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사립 종합대학, 캠퍼스, 교육기관, 의료기관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34:57
1916년 유치원 교사 양성을 목표로 설립된 유서 깊은 사학입니다. 보육학교를 거쳐 종합대학으로 성장하며 대한민국 고등 교육의 중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서울캠퍼스와 다빈치(안성)캠퍼스 두 곳에서 미래를 이끌 인재를 양성 중입니다. 과감한 혁신과 사회 변화에 발맞춰 지속적으로 발전해 온 역동적인 대학입니다.
- 중앙유치원 설립
- 중앙보육학교 승격
- 임영신 교장 취임
- 영신관 건립 및 이전
- 해방 후 재개교
- 여자전문학교 개편
- 남녀공학 중앙대학 전환
- 종합대학 승격
- 4.19 혁명 참여
- 단과대학 및 부속학교 확대
- 개교 50주년, 청룡상 건립
- 의과대학 설치 및 병원 흡수
- 서라벌예술대학 합병
- 설립자 임영신 박사 서거
- 안성 제2캠퍼스 건립 시작
- 법인 부채 700억 위기
- 김희수 이사장 취임
- 하경근 8대 총장 취임
- 교육부 최우수대학 5년 연속 선정
- 최초 국악대학 증설
- 국내 최대 법학관 완공
- 두산그룹 법인 운영 참여
- 이원화캠퍼스 학생 모집 시작
- 100주년기념관 완공
- 개교 100주년, 타임캡슐 개봉
1916
[중앙유치원 설립]
감리교회 선교를 위해 유치원 교사 양성을 목적으로 중앙유치원이 문을 열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중앙대학교의 역사적인 첫 시작점이 됩니다.
1922
[중앙보육학교 승격]
중앙유치원 내 사범과가 유치원 교사 양성 전문기관인 중앙보육학교로 승격되며 교육 기관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1933
[임영신 교장 취임]
재정난과 일제의 탄압으로 어려움을 겪던 중앙보육학교를 임영신 선생이 인수하고 교장에 취임했습니다.
민족 교육을 향한 열정으로 흑석동에 학교 부지를 마련하며 새 시대를 예고했습니다.
1938
[영신관 건립 및 이전]
임영신 선생의 미국 모금 활동으로 파이퍼재단이 설립되었고, 이를 통해 흑석동에 영신관이 건립되며 학교가 이전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중앙대의 상징적인 시작을 알리는 건축물이 되었습니다.
1944
[중앙보육학교 폐쇄]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일제의 교육에 관한 전시 비상조치령과 탄압으로 인해 중앙보육학교는 결국 신입생 모집이 중단되고 폐쇄되는 시련을 겪었습니다.
1945
[해방 후 재개교]
해방과 함께 임영신 선생이 중앙보육학교의 문을 다시 열었습니다.
'의에 죽고 참에 살자'는 교훈과 교가를 제정하며 새로운 교육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여자전문학교 개편]
신생 조국 건설에 필요한 인재 양성을 목표로 중앙보육학교가 중앙여자전문학교로 개편되었습니다.
이는 교육기관의 위상 강화와 전문성 확보를 위한 중요한 단계였습니다.
1946
[중앙문화학원 설립]
학교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재단법인 중앙문화학원이 설립되었습니다.
이는 안정적인 학교 운영과 성장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1947
[중앙여자대학 개편]
중앙여자전문학교가 중앙여자대학으로 다시 한번 개편되었습니다.
이는 고등 교육 기관으로서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1948
[남녀공학 중앙대학 전환]
중앙여자대학이 남녀공학인 중앙대학으로 학칙을 변경하며 성별 구분 없는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교육 이념의 큰 변화를 의미합니다.
1950
1951
[부산으로 임시 이전]
1.4 후퇴로 인해 학교의 모든 서류와 기능을 부산으로 옮기고 그곳에 임시 사무소를 설치하여 교육을 이어갔습니다.
[부산 단독 개강 및 분교]
한국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부산 송도에서 단독 개강을 진행하고 이리시와 서울에도 분교를 설치하여 학업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1953
[종합대학 승격]
중앙대학이 4개 단과대학과 대학원을 갖춘 종합대학으로 승격되며 명실상부한 고등 교육 기관으로 발돋움했습니다.
임영신 선생이 초대 총장으로 취임했습니다.
[흑석동 캠퍼스 복귀]
휴전 후 부산에서 흑석동으로 교사를 다시 옮겼습니다.
미8군 주둔으로 가교사에서 강의를 시작하며 캠퍼스 정상화에 힘썼습니다.
