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개혁

근대화, 개혁, 정치 개혁, 사회 개혁, 경제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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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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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 개혁, 정치 개혁, 사회 개혁, 경제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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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부터 1895년까지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 추진된 대대적인 개혁입니다. 신분제 폐지 은본위제 도입 등 사회 경제 전반에 걸친 중요한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일본의 강한 영향력 아래 진행되어 자주성의 한계가 있었고 민중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한국 근대화의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했으나 외세 의존과 내부 반발로 완전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종결되었습니다. 고종이 반포한 홍범 14조는 한국 최초의 헌법적 성격을 띤 법령으로 평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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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

[임오군란 후 청나라 개입]

임오군란 이후 정계에서 밀려났던 흥선대원군이 재기를 노렸으나, 청나라의 개입으로 실패하며 민씨 척족 중심의 조선 조정이 재편되었습니다.

이는 청나라 양무 운동을 본받아 근대 개혁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조선은 삼정의 문란, 대일/대청 무역 역조, 열강 이권 침탈 등으로 재정난에 시달렸습니다. 청나라가 파견한 묄렌도르프의 당오전 발행으로 조선 경제는 더욱 파탄 직전에 몰렸습니다.

1884

[급진개화파 갑신정변]

김옥균, 박영효 등 급진개화파가 일본식 서구화를 주장하며 고종의 지지를 얻었으나 수구파의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결국 청나라의 개입과 일본의 철수, 고종의 지지 상실로 3일 만에 실패한 갑신정변을 일으켰고, 주요 인물들은 일본으로 망명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청과 일본 간 한반도 헤게모니 갈등을 심화시켰습니다.

서재필을 제외한 대부분의 개화파 인물들이 일본에서 망명 생활을 이어갔으며, 망명객들의 존재와 한반도 헤게모니를 두고 청과 일본은 늘 외교 문제에 갈등을 빚었습니다.

1885

[청일 톈진 조약 체결]

갑신정변 이후 청나라와 일본 양국은 한반도 내 군대 동시 철수를 내용으로 하는 톈진 조약에 합의했습니다.

이는 잠시나마 한반도에서의 긴장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했으나, 훗날 일본이 조선에 군대를 파병하는 구실이 됩니다.

1894

[동학농민운동과 청일 파병]

삼남 지방에서 동학 농민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민씨 척족은 청에 원군을 요청했습니다.

톈진 조약을 구실로 일본 또한 조선에 군대를 파병하면서, 조선은 두 열강의 군대가 주둔하는 긴장 상태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청일전쟁과 일본 승리]

한반도의 헤게모니를 놓고 청일 양국 간의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예상과 달리 일본군이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며 청나라를 한반도에서 축출하고, 황해 해전 승리로 제해권을 장악하며 요동, 산동반도, 대만 등 동중국해의 주요 지점을 모두 차지했습니다.

이로써 일본의 동아시아 패권이 확립되었습니다.

일본의 빠른 진공 속도에 청나라의 서구 열강 중재 시도가 무산되었습니다.

[전주화약과 교정청 설립]

조선 정부는 동학 농민군과 전주화약을 체결하며 중앙에 교정청을, 지방에 농민 자치 기구인 집강소를 설치하여 자주적인 개혁을 추진하려 했습니다.

이는 봉건 사회의 문제 해결과 근대적 제도 개혁을 위한 첫걸음이었습니다.

[일본의 경복궁 습격]

조선의 자주적 개혁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경복궁을 습격하여 조선 중앙 정부 기구를 장악했습니다.

이후 친일 내각을 수립하고 교정청을 해체한 뒤, 일본의 간섭 아래 개혁을 추진할 군국기무처를 신설하여 갑오개혁의 실질적인 시작을 알렸습니다.

일본은 군국기무처를 통해 전주화약으로 시작된 개혁에 간섭했으며, 이후 농민군을 학살하는 등 폭력적인 행위를 벌였습니다.

[제1차 갑오개혁 시작]

김홍집 내각을 중심으로 군국기무처 주도하에 제1차 갑오개혁이 시작되었습니다.

'개국' 기원 연호 사용, 왕실 사무와 정부 사무 분리, 6조 체계를 8아문으로 개편하는 등 청과의 대등한 관계를 표명하고 행정 제도를 근대화하려는 노력을 했습니다.

재정 일원화, 과거제 폐지, 은본위 화폐 제도 실시, 도량형 통일, 조세의 금납화, 경무청 설치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이 단행되었습니다. 이 시기 흥선대원군은 잠시 섭정을 맡았으나 일본과의 입장 차이로 물러났습니다.

[제2차 갑오개혁 시작]

김홍집과 박영효의 연립내각이 주도하여 제2차 갑오개혁이 시작되었습니다.

군국기무처가 폐지되고 의정부가 내각으로 개편되었으며, 고종은 근대국가 수립의 의지를 담은 홍범 14조를 반포하여 개혁의 기본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한국 최초의 헌법적 성격을 띤 법령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인사 제도 개편, 월급제 도입, 행정 제도의 지방 8도에서 23부로 개편, 신분 제도 개혁 (문무, 반상 구별 폐지), 독립된 재판소 설치, 군사적 권한의 중앙 예속 등 근대 관료 체제 구축을 위한 개혁이 추진되었습니다.

1895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

청일 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면서 시모노세키 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일본에 망명 중이던 개화파 인사들이 모두 조선으로 귀국하여 일본의 영향력 아래 갑오개혁을 더욱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단발령과 의병운동]

을미개혁의 핵심 내용 중 하나인 단발령의 강압적 시행은 을미사변으로 격앙되어 있던 백성들의 반일·반정부 감정을 폭발시켰습니다.

이는 대규모 항일 의병 운동, 즉 을미의병으로 이어지며 전국적인 저항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제2차 갑오개혁 종결]

일본 측의 개혁 방향 불만과 고종·명성황후의 공격으로 박영효가 일본으로 망명하며 제2차 갑오개혁이 사실상 종결되었습니다.

이는 갑오개혁 추진 세력의 약화를 가져왔습니다.

[을미개혁 시작]

을미사변 직후 제3차 김홍집 내각에 의해 제3차 갑오개혁, 즉 을미개혁이 추진되었습니다.

이는 친일 세력이 주도한 가장 친일적 성향의 개혁으로, 조선의 근대화를 일본의 의도에 맞게 더욱 강압적으로 진행했습니다.

태양력 도입, 연호 '건양' 변경, 단발령 시행, 정부 주도 종두법 시행, 근대적 우편 제도 도입을 위한 우체사 설립 등이 이루어졌습니다.

1896

[아관파천으로 개혁 종결]

을미사변 이후 신변의 불안을 느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는 아관파천이 발생하면서, 친러 정권이 득세했습니다.

이로 인해 김홍집 등 갑오개혁의 중심 인물들이 살해되거나 일본으로 도주/망명하면서 근대국가 수립이라는 개혁의 목표는 실현되지 못하고 갑오개혁은 최종적으로 종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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