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사단
민족운동단체, 시민단체, 교육기관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33:55
흥사단은 1913년 도산 안창호 선생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창립한 민족운동단체입니다. 독립운동 자금 후원과 인재 양성을 통해 조국 광복에 기여했으며 인격 훈련과 민주 시민 양성을 목표로 했습니다. 해방 후에는 국내로 본부를 이전하여 사회 교육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현재는 민족통일 투명사회 교육 운동을 중심으로 다양한 시민운동을 전개하며 미래 100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1909
[청년학우회 설립]
흥사단의 뿌리가 된 청년운동단체 '청년학우회'가 신민회 산하에 설립되었습니다.
청년들에게 조선혼을 심어주고, 무실, 역행, 자강 등의 강령을 실천하며 공동체 역량을 기르는 데 힘썼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사실상 도산 안창호 선생의 구상과 꼼꼼한 지도·감독 하에 이루어졌으며, 최남선 선생이 중앙 총무를 맡아 운영했습니다.
1910
[청년학우회 해체]
일제에 의한 국권 상실로 흥사단의 전신인 청년학우회가 해체되었습니다.
그러나 청년들에게 조선혼을 일깨우고 심어주기 위한 청년학우회의 이념은 흥사단에 고스란히 계승되었습니다.
1912
1913
[흥사단 창립]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이 민족운동단체 '흥사단'을 창립했습니다.
안창호를 비롯한 6인이 창단 발기인 대회를 개최하고, 안창호가 전권위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흥사단은 조국의 광복과 새로운 나라 건설을 위한 이념적 기반을 제공하고, 독립운동을 위한 조직적 재정 후원과 일꾼 양성을 통해 민족 독립의 사명을 완수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창립위원회 구성]
홍언을 위원장으로 하는 창립위원회가 구성되었습니다.
경기도, 강원도, 황해도, 경상도, 평안도, 함경도, 전라도 대표 등이 참여하여 흥사단의 조직 기반을 다졌습니다.
1914
[8도 대표 선정 완료]
조병옥이 충청도 대표로 선정되면서 전국 8도 대표 선정을 마쳤습니다.
이는 흥사단의 전국적인 조직 확대를 의미했습니다.
이후 김항주(황해도)와 김홍균(평안도) 대표로 교체되기도 했습니다.
1919
흥사단은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하와이, 필라델피아 등과 캐나다, 멕시코 등 한국인 교민이 정착한 곳으로 지부를 확산시켰습니다.
1922
[조선지회 및 관련 단체 조직]
이광수 등에 의해 흥사단 원동지부 조선지회가 조직되었으며, 김동원의 동우구락부, 이광수의 수양동맹회가 측면 지원 단체로 함께 조직되었습니다.
수양동맹회와 동우구락부는 이후 통합하여 수양동우회로 개편되었습니다.
1926
[월간지 동광 창간]
흥사단은 월간지 《동광》을 창간하여 1933년까지 총 40호를 속간하며 민족의식 고취와 계몽 활동에 주력했습니다.
1937
[수양동우회 사건 발생]
일제의 탄압으로 '수양동우회 사건'이 발생하며 흥사단의 측면 지원 단체였던 수양동우회가 해산되었습니다.
흥사단 단우들은 안악사건, 105인사건, 3·1운동 등 일제강점기 다양한 독립운동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며 옥고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1948
[국내 본부 이전 및 재조직]
해방 이후 흥사단 본부가 국내로 이전하여 재조직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적극 지지하며 잡지 《새벽》을 발간하는 등 사회 교육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새 정부 수립 후 사회 개혁 운동, 고등학교·대학교·청년 아카데미 조직을 바탕으로 한 교육 사업, 장학 사업, 언론 감시 활동 등 다양한 정치·사회 활동을 주관하거나 동참했습니다.
1949
1956
[청년 운동의 필요성 대두]
흥사단이 노쇠해진다는 우려와 함께 청소년 운동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주요한 이사장이 연차대회에서 새 세대 청년에게 바톤을 넘겨줄 때가 되었음을 선언하며 아카데미 창설 움직임이 본격화되었습니다.
