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오
기업인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33:06
두산그룹의 창업주 2세로 그룹 회장과 KBO 총재를 역임하며 한국 경제와 프로야구 발전에 큰 족적을 남긴 기업인. 특히 KBO 총재로서 3선에 성공하며 야구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말년에는 사업적 어려움과 개인적인 시련으로 안타까운 생을 마감했다.
1937
[박용오 탄생]
두산그룹의 초대 회장 박두병의 6남 1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나, 한국 경제의 주역이 될 두산 가문의 일원으로 성장할 기반을 다졌다.
1964
[뉴욕대 졸업]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 명문 뉴욕 대학교 상대 경영학과를 졸업하며 글로벌 비즈니스 감각과 전문성을 갖춘 인재로 성장했다.
1965
[두산산업 입사]
대학교 졸업 후, 아버지 박두병 회장이 이끄는 두산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두산산업에 입사하며 가업 승계를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1977
[두산그룹 고위직 승진]
두산산업과 동양맥주 전무이사를 거쳐 두산산업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그룹 내 핵심 경영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1983
[OB 베어스 사장 취임]
OB 베어스 프로야구단 사장을 역임하며 프로야구계와의 인연을 시작했고, 이는 훗날 한국 야구 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KBO 총재직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1993
1996
[두산그룹 회장 취임]
두산그룹의 제6대 회장으로 취임하여 2005년까지 약 9년간 그룹 경영 전반을 진두지휘하며 한국 경제계의 주요 인물로 활약했다.
그는 재임 기간 동안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을 겸임하며 활발한 대외 활동을 펼쳤고, 그룹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1998
[KBO 총재 3선 달성]
한국야구위원회(KBO)의 12대 총재로 취임하여 무려 3선에 성공하며 2005년까지 프로야구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프로야구는 안정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그의 뛰어난 리더십과 야구에 대한 깊은 애정은 KBO 총재로서의 3선이라는 기록적인 업적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그가 단순히 기업인을 넘어 한국 스포츠 행정가로서도 탁월했음을 보여준다.
2005
[두산그룹 명예회장]
오랜 기간 이끌었던 두산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나 명예회장으로 추대되며 그룹의 원로로서 새로운 역할을 시작했다.
2008
[성지건설 인수]
새로운 경영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성지건설을 인수하며 재기를 모색했으나,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시련에 직면하게 되었다.
특히 차남의 횡령 혐의 구속과 성지건설의 경영 실적 부진은 그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안겨주며 말년의 불운을 예고했다.
2009
[박용오 회장 별세]
향년 72세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많은 이들에게 큰 충격과 안타까움을 안겨주었다.
유족들은 그의 마지막 길을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렀다.
그의 사망 원인은 자살로 추정되며, 이는 말년에 겪었던 사업적 어려움과 개인적인 시련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비극적인 최후는 한국 재계와 프로야구계에 깊은 슬픔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