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학교

대한민국, 사립, 종합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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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3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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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립, 종합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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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학교는 1911년 신흥무관학교를 모태로 1949년 신흥초급대학으로 개교한 대한민국 명문 사립 종합대학입니다. 설립자 조영식은 한국전쟁 후 피폐한 현실 속 문화 르네상스를 염원하며 교명을 경희궁에서 따왔습니다. ‘문화세계의 창조’라는 교시 아래 동서의학 조화를 통한 제3의학 개척에 앞장서 왔습니다. 서울 국제 광릉 홍릉 4개 캠퍼스 체제를 구축하며 평화의 전당 등 웅장한 건축미와 다양한 박물관 천문대를 자랑합니다. 국내 최초의 국제대학원 고지도 전문 박물관 그리고 국내 대학 최초의 큐브위성 발사 등 끊임없이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정재계 및 문화예술 분야에 걸쳐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며 한국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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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

[신흥무관학교 개교]

이회영, 이시영 등 6형제가 만주 류하현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웠습니다.

이 학교는 일제에 항거하며 독립군 간부를 양성했고, 훗날 경희대학교의 정신적 뿌리가 됩니다.

폐교 후에도 그 정신은 해방 후 설립된 신흥전문학원으로 이어지며 경희대학교 역사의 시작점이 됩니다.

신흥무관학교는 해방 후 1947년 서울 수송동에 신흥무관학교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한 신흥전문학원을 설립했으며, 1949년에 배영대학관을 합병하여 2년제 신흥초급대학으로 설립을 가인가 받았습니다.

1920

[신흥무관학교 폐교]

항일 독립군 양성의 요람이었던 신흥무관학교가 일제의 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됩니다.

1947

[신흥전문학원 개원]

이시영이 재단법인 성재학원을 설립하고,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 신흥무관학교의 역사와 전통을 잇는 신흥전문학원을 개원했습니다.

1949

[경희대 개교 (신흥초급대학)]

신흥전문학원이 배영대학관을 합병하여 2년제 신흥초급대학으로 가인가를 받으며 공식적으로 개교했습니다.

이는 경희대학교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이정표가 됩니다.

1951

[조영식 이사장 인수 및 취임]

학교 경영의 어려움에 처한 재단법인 성재학원을 조영식 선생이 인수했습니다.

이 날은 현재 경희대학교의 개교기념일이자, 이후 학교가 크게 발전하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재단법인 성재학원은 당시 두 차례의 사기로 인해 학원 경영이 더욱 어려워졌고, 이시영의 간청에 따라 조영식이 1,500만 원의 부채를 모두 상환하는 조건으로 재단법인을 인수했습니다.

1952

[신흥초급대학 정식 인가]

조영식 이사장 인수 후 영어과, 중국어과, 법정과, 체육과의 4과를 갖춘 신흥초급대학으로 정식 설립인가를 받았습니다.

[4년제 신흥대학 승격]

신흥초급대학이 4년제 신흥대학으로 승격되며 교육의 폭을 넓혔습니다.

1955

[신흥대학교로 승격 및 이전]

종합대학인 신흥대학교로 승격되었고, 현재의 서울캠퍼스 위치인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으로 교사를 이전하며 종합대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1960

[경희대학교로 교명 변경]

‘신흥대학교’였던 교명이 ‘경희대학교’로 변경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설립자 조영식 총장이 한국전쟁 후 피폐해진 땅에 문화적 르네상스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선시대 정궁 '경희궁'에서 따온 것입니다.

조영식은 서울고등학교 교사 시절 경희궁 안에 있던 학교 건물에 머물렀으며, '흥성(興盛)에 기뻐하다(慶)'는 뜻의 '경희(慶熙)'가 기존의 '신흥(新興)'과 의미가 일맥상통하고 세련된 이미지가 있다고 판단하여 교명을 변경했습니다. 법인의 명칭도 재단법인 고황재단으로 바뀌었습니다.

1965

[동양의과대학 합병]

학교법인 행림학원과 동양의과대학을 합병하며 한의학과를 신설했습니다.

이는 당시 의료계에서 동의학의 학문적 위상이 낮았던 상황에서 한국 의료계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고 동서의학의 조화를 꾀한 선구적인 발걸음이었습니다.

