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우 (고려)
고려, 승려, 불교개혁가, 국사, 왕사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9:49
고려 말 혼란한 시기 불교 개혁을 위해 힘쓴 고승입니다. 임제종 선풍을 도입하고 구산선문 통합을 시도하는 등 불교계의 정화를 이끌었습니다. 공민왕과 우왕의 왕사 국사로 활동하며 한양 천도 건의 등 현실 개혁에도 적극 참여했습니다. 고려 불교의 마지막 불꽃이자 조선 불교에까지 큰 영향을 미친 인물입니다.
1301
[위대한 승려의 탄생]
고려 말 불교 개혁을 이끌 인물, 보우가 홍주(현 충청남도 홍성군)에서 태어났다.
그의 탄생은 해가 품에 들어오는 태몽으로 예견되었다고 전해진다.
1313
[13세, 승려의 길에 들다]
13세의 어린 나이에 회암사 광지의 제자로 출가하며 승려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가지산으로 들어가 본격적인 수행을 시작했다.
1325
[승과 급제와 고행]
25세에 승과 중 하나인 화엄선에 급제했으나, 그는 명예와 이익을 멀리하고 감로사에서 고행하며 수행에 매진했다.
1346
[고려 임제종 시조의 길]
삼각산에 태고사를 지었고, 충목왕 2년(1346년) 원나라로 건너가 하무산 청공에게서 법을 이어받아 고려 임제종의 시조가 되었다.
이는 고려 불교사에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한 세계 최초의 시도로 평가받는다.
1356
[개혁의 왕사, 한양 꿈을 꾸다]
원나라에서 귀국 후 공민왕의 요청으로 왕사(王師)가 된 보우는 불교의 타락을 막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강조했다.
그는 불교계 통합을 위한 '원융부' 설치와 고려의 새 기운을 위한 '한양 천도'를 강력하게 건의했다.
보우는 공민왕 5년(1356년) 왕사로 책봉되어 왕에게 '왕도는 불교 신앙이 아닌 밝은 정치에 있다'고 아뢰는 등 개혁적 면모를 보였다. 이에 공민왕은 원융부 설치와 한양 천도를 수용했으나, 보수 세력의 반발로 한양 천도는 좌절되고 원융부마저 10개월 만에 해체되며 그의 개혁 의지는 큰 벽에 부딪혔다.
1365
[신돈과의 갈등, 은거]
공민왕의 총애를 받던 실권자 신돈의 횡포가 심해지자, 보우는 그와의 충돌을 피하고자 소설사와 법주사 등지로 물러나 은거하며 불교 본연의 수행에 집중했다.
1374
[우왕의 국사로 복귀]
실권자 신돈이 몰락한 후, 보우는 우왕의 국사(國師)로 다시 임명되며 고려 불교 개혁의 끈을 놓지 않았다.
혼란한 시기에도 불구하고 불교계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수행했다.
1383
[보우, 82세의 나이로 입적]
고려 말 불교 개혁과 혼란한 시국 속에서 고뇌하며 수행과 교화에 힘썼던 고승 보우가 82세의 나이로 입적했다.
그의 삶은 고려 불교의 마지막 불꽃이자 조선 불교에까지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