1954
[미군으로부터 교사 인수]
흑석동 캠퍼스에 주둔했던 미군으로부터 교사를 완전히 인수받으며 중앙대학교는 본래의 터에서 온전히 교육을 펼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56
[파이퍼홀 준공]
임영신 선생의 모금 활동과 파이퍼 여사의 후원으로 파이퍼홀이 준공되었습니다.
이는 약학대학 건물로 처음 사용되었으며, 이후 중앙대의 상징적인 건축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파이퍼홀은 1955년 5월에 착공하여 1956년 4월 20일에 완공되었으며, 5월 18일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 부부 등 많은 내외 귀빈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기념행사가 열렸습니다. 미국의 제약회사 이사장이었던 E.H.Bobst가 파이퍼 여사의 뜻에 따라 10만 달러를 기증하여 건립될 수 있었습니다.
1959
[중앙도서관 준공]
흑석동에 중앙도서관이 준공되어 개관했습니다.
건립 초기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호를 딴 '우남기념도서관'으로 불렸으나, 4.19 혁명 이후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습니다.
1960
[4.19 혁명 참여]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4.19 혁명이 발발하자 중앙대학교 학생들도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민주주의 수호에 앞장섰습니다.
중앙도서관 앞에는 4.19 혁명 때 산화한 6인의 열사를 기리는 의혈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1961
[5.16 군사정변 발생]
5.16 군사정변이라는 국가적 격변기를 맞았으나, 중앙대학교는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발전을 이어갔습니다.
[진선관, 대학극장 준공]
진선관과 대학극장이 준공되며 학생들을 위한 교육 및 문화 시설이 확충되었습니다.
진선관은 이후 서라벌홀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1963
1965
[단과대학 및 부속학교 확대]
문리과대학이 분리되어 6개 대학으로 증설되었고, 부속 중·고교 및 국민학교가 설치되며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일관된 교육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1967
1968
[개교 50주년, 청룡상 건립]
개교 50주년을 맞아 중앙대학교의 번영을 상징하는 청룡상이 건립되었습니다.
동상 안에는 임영신 박사의 유품 등을 담은 타임캡슐이 2018년 개교 100주년에 개봉되었습니다.
[단과대학 8개로 증설]
문과대학, 이공대학, 사범대학 등을 포함하여 8개 단과대학으로 증설 및 개편이 이루어져 대학 규모가 더욱 확장되었습니다.
1969
[봅스트홀 준공]
봅스트홀(제1공학관)이 준공되어 교육 내실화에 기여했습니다.
현재는 사회기반시스템공학부, 화학신소재공학부 등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1971
[의과대학 설치 및 병원 흡수]
의과대학이 설치되고 서울 중구 필동의 성심병원을 대학 부속병원으로 흡수하며 의료 교육 및 연구 분야를 강화했습니다.
1972
[임철순 4대 총장 취임]
임영신 박사의 뒤를 이어 임철순 박사가 제4대 총장으로 취임하며 대학 발전을 위한 새로운 전략을 모색했습니다.
[서라벌예술대학 합병]
기존 학교법인 서라벌예술학원이 운영하던 서라벌예술대학을 합병하며 예술 분야 교육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이는 현재 예술대학의 기반이 됩니다.
[진선관 증축 및 서라벌홀 준공]
진선관을 증축하여 서라벌홀을 준공했습니다.
이는 인문대학, 사범대학, 사회과학대학 학생들이 사용하는 중요한 건물로 자리 잡았습니다.
1974
1976
1977
[설립자 임영신 박사 서거]
중앙대학교의 설립자이자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승당 임영신 박사가 서거했습니다.
그녀의 정신은 학교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1978
1979
1980
[안성 제2캠퍼스 건립 시작]
제2캠퍼스 건립을 시작하며 서울캠퍼스에 있던 예술대학과 농과대학(현 생명공학대학)을 안성캠퍼스로 이전하고, 1차 교사동, 기숙사, 학생회관을 준공했습니다.
[이석희 5대 총장 취임]
문리대 철학과 교수였던 이석희 박사가 제5대 총장으로 취임하며 학교 발전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었습니다.
1981
[안성캠퍼스 3개 대학 증설]
안성캠퍼스에 외국어대학, 사회과학대학, 가정대학 등 3개 단과대학이 증설되어 안성캠퍼스의 교육 역량이 강화되었습니다.
1982
[안성 교수연구동 등 준공]
안성캠퍼스에 교수연구동을 비롯하여 농과대학 실험동, 예술대학 건물이 준공되며 교육 및 연구 환경이 개선되었습니다.
