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사립대학, 개신교대학, 종합대학
최근 수정 시각 : 2025-10-07- 12:24:05
1885년 설립된 연세대학교는 한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 광혜원과 선교사 언더우드가 세운 조선기독교학교를 뿌리로 한다. 1957년 이 두 역사가 통합되어 연세대학교로 거듭났다. 한국 최초 의사 면허 발급 국내 최초 대학신문 간행 등 최초의 역사를 쓰며 성장했다. QS THE 세계 대학 평가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하며 국제적인 위상을 확고히 하고 있으며 민주화 운동의 중요한 역사적 현장이기도 했다. 창의적 학생 활동과 전통을 계승하며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1885
[광혜원 개원]
미국인 선교사 호러스 뉴턴 앨런의 제안으로 고종의 허락을 받아 조선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이 서울 재동에 문을 열었다.
[제중원 개칭]
개원 2주 만에 '은혜를 널리 펼친다'는 뜻의 광혜원이 '대중을 널리 구한다'는 의미의 '제중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886
[서양 의학 교육 시작]
앨런 선교사가 제중원에 의학당을 개설하고 조선 최초의 서양 의학 교육을 시작했다.
전국에서 선발된 16명의 학생 중 12명이 본과로 진급하여 의사 교육을 받았다.
1894
[제중원 선교부 이관]
1893년 제중원에 부임한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올리버 에비슨 박사가 조선 정부와 협상 끝에 제중원을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로 이관받았다.
1899
1904
[세브란스병원 개칭]
미국인 사업가 루이스 세브란스의 후원을 받아 새 병원 건물을 신축하면서 제중원은 '세브란스 기념 병원'으로, 의학교는 '세브란스병원 의학교'로 명칭을 변경했다.
1906
[간호학교 설치]
쉴즈가 세브란스 병원에 간호원 양성 전문기관으로 간호학교를 설치했다.
이는 1910년 최초의 간호원 배출로 이어졌다.
1908
[최초 의사 면허 발급]
세브란스병원 의학교 제1회 졸업생 7명에게 대한제국 내부 위생국으로부터 의료 활동을 할 수 있는 최초의 의사면허증인 의술개업인허장이 발급되었다.
1915
[조선기독교학교 개교]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 등의 협조로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선교사가 서울 종로의 YMCA에서 '조선기독교학교'를 개교했다.
1917
[연희전문학교 발족]
조선기독교학교가 사립 '연희전문학교'로 발족했다.
같은 해 존 언더우드 박사의 기부금으로 현재 연세대학교 부지인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 창천리 대지 19만 평을 교지로 구입했다.
1920
[스팀슨홀 건립/이전]
찰스 스팀슨의 기부금으로 '스팀슨홀'을 건립하고 학교를 현재의 신촌 부지로 이전했다.
스팀슨홀은 일제시대 대학 캠퍼스 건물 중 최초의 석조 고딕풍 건물이다.
1924
[연세대 박물관 설립]
연세대학교 박물관이 설립되었다.
이 박물관은 1964년 공주 석장리 유적 발굴을 통해 대한민국 구석기 문화를 최초로 밝히는 계기를 마련했다.
1925
[연고전 첫 대결]
연희전문학교와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가 조선 체육회 주최 '제5회 전조선 정구대회'에서 처음으로 맞붙었다.
이는 현재의 '연고전' 시초이다.
1928
[언더우드 동상 건립]
연희전문학교의 설립자인 언더우드의 동상이 교직원과 사회 인사들의 기부를 통해 세워졌다.
(1942년 일제에 의해 공출, 1948년 재건, 1955년 3차 재건).
1931
[첫 응원곡 등장]
현제명 작곡가가 연희전문학교의 응원가로 미국 대학의 응원곡을 개사하여 사용하면서 연세대학교의 첫 응원곡이 등장했다.
1935
[연전타임스 창간]
연세춘추의 전신인 월간지 '연전타임스'가 창간되었다.
이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간행된 대학신문의 효시이다.
1944
[연희전문, 일제에 몰수]
연희전문학교가 적산(敵産)이라는 명목으로 일본 조선총독부에 몰수되어 교명이 '경성공업경영전문학교'로 변경되었다.
1946
[연희대학교 승격]
해방 후 미군정청으로부터 재산과 운영권을 인수받아 교명을 '연희전문학교'로 회복하고, 4학원 11학과의 종합대학교인 '연희대학교'로 승격 인가되었다.
1951
[전쟁으로 부산 이전]
한국 전쟁 발발로 3개월간 임시 휴교 후, 1·4 후퇴로 인해 부산으로 학교를 옮겨 개강했다가 1953년 8월 서울 본교로 돌아왔다.
