설하고 동회에 국문보급반을 운영했습니다.

또한 허례허식 타파를 위한 신생활운동을 전개하고 식량 배급 행정을 정상화했습니다.

1949

[이기붕 서울시장 취임]

이기붕 시장은 한국전쟁 발발 후 부산에 서울특별시 부산행정청을 설치해 피난민 구호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3천 명의 걸인 수용을 위해 9개 무료숙박소를 설치하고, 1949년 8월 처음으로 운수업자를 지정해 105대의 버스를 운영했습니다.

[이기붕 서울시장 재임]

이기붕 시장은 한국전쟁 피란민 구호와 생활 안정을 위해 부산에 서울특별시 부산행정청을 설치하고 무료 숙박소를 운영했습니다.

1949년 8월 처음으로 운수업자를 지정하여 버스를 운영하는 등 도시 기반을 다졌습니다.

1951

[전예용 권한대행]

서울특별시 부시장 전예용이 시장 권한대행으로서 전후 혼란기 서울 행정을 임시로 이끌었습니다.

[김태선 서울시장 취임]

김태선이 5대 서울시장으로 취임하여 전후 복구 시기 도시 행정을 담당했습니다.

1952

[이익흥 권한대행]

서울특별시 부시장 이익흥이 시장 권한대행을 수행하며 시정을 운영했습니다.

[김태선 서울시장 재임]

김태선이 6대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며 전후 복구와 도시 재건에 힘썼습니다.

1956

[고재봉 서울시장 취임]

고재봉 시장은 시립병원 등 6개 병원과 보건소 시설을 개선하고, 식수난 해결을 위해 공동정호 100개소를 신설하는 등 시민 생활 환경 개선에 주력했습니다.

1957

[허정 서울시장 취임]

허정 시장은 우회도로 정비 및 보도 포장을 대대적으로 실시하고, 주택난 해소를 위해 120만 평 미아리 지구 택지 조성 방안을 마련하는 등 도시 기반 시설 확충에 기여했습니다.

그는 후에 국무총리를 역임했습니다.

1959

[임흥순 서울시장 취임]

임흥순 시장은 청계천 암거공사를 추진하고, 1960년 아시아 축구대회 대비 효창운동장에 축구장을 개설했습니다.

또한 4개 보건소 신축 등 시민 위생 환경 개선에 힘썼습니다.

1960

[장기영 서울시장 취임]

장기영 시장은 중부병원을 일반병원으로 전환하고 부속 결핵요양소를 신설했습니다.

오물 수거 지역 확장 및 공동우물 설치 등 시민 건강 증진에 기여했습니다.

[정종철 직무대행]

서울특별시 부시장 정종철이 시장 직무대행을 수행하며 시정을 운영했습니다.

[김주흥 직무대행]

서울특별시 부시장 김주흥이 시장 직무대행을 수행하며 시정을 운영했습니다.

[최초 민선 서울시장]

김상돈이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민선 서울시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건전 재정 도모와 공직기강 확립에 힘썼으며, 도심 교통량 분산 및 공장 교외 이전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5.16 군사정변으로 사직하게 됩니다.

1961

[현역 군인 서울시장]

윤태일은 현역 군인 신분으로 서울시장직에 올랐습니다.

1962년 서울특별시행정에관한특별조치법 제정으로 중앙 관장 사무가 대폭 이양되었고, 인구 500만을 기준으로 한 도시계획사업을 추진하며 교외 지역 발전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1963

[최초 서울시 장기계획]

윤치영 시장은 구로, 숭인 등 4개 지구 도시계획을 수립하고 제2한강교(양화대교)를 준공했습니다.

서울시 최초의 장기계획인 시정 10개년 계획을 수립하는 등 서울의 미래를 그렸습니다.

1966

[김현옥 시장 취임]

김현옥 시장은 세종로 지하도 개설, 자동차 전용 입체고가도로 건설 등 대규모 토목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세운상가 등 도심 재개발, 한강 개발 사업, 남산 터널 개통, 400여 동 시민아파트 건설 등 '불도저 시장'이라는 별명처럼 서울의 외형을 크게 변화시켰습니다.

1970

[지하철 1호선 건설]

양택식 시장은 20년간의 도시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영동지구 구획정리사업을 확정했습니다.

무허가 건물 정리 10개년 계획과 인구 분산 계획을 수립하고, 서울 지하철 1호선을 건설하며 현대 서울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1974

[구자춘 시장 취임]

구자춘 시장은 도시 새마을 운동을 추진하며 서민 주택 건설, 서민 생활 보호 시책에 주력했습니다.

도시 기간 시설 설치 및 생활 환경 시설 확충, 불량 지구 재개발 등 내실 있는 도시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1978

[정상천 시장 취임]

정상천 시장은 도시 기능 시설 배치와 가로 구조물 정비, 청소 행정 혁신을 추진했습니다.

도시가스 시설 확충 및 의료보험 확대 등 서민 생활 안정 종합 대책과 에너지 절약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1980

[88서울올림픽 유치 성공]

박영수 시장은 올림픽 유치단장으로 바덴바덴 IOC 총회에 참석하여 1988년 서울 올림픽 유치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또한 시민 헌수 운동을 통해 1천만 그루의 나무를 심는 '푸른 서울 가꾸기'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1982

[김성배 시장 취임]

김성배 시장 재임 중 지하철 2호선 일부 구간(종합운동장~교대, 을지로입구~성수)이 개통되었고, 종합운동장 야구장 완공 및 주경기장 건설이 추진되었습니다.

서울의 대중교통과 스포츠 인프라가 크게 확장된 시기입니다.