[캠퍼스 이원화 명칭 사용]
서울 교육장을 제1캠퍼스로, 안성 교육장을 제2캠퍼스로 공식 명명하며 이원화된 캠퍼스 체제를 확립했습니다.
[음악학과 음악대학으로 확대]
예술대학의 음악학과가 음악대학으로 확대 발전하며 전문적인 음악 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기반을 다졌습니다.
1983
[안성 음악대학 강의동 등 준공]
안성캠퍼스에 음악대학 강의동 및 강당동, 야외 수영실습장, 체육관이 준공되어 음악 및 체육 교육 시설이 대폭 확충되었습니다.
[산업대학 명칭 변경 등]
농과대학이 산업대학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건설대학원도 신설되어 산업 및 건설 분야 인재 양성에 주력했습니다.
1984
[안성캠퍼스 건설대학 설치]
안성 제2캠퍼스에 건설대학이 설치되어 7개 단과대학 규모를 갖추며 캠퍼스의 성장과 전문성을 더했습니다.
1985
[문병집 6대 총장 취임]
문병집 총장이 제6대 총장으로 취임하며 재정난 극복을 위해 대학 운영 합리화와 체제 개편에 착수했습니다.
1987
[법인 부채 700억 위기]
학교법인과 산하 기업체의 부채 규모가 700억 원에 달하는 사실이 알려지며 대학 운영에 심각한 재정적 위기가 닥쳤습니다.
[김희수 이사장 취임]
재일교포 실업가 김희수 박사가 막대한 부채 위기에 놓인 학교법인을 책임지기로 하고 이사장에 취임했습니다.
이는 재일교포 실업가가 국내 교육사업에 참여한 첫 사례였습니다.
1989
[단과대학 및 학과 확장]
문리과대학이 문과대학, 이과대학으로 분리되고, 광고홍보학과, 노어학과, 생물공학과 등이 신설되며 학제 개편과 학과 확장이 이루어졌습니다.
[하경근 8대 총장 취임]
대학 역사상 처음으로 교직원 투표를 거쳐 하경근 박사가 제8대 총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주 5일 근무제 도입 등 근무조건 개선도 추진했습니다.
1991
[서울 및 안성 시설 확충]
서울캠퍼스에 슈퍼컴퓨터 도입, 전산센터 건설, 법과대학 및 경영대학 강의동 신축이 이루어졌습니다.
안성캠퍼스에는 생활관, 건설대학, 산업대학 등이 추가로 신축되었습니다.
[학교법인 명칭 변경]
학교법인 명칭이 '학교법인 중앙문화학원'에서 '학교법인 중앙대학교'로 변경되며 학교의 정체성을 더욱 명확히 했습니다.
[교육부 평가 관련 학내 소요]
교육부의 증원·증과 과정에서 공과대학 교육 여건 평가가 하위급으로 나오자 학내에 큰 소요가 발생하여 학교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992
[김민하 총장직무대행 임명]
학내 사태 수습을 위해 이사회를 통해 김민하 박사가 총장직무대행에 임명되어 혼란을 수습하고 대학의 안정을 되찾는 데 노력했습니다.
1993
[김민하 9대 총장 취임]
교수, 직원, 학생 등 구성원들의 의견 수렴과 선거를 통해 김민하 박사가 제9대 총장으로 취임했습니다.
그는 '민족대학', '민주대학' 등 4대 육성 지표를 제시했습니다.
1994
[의약식품관리 대학원 설립]
의약품 및 식품 관련 전문 인력 수요 증가에 따라 의약식품관리 대학원이 설립되어 전문 분야 교육을 강화했습니다.
1995
[여학생기숙사 완공]
서울캠퍼스에 여학생기숙사가 완공되어 학생들의 주거 환경이 개선되었고, 150여 명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97
[부속병원 착공 약속]
의과대학 부속병원 신축 약속 지연으로 학생 농성이 있었으나, 학교 측이 착공을 약속하며 사태가 해결되었습니다.
1998
[안성 체육과학대학 신설]
안성 제2캠퍼스에 사회체육교육을 목표로 한 체육과학대학이 신설되어 체육 분야 전문 인력 양성을 시작했습니다.
1999
[교육부 최우수대학 5년 연속 선정]
교육부의 '교육개혁추진 우수대학 재정지원 사업'에서 5년 연속 최우수대학에 선정되며 교육 역량을 인정받았습니다.