1948년에 조직된 청년부가 1956년에 분화되어 고등학생회가 별도로 창립되었습니다.
1961
[사회교육 활동 지속]
5·16 군사정변 이전까지 흥사단은 '금요강좌'와 잡지 《새벽》을 통해 사회 교육 활동에 전력을 다하며 국민 계몽에 힘썼습니다.
1963
[대학생 아카데미 창립]
대학생 서울 아카데미가 창립되어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육 및 수련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카데미 운영요강 제정]
'세포의 조직과 운영요강'이 제정되어 각 지역 분회 조직과 청년, 대학생, 고등학생, 중학생, 소년 아카데미 창립의 체계적인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고등학생 아카데미 창립]
고등학생 서울 아카데미가 창립되어 젊은 세대에게 도산 정신을 일깨우고 인격 훈련을 제공하는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지역에 따라 아카데미가 분회보다 먼저 창립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아카데미가 지방 조직의 생명을 실질적으로 유지했습니다.
지역에 따라 아카데미가 분회보다 먼저 창립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아카데미가 지방 조직의 생명을 실질적으로 유지했습니다.
1964
이후 대구(1964.9), 광주(1965.9), 대전(1966.3), 원주(1966.5), 전주(1967.11), 진주(1967.11), 여수(1968.9), 제주(1968.10) 등지에서 아카데미와 분회가 연이어 창립되었습니다.
1989
[도산아카데미연구원 설립]
도산 안창호 선생의 정신을 계승하고 국가 사회 발전을 연구하기 위해 흥사단 부설 '도산아카데미연구원'이 설립되었습니다.
이는 흥사단 아카데미 운동의 중요한 발전입니다.
이 연구원은 2000년 7월 19일 행정자치부에 '사단법인 도산아카데미'로 등록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학술 및 정책 연구, 사회 교육 및 지도자 훈련, 홍보 및 출판 사업 등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습니다.
1997
[민족통일운동본부 창설]
흥사단 3대 시민운동 중 가장 먼저 민족통일운동본부가 창설되었습니다.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족 청소년과 대한민국 청소년 간의 친선 문화 교류를 주최하고, 통일 아카데미와 포럼 등을 통해 통일 운동을 진행합니다.
1999
[투명사회운동본부 출발]
흥사단 반부패투명사회위원회로 출발한 투명사회운동본부가 창립되었습니다.
'죽더라도 거짓이 없어라'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씀에 따라 정직하고 공정하며 공개적인 투명 사회를 만들고자 합니다.
국제 수준의 부패 방지 입법 활동과 공직자, 시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청렴 교육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2000
[사단법인 도산아카데미 등록]
'도산아카데미연구원'이 행정자치부에 '사단법인 도산아카데미'로 정식 등록되며, 더욱 체계적인 활동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2002
[교육운동본부 출범]
건강한 청소년 육성을 목표로 흥사단 교육운동본부가 출범했습니다.
민주적 교육 체제 구축, 청소년 의견 경청, 인성 교육 실천 등을 주요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2005년에는 교육운동본부 운영위원이 학교 내 폭력 단체인 '일진회'의 실태를 폭로하며 사회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2005
[교육운동본부 일진회 폭로]
흥사단 교육운동본부의 운영위원을 맡은 현직 교사가 학교 내 폭력 단체인 '일진회'의 실태를 폭로하며 사회에 경종을 울렸습니다.
2013
[창립 100주년 비전 선포]
흥사단 창립 100주년을 맞아 '민족을 위한 100년, 세계를 향한 100년'이라는 기치 아래 미래 100년을 내다보는 지속 가능한 흥사단 운동 비전을 선포했습니다.
흥사단은 이러한 시민운동 외에도 자원봉사센터, 청소년 회관, 수련관 등 전국에 24개 청소년 시설을 수탁·운영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