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현
기업인, SK그룹 회장, 교육사업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33:03
최종현은 대한민국 SK그룹의 2대 회장으로 선친 최종건 창업주의 뒤를 이어 그룹을 이끌었습니다.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를 이뤄내며 에너지·화학 기업으로 기반을 다졌고 대한민국을 무자원 산유국으로 만든 해외 유전 개발 성공 신화를 썼습니다. 또한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인수를 통해 정보통신 분야의 초석을 다지며 SK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습니다.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하여 인재 양성에 힘썼으며 장학퀴즈를 후원하는 등 교육 및 사회 공헌 활동에도 적극적이었습니다.
1929
[출생: 수원 평동에서]
경기도 수원군 수원읍 평동에서 기업인 최학배와 이동대 여사의 4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선대는 화성군 팔탄면 해창리였으나, 아버지 최학배가 수원 평동으로 이사했습니다.
1938
1940
1944
1948
1950
[서울대 진학 및 6.25]
수원농림중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농기계학과로 진학했으나, 6.25 전쟁을 맞게 되면서 학업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952
1956
1959
1962
[선경직물 경영 참여]
형 최종건이 운영하던 선경직물에 이사직을 맡으며 경영인으로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같은 달 5일 부사장으로 선임되었습니다.
1969
[선경합섬 설립]
폴리에스터를 생산하는 선경합섬을 설립하고 공장을 가동하며 원사 생산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이를 통해 수출에 매진하며 금탑산업훈장을 형 최종건 회장에 이어 수훈했습니다.
1970
1971
중앙대학교 사회개발대학원을 수료하기도 했습니다.
1972
1973
[장학퀴즈 후원 시작]
MBC 문화방송의 '장학퀴즈' 후원자가 되며 고학생 장학금 지급 등 장학사업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사회 공헌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타계 전까지 장학퀴즈의 후원자로 활동했습니다. (1996년 이후 EBS로 프로그램이 옮겨짐)
[SK그룹 회장 취임]
형이자 SK그룹 창업주인 최종건 회장이 서거하면서, 그의 뒤를 이어 선경그룹의 제2대 회장으로 추대되었습니다.
이는 SK그룹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974
[한국고등교육재단 설립]
미래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사재를 들여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했습니다.
이는 그의 교육에 대한 깊은 신념을 보여주는 행보입니다.
1975
[수직계열화 비전 선포]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라는 담대한 비전을 천명하고, 선경을 에너지와 종합화학 기업으로 키우는 대전환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훗날 SK그룹의 핵심 사업 기반이 됩니다.
1979
1980
[대한석유공사 인수]
대한석유공사(현 SK에너지)의 경영권을 획득하며 재계 5위 그룹으로 도약했습니다.
그는 대한석유공사 대표이사 사장에 선임되었고, 이 회사는 세계 최대 정유공장으로 거듭났습니다.
동시에 정보통신 사업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미래를 위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유공은 세계 최대의 정유공장이자 복합 석유화학 단지를 갖춘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났습니다.
1983
1984
[북예멘 유전 개발 성공]
국가적 위기였던 오일쇼크를 교훈 삼아 해외 유전 개발에 적극 나섰습니다.
연이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은 결과, 북예멘 유전 개발에 성공하며 대한민국을 '무자원 산유국' 반열에 올리는 기념비적인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을 ‘무자원 산유국' 반열에 올린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1985
1987
1988
1991
[수직계열화 완성]
울산콤플렉스를 완공하며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 비전을 성공적으로 완성했습니다.
또한 정보통신 산업 진출을 위한 선경텔레콤(현 대한텔레콤)을 설립하며 미래를 준비했습니다.
1992
[2이동통신 사업권 반납]
노태우 정부에서 제2이동통신 사업권에 선정되었으나 특혜 의혹으로 인해 사업권을 자진 반납하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의 청렴한 경영 철학이 드러났습니다.
또한 저서 《도전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를 출간했습니다.
1993
[한국이동통신 인수]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포기하는 대신, 제1이동통신 공기업인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인수에 성공하며 정보통신 시대를 선도할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같은 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으로 선출되어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했습니다.
SK텔레콤 인수는 SK그룹의 현재 주력 사업을 결정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1995
1997
박계희 여사는 워커힐미술관 관장으로도 활동했습니다.
1998
[별세, SK그룹 승계]
병세가 악화되어 로스앤젤레스 병원에 입원했다가 귀국한 후, 서울 자택에서 폐암으로 별세했습니다.
향년 68세였습니다.
그의 타계 후 장남인 최태원 현 SK그룹 회장이 그룹을 이어받았습니다.
2001
2003
[SK글로벌 회계분식 논란]
그가 타계한 지 5년 후, 서울지방법원 판결에서 SK글로벌의 부실 및 회계분식 혐의가 인정되어 관련 경영진들이 형사처벌을 받았습니다.
이는 SK그룹의 투명성 강화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불러왔습니다.
2006
[대한민국 녹색 대상]
산림청 주관 제1회 대한민국 녹색 대상을 수상하며 환경 보호에 대한 그의 철학과 기여가 재조명되었습니다.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