1955
[연희-세브란스 통합 결정]
연희대학교와 세브란스 의과대학의 이사회가 통합을 결정하고, 서울 신촌동에 병원 건물 착공이 시작되었다.
1957
[연세대학교 공식 출범]
연희대학교와 세브란스 의과대학이 통합하며 '연세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하고 공식 출범했다.
초대 총장은 백낙준, 부총장은 최현배가 취임했다.
1959
[YBS 개국 및 연고전 기틀]
체신부로부터 방송국 인가를 받아 '연세 교육 방송국(YBS)'이 대학방송국으로 개국했으며, 오늘날과 같은 규모의 '연고전' 기틀이 마련되었다.
1961
[총학생회 정식 발족]
4·19 혁명 이후 학원 민주화 여론에 따라 학도호국단 해체안이 통과되며, '연세대학교 학생회'가 '총학생회'로 정식 발족했다.
1962
[연세우유의 시작]
미국 헤퍼 프로젝트 지원금으로 캐나다로부터 젖소 10두를 기증받아, 1971년 3월 '연세우유' 시중 판매를 시작하여 '연세유업'을 세웠다.
1977
[원주캠퍼스 설립]
강원도 원주시에 연세대학교의 제2캠퍼스인 '원주캠퍼스'가 설립되었다.
이 캠퍼스는 2010년 '미래캠퍼스' 비전 2020+를 선포했다.
1981
[신촌캠 건물 사적 지정]
신촌캠퍼스의 유서 깊은 건물인 스팀슨관, 언더우드관, 아펜젤러관이 대한민국의 사적으로 지정되어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1982
1983
[총학생회 체제 부활]
군사정권에 의해 재편되었던 학도호국단이 학원자율화 조치와 함께 폐지되며, 총학생회 체제가 부활하여 학생 자치 활동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1985
1986
1987
[이한열 열사 사망 사건]
제5공화국 말기, 연세대학교 학생 이한열이 학교 정문 앞에서 경찰과 대치 중 전경이 쏜 최루탄에 맞아 사망했다.
이 사건은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되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낸 대한민국 현대사의 분수령이 되었다.
1993
1996
[한총련 사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에서 제6차 8.15 통일대축전 및 범민족대회를 강행하며 경찰과 충돌했고, 종합관과 과학관에서 점거 시위를 벌였다.
2003
[김대중 도서관 개관]
대한민국 최초의 대통령 도서관인 '김대중 도서관'이 구 아태평화재단으로부터 자료를 기증받아 설립 및 개관되었다.
이 도서관은 김대중 대통령의 기록물을 보관하고 있다.
2006
[국제캠퍼스 MOU 체결]
인천광역시와 '송도 국제화 복합단지' 조성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국제캠퍼스 건립의 초석을 다졌다.
2008년 11월 공사가 시작되었다.
2009
[국내 최초 SSCI 등재]
동서문제연구원에서 발행하는 학술 저널 'Global Economic Review'가 대한민국 최초로 SSCI에 등재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2010
[국제캠퍼스 개교 시작]
송도 '국제캠퍼스'에 약학대학을 신설하고 봉헌식을 거행하며 일부 개교를 시작했다.
2011년 3월 2일 정규학위과정이 시작되었다.
2011
[MBA 세계 100위권 진입]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세계 100대 풀타임 MBA' 순위에서 연세대 GMBA가 국내 최초이자 유일하게 76위에 랭크되었다.
2012
[경영대학 국내 유일 인증]
경영대학이 유럽경영대학협의회(EFMD)로부터 EQUIS 인증을 획득하여, AACSB, EQUIS, KABEA 국제 및 국내 인증을 모두 받은 국내 유일한 경영대학이 되었다.
[공인회계사 최다 배출]
1992년 이래 약 2,450여 명의 공인회계사를 배출하며 국내 대학 중 가장 높은 누적 합격자 수를 기록했다.
2013
[환태평양 협회 가입]
환태평양 대학 협회(APRU)에 가입하며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명문 대학으로부터 우수한 교육 프로그램과 탁월한 연구력을 가진 대학으로 평가받음을 입증했다.
[RC 제도 전면 시행]
2013년 이후 입학하는 신입생부터 국제캠퍼스에서 레지덴셜칼리지(RC) 교육을 이수해야 하는 제도가 전면 시행되었다.
2019
2023
[세계대학평가 고순위]
QS 세계대학평가 73위, QS 아시아대학평가 사립대 1위(종합순위 12위), THE 세계대학평가 78위 및 아시아 사립대 1위를 차지했으며, 학문분야별 세계대학순위에서는 최다 분야 국내 1위(4개 분야)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