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기업인, 대우그룹 창업주, 세계 경영 사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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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12- 00: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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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 대우그룹 창업주, 세계 경영 사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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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상징이자 세계 경영을 외친 기업인. 단돈 500만원으로 대우실업을 창립해 한때 재계 2위까지 성장시킨 입지전적인 인물. 자서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로 수많은 젊은이에게 도전 정신을 심어줌. IMF 외환위기 속 대우그룹 해체와 법적 논란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음. 말년까지 해외 기업인 양성에 헌신하며 영원한 기업인으로 기억됨.

연관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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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

[시대의 풍운아 탄생]

대구에서 명문가 자제로 태어났으나, 6.25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고 15세에 소년 가장이 되어 가족 생계를 책임지게 됩니다.

이는 그의 강인한 삶의 기반이 됩니다.

1956

[연세대학교 입학]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학업을 이어가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하며 기업인의 꿈을 키웁니다.

1960

[첫 직장 입사]

연세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 학위를 취득한 뒤, 섬유 수출업체 한성실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무역에 대한 실무 경험을 쌓습니다.

1967

[대우실업 창립!]

32세의 나이에 단돈 500만원으로 '대우실업'을 설립합니다.

'크게(大) 도약하는 김우중(宇)'이라는 뜻을 담은 대우는 첫해부터 싱가포르에 트리코트 원단을 수출하며 58만 달러의 놀라운 실적을 올립니다.

1974

[1억불 수출탑 달성]

대우건설, 대우증권, 대우전자, 대우조선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며 급성장, 마침내 1억 달러 수출탑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합니다.

이로써 대우는 신흥 재벌의 반열에 오릅니다.

1981

[대우그룹 회장 등극]

대우그룹의 성장을 이끌며 1981년, 직접 그룹 회장 자리에 오릅니다.

이는 그의 리더십이 최고조에 달했음을 보여줍니다.

1982

[(주)대우 출범, 재계 4위!]

지주회사 격인 (주)대우를 출범시키며 재계 순위 4위로 껑충 뛰어오릅니다.

김우중의 대우그룹은 한국 경제의 핵심 축으로 자리매김합니다.

1983

[한국기원 총재 취임]

바둑 3급 공인 실력을 갖춘 그는 한국기원 2대 총재로 취임하며 사업 외적인 분야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칩니다.

1988

[대한축구협 회장(1차)]

한국 축구 발전에도 힘쓰고자 대한축구협회 회장에 취임합니다.

이는 그의 폭넓은 사회적 영향력을 보여줍니다.

1989

['세계는 넓고...' 출간]

그의 경영 철학을 담은 자서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출간합니다.

이 책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세계 경영'의 꿈과 도전 정신을 심어줍니다.

[대한축구협 회장(2차)]

대한축구협회 회장직을 연임하며 한국 스포츠 발전에 지속적으로 기여합니다.

1990

[장남 비극적 사망]

미국에서 장남 김선재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비극을 겪습니다.

이 개인적인 아픔은 그의 삶에 큰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1992

[대선 불출마 선언]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선 출마설이 끊이지 않지만, 그는 "새한국당의 영입 교섭에도 응하지 않을 것"이라며 불출마를 선언합니다.

1993

[세계 경영 선포!]

대우그룹은 '세계 경영'을 공식 선포하며 전 세계로 사업 확장을 가속화합니다.

이는 대우그룹의 정점이자, 김우중 회장 경영 철학의 집대성이었습니다.

[대한축구협 회장 사임]

대한축구협회 회장직에서 물러납니다.

1996

[비자금 사건 연루]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에 연루되며 대우그룹의 이미지가 타격을 입기 시작합니다.

1997

[IMF 사태 발발]

대한민국이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며 한국 경제는 큰 혼란에 빠집니다.

이는 대우그룹 해체의 서막이 됩니다.

1998

[재계 2위 대우의 영광]

IMF 위기 속에서도 무리한 확장 정책을 이어가며 대우그룹은 재계 2위라는 역대 최고 순위를 달성합니다.

이는 '세계 경영'의 집념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부실 확대의 위험을 안고 있었습니다.

[노무라 보고서 충격]

일본 노무라 증권이 '대우에 비상벨이 울린다'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발표하며, 사실상 대우그룹의 위기가 만천하에 드러납니다.

당시 대우의 부채비율은 400% 이상이었습니다.

1999

1999.08.26 1해당 사건의 피인용 횟수를 나타냅니다. 63세

[대우그룹 해체 수순]

41개 계열사 중 16개가 매각되고, 남은 25개 중 12개가 워크아웃을 신청하며 대우그룹은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게 됩니다.

당시 부채는 무려 500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연관사건

재계 2위까지 올랐던 대우그룹은 금융 부문 중심의 사업 확장으로 내부 부채가 쌓여갔습니다. IMF 사태 이후 부채비율이 400%를 넘어서자, 쌍용자동차 인수, 계열사 구조조정, 삼성그룹과의 빅딜 등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결국 1999년 8월 26일, 대규모 워크아웃 신청으로 그룹 해체가 임박했음을 알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대중 정부의 정치적 탄압설과 단순한 구조조정 실패설 등 다양한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회장직 사퇴 및 도피]

김우중 회장은 13명의 사장단과 함께 경영 포기 및 회장직 사퇴를 발표하고 해외로 출국, 5년 8개월간의 도피 생활을 시작합니다.

도피 생활 동안 중국에서 호화롭게 지냈다는 주장과 유럽에서 어렵게 생활했다는 주장이 엇갈리며 논란이 되었습니다.

2005

[5년 8개월 만의 귀국]

5년 8개월간의 해외 도피 생활을 끝내고 귀국하여 검찰의 조사를 받습니다.

2006

[징역 8년 6개월 확정]

분식회계, 사기대출, 횡령, 국외 재산도피 혐의로 징역 8년 6개월,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 9천253억원의 형이 확정됩니다.

그는 항소를 포기했습니다.

2007

[대통령 특별 사면]

대통령 특사로 사면됩니다.

그러나 17조 8천억 원에 달하는 추징금은 여전히 미납 상태로 남아 논란이 됩니다.

2014

[새 회고록 출간]

대우그룹 해체 15주기를 맞아 회고록 '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를 출간하며 못다 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2019

[세계 경영의 별 지다]

베트남 등지에서 해외 기업인 양성에 힘쓰다 82세의 나이로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합니다.

그의 삶은 대한민국 경제사에 영광과 그림자를 동시에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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