1983

[지하철 2,3,4호선 완공]

염보현 시장은 지하철 2, 3, 4호선 완공이라는 기념비적인 업적을 남겼습니다! 한강종합개발을 추진하고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개장, 목동 신시가지 건설 등 서울의 대변혁을 이끌었습니다.

아시아경기대회 개최와 서울올림픽대회 준비도 그의 주요 성과입니다.

1987

[서울올림픽 성공 개최]

김용래 시장 재임 중 제24회 서울 올림픽과 제8회 하계 패럴림픽이 성공적으로 개최되었습니다.

상수도 공급, 청소, 주택 공급 확충 등 시민 생활 보호 대책을 추진하고 푸른 서울 가꾸기 2차 5개년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1988

[고건 서울시장 취임]

고건 시장은 '생활행정', '참여행정', '공개 행정'을 시정 방침으로 삼고 제2기 지하철 건설과 도시고속도로 착공 등 교통 인프라 확충에 힘썼습니다.

빗물 펌프장 확충 등 항구적인 수방 대책도 수립했습니다.

그는 후에 국무총리를 역임했습니다.

1990

[박세직 서울시장 취임]

박세직이 23대 서울시장으로 취임했으나 비교적 짧은 기간 재임했습니다.

1991

[쓰레기 소각 첫 도입]

이해원 시장은 도시 지하 도로 건설을 추진하고, 한강 관리를 위한 '한강관리청' 신설을 추진했습니다.

특히 처음으로 쓰레기 소각 처리 방식을 도입하여 환경 행정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했습니다.

1992

[이상배 서울시장 취임]

이상배 시장은 주거 환경 개선과 문화 활동 지원에 중점을 두었으며, 경희궁, 몽촌토성 등 역사적 유적지 복원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불량 주택 재개발 사업 활성화를 위해 주민 동의율을 하향 조정했습니다.

1993

[역대 최단 재임 시장]

김상철은 역대 서울시장 중 가장 짧은 기간(일주일) 재임하여 기록적인 시장으로 남았습니다.

[우명규 직무대행]

서울특별시 부시장 우명규가 시장 직무대행을 수행하며 잠시 시정을 맡았습니다.

[이원종 서울시장 취임]

이원종 시장은 각종 규제제도, 법령, 운영방법 등을 재검토하여 시민위주의 쇄신방안을 마련하고 제2기 지하철 및 도시고속도로 건설을 역점 추진했습니다.

서울정도 600년 사업도 추진했습니다.

1994

[우명규 서울시장 재임]

우명규가 다시 서울시장직을 맡아 시정을 이끌었습니다.

[최병렬 서울시장 취임]

최병렬 시장은 각종 시설물의 안전 확보와 부실 공사 대책을 적극 추진했습니다.

교통 문제 해결을 위한 교통 특별 대책을 수립하며 시민 안전과 편의 증진에 힘썼습니다.

1995

[새 민선 시장 체제 시작]

조순은 민선 시대가 열린 후 초대 서울시장이 되었습니다.

시정을 시민 중심으로 전환하고 시정 운영 3개년 계획을 추진했습니다.

당산철교 재시공 등 시설물 안전 점검과 환경 기본 조례 제정, 전국 최초 사회 복지 조사 실시 등 시정에 새 바람을 불어넣었습니다.

1997

[강덕기 권한대행]

조순 시장의 대통령 선거 출마 사퇴로 강덕기 행정1부시장이 남은 임기 동안 시장 권한대행을 맡아 시정을 운영했습니다.

1998

[고건 서울시장 재임]

고건 시장은 투명 행정 구현을 위한 반부패 시책을 추진하고 '생명의 나무 천만 그루 심기', 월드컵공원 조성 등 '녹색 서울'을 가꾸는 데 앞장섰습니다.

제2기 지하철을 임기 내 완성했으며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했습니다.

2002

[이명박 시장 취임]

이명박 시장은 뉴타운 사업 기반 마련, 청계천 복원, 서울숲 조성 등 서울의 도시 경관을 크게 변화시켰습니다.

2004년 대중교통 체계 전면 개편과 서울광장 설치 등 시민들의 생활과 직결된 혁신적인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그는 후에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역임했습니다.

2006

[오세훈 시장 취임]

오세훈 시장은 '창의 시정'을 내세워 다산 콜센터, 천만상상 오아시스 등을 추진했습니다.

광화문 광장 조성, 지하철 9호선 개통 등 도심 재창조와 교통 인프라 확충에 기여했습니다.

'시프트' 등 서울형 복지 정책과 '디자인 서울'을 추진하며 친환경 도시 구현에 힘썼습니다.

전면 무상급식 반대로 주민투표를 실시했으나 투표율 미달로 인해 사퇴했습니다.

2011

[권영규 권한대행]

오세훈 시장 사퇴 후 권영규 행정1부시장이 남은 임기 동안 시장 권한대행을 맡았습니다.

[박원순 시장 취임]

박원순 시장은 역대 서울시장 중 최장 기간(8년 8개월) 재임했습니다.

서울시립대 등록금 50% 삭감, 심야버스(올빼미버스) 운행 개시 등 민생 중심 정책을 펼쳤습니다.

도시 양봉, 도시 텃밭 등 친환경 사업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 설립을 추진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비서 성추행 사건 이후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2020

[서정협 권한대행]

박원순 서울시장의 사망에 따라 서정협 행정1부시장이 권한대행을 맡아 시정을 이끌었습니다.

2021

[오세훈 시장 재취임]

오세훈이 제33, 34대 시장에 이어 다시 서울특별시장으로 취임하며 서울 시정을 다시 이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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