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기업인, 스포츠인, 사회공헌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33:12
대한민국 재계를 대표하는 기업인이자 한화그룹의 2대 회장으로 선대 회장의 타계 후 젊은 나이에 그룹을 승계했습니다. 금융 유통 레저 등 다방면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매출과 자산을 수십 배 성장시켰으며 IMF 외환위기 속에서도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마술사라는 별명을 얻으며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문화 예술 및 스포츠 분야에 대한 장기적이고 아낌없는 후원과 천안함 유가족 채용 등 사회 공헌에도 앞장섰습니다. 개인적인 논란도 있었으나 한국 경제와 사회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됩니다.
1952
1968
1974
1976
1981
[한화그룹 회장 취임]
부친 김종희 회장의 타계로 29세의 젊은 나이에 한화그룹 회장에 취임했습니다.
취임 1년 만에 한양화학(현 한화케미칼)과 한국다우케미칼을 인수하며 석유화학 사업에 진출했고, 이듬해 경인에너지 내국화를 단행하며 매출을 2배 이상 늘려 재계로부터 '제2의 창업'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한화그룹의 규모를 수십 배로 키워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유산 상속 다툼]
부친 김종희 회장 타계 후 유언장이 없어 동생 김호연 빙그레 회장과 재산분할 관련 31차례 재판을 진행하는 상속 다툼이 시작되었습니다.
1982
[복싱연맹 회장 취임]
대한아마추어복싱연맹 회장에 취임하여 1997년 사퇴할 때까지 15년간 재임했습니다.
이는 대한체육회 산하 가맹 단체 회장 중 최장 기간으로, 한국 아마복싱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아시아 아마추어복싱연맹(FAAB) 회장 및 국제아마추어복싱연맹(AIBA) 부회장 겸 아시아 지역 회장에 선임되어 4년 임기직을 4차례 연임했습니다.
1985
1986
[한화 이글스 창단]
한양유통(현 한화갤러리아)을 인수하며 유통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또한, 부친의 유지를 이어받아 프로야구 제7구단 한화 이글스를 창단하고 야구회관을 건립 기증했습니다.
1988
1990
[IMF 위기 극복]
IMF 외환위기 시기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치며 한화 바스프우레탄, 한화에너지, 한화자동차부품 등을 매각하고 유화사업 맞교환 등 창조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여 국내외 언론으로부터 '구조조정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1992
[외환관리법 위반 사건]
미국에서 영화배우 실베스타 스텔론의 별장을 470만 달러에 매입하고, 앞서 1979년 사우디아라비아 건설중개업자로부터 받은 수수료 650만 달러를 홍콩 은행에 예치시킨 혐의로 외환관리법 위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1994년 외국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추징금 47억 3백여만원을 선고받았습니다.
1993
1995
[유산 상속 다툼 합의]
할머니 장례식에서 동생 김호연 회장과 만나 오랜 재산분할 다툼에 합의하며 가족 간의 갈등을 마무리했습니다.
1996
[헝가리 은행 인수]
헝가리 엥도수에즈 부다페스트은행(현 헝가리 한화은행)을 인수하며 해외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같은 해 서강대학교에서 명예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97
[로버트 김 비밀 후원]
국가 기밀 유출 혐의로 미국 교도소에 수감됐던 로버트 김에게 2005년 공개되기 전까지 수년간 개인적으로 생활비를 지원하며 남모른 후원을 이어갔습니다.
이는 미국 정부와의 관계를 의식하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용기 있는 행동으로 평가받았습니다.
1999
[대덕테크노밸리 수용]
다른 기업들이 포기하여 10년 이상 방치된 대전의 숙원 사업인 대덕테크노밸리 사업 제안을 그룹 실무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용했습니다.
2000
[교향악 축제 후원 시작]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도 국민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예술의전당 교향악 축제를 2000년부터 한화 단독으로 협찬하며 10년 이상 장기 후원을 이어갔습니다.
이는 기업의 메세나 활동 성공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한화의 후원 이후 교향악 축제는 전국의 20여 개 교향악단이 참여하고 3만 명 이상이 관람하는 국내 최대의 클래식 음악 축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01
[대덕테크노밸리 착공]
1999년에 수용한 대덕테크노밸리 사업이 2001년부터 착공되어 2009년 11월 5일 성공적으로 준공되었습니다.
산업, 주거, 교육, 문화, 레저가 어우러진 신개념의 직주근접형 첨단복합단지로, 국내 최초의 도시개발 성공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2002
2004
[배임 사건 기소]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위장계열사의 빚을 갚기 위해 3200여억 원대의 회사 자산을 부당 지출하고, 계열사 주식을 가족들에게 헐값에 팔아넘겨 1041억 원의 손실을 회사에 떠넘긴 혐의 등으로 기소되었습니다.
재판부는 이 중 1585억 원에 대한 배임을 유죄로 판단했습니다. 2012년 8월 1심에서 징역 4년 벌금 51억 원을 선고받았고, 2013년 4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 벌금 51억 원으로 감형되었습니다. 2013년 9월 상고심에서 원심 파기환송되었으며, 2014년 2월 최종적으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사회봉사 300시간을 선고받았습니다.
2006
2007
[청계산 보복 폭행 사건]
둘째 아들 김동원이 술집에서 시비에 휘말려 다치자, 자신의 경호원 등 다수의 인력을 동원해 아들을 폭행한 종업원들을 청계산으로 끌고 가 쇠파이프와 전기충격기 등을 사용하며 직접 폭행하여 사회적 물의를 빚은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 1년 6월의 실형이 선고됐으나 항소심에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명령 200시간으로 감형되어 경영 일선에 복귀했습니다.
2009
[예술의전당 종신회원]
예술의전당 교향악 축제 10년 후원을 기념하여 예술의전당으로부터 감사의 뜻으로 종신 회원증을 받았습니다.
[국제복싱재단 이사장]
국제아마추어복싱연맹(AIBA) 산하 신설 재단인 국제복싱발전재단(FBB)의 초대 이사장으로 추대되었습니다.
[대덕테크노밸리 준공]
2001년부터 9년간의 사업 기간을 거쳐, 국내 최초의 도시개발 성공 사례로 평가받는 대덕테크노밸리가 성공적으로 준공되었습니다.
2010
[천안함 유가족 지원]
천안함 사태가 발생하자, 김승연 회장의 지시로 한화그룹은 천안함 성금 5억 원을 내놓고 유가족 우선 채용을 약속했습니다.
이는 국내 기업 중 최초로 유가족 채용 의사를 밝히고 실제 일자리를 제공한 사례입니다.
2010년에 취업을 희망한 5명의 가족이 전원 입사했으며, 2012년 기준으로 7명의 유가족이 한화 계열사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2011
[취임 30주년, 폭발적 성장]
한화그룹 회장 취임 3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재임 30년간 한화그룹은 매출 27배, 총자산 115배, 당기순이익 223배 성장이라는 압도적인 성장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공생발전 프로젝트 발표]
상생, 친환경, 복지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한화 공생발전 7대 종합 프로젝트'를 선정하고 구체적인 실행에 나섰습니다.
2012
[서울대 50억 기부]
서울대학교에 50억 원을 기부하며 법대 첨단강의동 신축을 지원했습니다.
이는 1990년대 250억 원의 '김승연 장서기금' 기부를 통해 서울대 중앙도서관 장서 구입을 지원하고 2008년부터 법학전문대학원 설립 및 장학기금을 지원하는 등 인재 양성에 대한 꾸준한 관심의 연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