당시 사회 일각에서는 한의사 제도를 둔 의료법이 한국 의료제도를 이원화함으로써 낙후성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여 제도 폐기론이 연례 행사처럼 제기되고 있었습니다. 조영식 설립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동양 의대를 병합하고 한의학과를 신설하여 동의학을 현대적 의미에서 하나의 학문으로 인정하게 만들었습니다.

1966

[의과대학 설립]

의과대학을 설립하여 한국 최초로 동서의학을 망라한 의학 교육기관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습니다.

1971

[경희의료원 개원]

의과대학병원, 치과병원, 한방병원이 복합된 동서의학의 요람인 경희의료원을 개원했습니다.

이는 동서 의학의 융화를 통한 제3의학 창조를 목표로 한 한국 의료계의 큰 전환점이었습니다.

18층의 현대식 건물과 최신 의료 장비를 갖춘 경희의료원은 약 6년 6개월간의 준비 끝에 개원했으며, 동시에 동서의학 연구소도 부설되었습니다.

1976

[평화의 전당 착공]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종합 문화 예술 공연장인 '평화의 전당' 착공.

완공까지 20년 이상 소요되며 '비놀리아'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평화의 전당은 '비놀리아' 비누 제품의 긴 수명을 빗대어 '어? 아직도 그대로네?'라는 CF 멘트처럼 오랜 기간 완공되지 않은 것을 비유한 별명입니다. 이는 안기부와 관련되어 공사가 중단된 기간이 오래였기 때문입니다.

1978

[자연사박물관 개관]

자연사박물관이 개관했습니다.

이곳은 크낙새, 마지막 황새, 북한에서 기증받은 멧닭 등 멸종되거나 희귀한 생물을 포함한 9만여 점의 표본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1979

[국제캠퍼스 설립 인가]

경기도 수원 일대(현 용인시 기흥구)에 수원캠퍼스(현 국제캠퍼스) 설립을 인가받아 공과대학 등이 서울캠퍼스에서 이전하며 멀티 캠퍼스 시대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1984

[광릉캠퍼스 설치]

경기도 남양주시에 평화복지대학원 개교와 함께 광릉캠퍼스를 설치했습니다.

평화복지대학원은 대한민국 최초의 국제대학원으로, 국제무대 활동 인재 양성을 목표로 전 강의가 영어로 진행되고 전액 장학금이 제공됩니다.

평화복지대학원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2개의 국제대학원을 동시에 운영 중인 경희대의 또 다른 국제대학원(국제캠퍼스 내)과도 밀접한 교류를 맺고 있습니다. 졸업생들은 UN 등 국제기구로 주로 진출하고 있습니다.

1992

[경희천문대 설치]

문화세계의 창조라는 교시를 바탕으로 천문우주교육의 필요성 아래 돔형 건물과 76cm 반사망원경을 설치하며 경희천문대가 건립되었습니다.

1995

[국내대학 최초 천문전시장 개관]

경희천문대에 국내 대학 최초로 천문우주과학 전시장을 개관하며 대중 교육과 과학 확산에 기여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국내 최초의 변광성 발견, M101 은하 초신성 관측 등 전문적인 연구도 활발히 진행했습니다.

1999

[평화의 전당 완공]

1976년 착공 후 오랜 기간 '미완성'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평화의 전당이 마침내 완공되었습니다.

이 건축물은 동양 최대 규모의 종합 문화 예술 공연장으로 4,500석의 객석을 자랑하며 중세 고딕 양식의 웅장한 외관을 뽐냅니다.

평화의 전당은 조영식 설립자가 직접 중세 고딕 양식으로 설계했으며, 경희 50년의 역사를 스테인드글라스와 화강암 조각으로 담아냈습니다. 지하 2층, 지상 6층, 옥탑 3층 규모로 지어졌습니다.

2004

[UNWTO 기탁도서관 지정]

국제캠퍼스 중앙도서관이 국제노동기구(ILO) 기탁도서관에 이어 세계관광기구(UNWTO) 기탁도서관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특히 UNWTO 기탁도서관은 대한민국에서 유일합니다.