[중앙문화예술관 개관]
중앙문화예술관이 개관하여 대극장, 소극장, 전시관 등 다양한 문화예술 시설을 갖추고 학교 행사 및 공연 장소로 활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첨단영상전문대학원 신설]
정부의 '두뇌한국21(Brain Korea 21) 사업' 계획에 따라 첨단영상전문대학원이 신설되어 이 분야 특성화에 기여했습니다.
2001
[박명수 11대 총장 취임]
박명수 교수가 제11대 총장으로 취임하며 '변화와 발전을 통한 새로운 중앙의 창조'를 위한 장기 발전 계획 'DRAGON2018'을 수립했습니다.
2002
2004
[부속병원 흑석동 이전]
중구 필동에 있던 중앙대학교 부속병원이 흑석동의 현재 위치로 이전하며 새로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2005
[선도대학 선정]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구조개혁 선도대학에 선정되어 타 대학과 대등한 재정 지원을 받으며 대학 혁신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중앙대학교병원 개원]
흑석동에서 중앙대학교병원 개원식을 갖고 본격적인 진료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지역 사회의 의료 서비스 질을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박범훈 12대 총장 취임]
박범훈 박사가 제12대 총장으로 취임하며 '창조와 화합'을 기치로 세계적 수준의 대학으로 발전을 위한 7대 공약을 제시했습니다.
2007
[국내 최대 법학관 완공]
국내 최대 규모의 법학관이 완공되어 법학 교육 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습니다.
현재 법학도서관도 이곳에 위치합니다.
2008
[두산그룹 법인 운영 참여]
두산그룹이 학교법인 운영에 참여하고 박용성 회장이 제9대 이사장으로 취임하며 중앙대학교는 혁신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CAU2018+' 발표]
박용성 이사장이 'CAU2018+' 중장기 발전계획을 발표하며 '선택과 집중, 실행력 강화, 선순환 구조 확립'이라는 새로운 전략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2009
[전 과목 상대평가 도입]
모든 과목에 상대평가가 도입되고 '회계와 사회'가 교양필수 과목으로 추가되는 등 학사 관리 제도가 강화되었습니다.
[비판 교지 전량 회수 사건]
학교 측이 구조조정 비판 내용이 담긴 교지 《중앙문화》 3,000여부를 전량 회수했다가 논란 끝에 재배포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2010
[퇴학생 미행감시 사건]
퇴학당한 학생의 집회 현장에서 두산중공업 직원이 학생을 미행하고 촬영하다 발각되어 학생사찰 논란이 일었으며, 총학생회가 두산그룹과 학교법인을 고소했습니다.
[블루미르홀 308관 완공]
898명을 수용할 수 있는 블루미르홀 308관이 완공되어 학생들을 위한 최신식 기숙사 시설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2011
[중앙마루 조성]
청룡연못과 중앙광장을 잇는 계단 형태의 '중앙마루'가 조성되어 학생들의 휴식과 교류를 위한 새로운 공간이 마련되었습니다.
[용산병원 진료 마감 및 이전]
중앙대학교 용산병원이 진료를 마감하고 기존 중앙대학교병원으로 통합 이전되어 의료 서비스의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약학대학 및 R&D센터 완공]
약학대학 및 R&D센터가 완공되어 약학 분야의 교육 및 연구 역량을 강화하고, 최첨단 시설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2012
[이원화캠퍼스 학생 모집 시작]
교육부의 본분교 통합 인가를 받아 서울캠퍼스와 안성캠퍼스가 단일 캠퍼스로 운영되며, 이원화캠퍼스 체제로 학생을 모집하기 시작했습니다.
2015
[박범훈 전 총장 특혜 의혹]
박범훈 전 총장이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된 이후 중앙대에 특혜를 주었다는 의혹이 불거져 사회적 논란이 되었습니다.
[두산그룹 회장 뇌물 의혹 수사]
중앙대 특혜 의혹과 관련하여 두산그룹 박용성 회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뇌물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습니다.
[블루미르홀 309관 완공]
블루미르홀 309관이 완공되어 게스트하우스 포함 총 1432명의 학생을 수용할 수 있게 되면서 기숙사 시설이 대폭 확충되었습니다.
2016
[100주년기념관 완공]
개교 100주년을 기념하고 서울캠퍼스의 공간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 대학 단일 건물 중 최대 규모인 100주년기념관이 완공되었습니다.
2018
[개교 100주년, 타임캡슐 개봉]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여 1968년 청룡상에 묻었던 타임캡슐이 개봉되었습니다.
이는 중앙대학교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뜻깊은 행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