2005

[IMF 기탁도서관 지정]

국제캠퍼스 중앙도서관이 국제통화기금(IMF) 기탁도서관으로 선정되며,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IMF 기탁도서관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최초 혜정박물관 설립]

김혜정 씨가 30여 년간 수집한 고지도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설립된 고지도 전문 박물관인 '혜정박물관'이 국제캠퍼스에 문을 열었습니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입니다.

혜정박물관은 2002년 3월 1일 설립된 혜정문화연구소를 모체로 하며, 900여 점의 고지도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2007

[서정범 교수 성폭력 누명 사건]

당시 재직 중이던 서정범 교수가 무속인으로부터 성폭행 혐의로 피소되었으나, 검찰 조사 결과 무속인의 고소 내용이 철저히 짜깁기된 허위 사실로 드러나 무혐의 처리되었습니다.

무고죄로 고발된 무속인은 서 교수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아 이러한 일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당시 의혹을 강력히 제기했던 서울캠퍼스 총여학생회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고, 총여학생회는 해체 위기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2010

[환경 미화원 욕설 사건]

한 포털 사이트에 ‘경희대 학생에게 어머니가 봉변을 당했습니다’라는 글이 올라오며 파문이 일었습니다.

환경 미화원이던 글쓴이의 어머니가 학생에게 상식 이하의 욕설과 직업 비하 발언을 듣고 모욕을 당했다는 내용으로, 이 사건은 '패륜녀', '우유녀' 등으로 불리며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해당 휴게실에 있었던 다른 학생이 녹음한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사건은 더욱 확산되었고, 총학생회와 경희대 측의 조사 결과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해당 학생은 이후 환경미화원을 찾아가 사과했고, 피해 당사자는 징계를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음악대학 교수 성추행 논란]

음악 대학 학생들이 재직 중인 A교수의 부적절한 언행과 폭행, 성추행 의혹 등에 대한 탄원서를 국가기관과 시민단체에 제출하며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탄원서에는 A교수가 여학생에게 술을 권하고 부적절한 발언을 했으며, 여학생 부친을 폭행해 입건된 사실 등이 포함되었습니다.

탄원서에는 A교수가 술자리에서 여학생에게 “내 연구실에 놀러오라”, “내 방은 일단 들어오면 문 열고 나가기가 힘들다” 등의 발언을 했고, 이후 여학생 부친을 술병으로 내리쳐 15바늘을 꿰매게 한 사건이 명시되었습니다. 또한, 캠프 및 오리엔테이션에서 학생들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하고, 자신을 비판하는 학생에게 불이익을 주었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학내 권력형 문제가 지적되었습니다.

[음대 교수 임용 문제 불거짐]

음악 대학 신규 교수 임용을 두고 음대 총동창회에 의해 임용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이 제기되었습니다.

동창회 측은 1차 서류 심사에서 우수한 지원자들이 2차 시험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새로 취임한 학장이 기존 심사 결과를 무효화한 것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2009년 6월 기악, 작곡, 성악 세 분야에서 채용 공고를 내어 지원자가 몰렸습니다. 1차 심사가 완료되었으나 2차 심사는 미뤄졌고, 8월 말 새로 취임한 학장이 이전 서류 심사 결과를 무효화하고 각 학과 교수들에게 2명씩 추천받아 전임교원을 선발하면서 논란이 시작되었습니다.

2011

[서울·국제 캠퍼스 통합 승인]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와 국제캠퍼스가 본, 분교 통합 신청을 거쳐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최종 승인을 받아 단일 학교로 통합되었습니다.

이는 경희대학교의 캠퍼스 운영 체제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2011년 7월 11일 교육과학기술부에 본, 분교 통합 신청서를 제출하였으며, 이후 8월 24일에 교과부로부터 최종 승인을 받았습니다.

2013

[국내 최초 초소형 위성 발사 성공]

우주탐사학과(대학원)가 독자 기술로 개발한 국내 최초의 큐브위성 KHUSAT-01, 02 (TRIO-CINEMA)를 러시아 야스니 발사장에서 발사에 성공했습니다.

이는 경희대학교가 우주과학 분야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성과입니다.

경희천문대에 위치한 지상국을 통해 위성을 운용했으며, 현재는 미션을 종료한 상태입니다. 이후 2016년에는 세번째 큐브위성인 KHUSAT-03 (SIGMA)도 개발 완료하여 발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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