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눌
승려, 사상가, 불교개혁가, 조계종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9:44
고려 중후기를 대표하는 고승이자 사상가입니다. 한국 불교의 새로운 흐름인 조계종의 기틀을 마련한 중천조로 평가받습니다. 선(禪)과 교(敎)의 조화를 강조하는 정혜쌍수와 돈오점수 사상을 정립하여 당시 혼란했던 불교계를 개혁하고 오늘날 한국 불교의 중심인 조계종의 근간을 세웠습니다. 그의 독창적인 조계선 사상은 중국 선불교의 연장에서 벗어나 한국 선불교의 독자적인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1158
[지눌의 탄생]
고려 황해도 서흥군 동주에서 국자감 학정 정광우와 조씨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훗날 한국 불교의 큰 별이 될 그의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1165
[승려의 길을 걷다]
8세의 어린 나이에 사굴산파의 종휘를 은사로 삼아 승려가 되었습니다.
출세와는 거리가 먼 삶, 오직 도를 구하는 길에 들어서며 자신만의 길을 모색했습니다.
1182
[첫 깨달음과 결사 약속]
승과에 급제했으나 출세를 포기하고, 개경 보제사에서 동료들과 함께 불교 개혁을 위한 '결사'를 약속했습니다.
이후 창평 청원사에서 《육조단경》을 읽던 중 '진여자성(眞如自性)은 항상 자유롭고 자재하다'는 구절에서 첫 깨달음을 얻고 혜능을 평생 스승으로 삼았습니다.
1185
[화엄경을 통한 심화된 깨달음]
속세를 떠나 하가산 보문사에 들어가 《대장경》을 읽던 중, 《화엄경》의 핵심 구절에서 또 다른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로써 선(禪)과 교(敎)가 본래 하나라는 '선교일원'의 원리를 발견하고 독자적인 사상 체계를 확립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1188
[정혜결사 조직]
뜻을 같이하는 득재, 몽선 등과 함께 팔공산 거조사로 거처를 옮겨 '정혜결사(定慧結社)'를 조직했습니다.
이는 혼란한 당시 불교계를 바르게 이끌고자 수행과 지혜를 함께 닦는 새로운 공동체의 시작이었습니다.
1190
[《권수정혜결사문》 선포]
정혜결사의 정신과 목적을 널리 알리고 더 많은 동참자를 모으기 위해, 그의 대표적인 저작 중 하나인 《권수정혜결사문》을 지어 세상에 선포했습니다.
이 글은 불교 개혁의 깃발이 되었습니다.
1197
[상무주암에서 보살행 깨달음]
결사에 참여한 무리 중 일부가 시비를 일으키자, 지리산 상무주암으로 들어가 홀로 수행에 전념했습니다.
이곳에서 《대혜어록》을 보며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보살행'의 중요성을 깨닫고, 대중과의 소통을 통한 교화를 다짐했습니다.
1200
[송광산 길상사에서 가르침을 펼치다]
송광산(현 조계산) 길상사(현 송광사)로 옮겨 11년 동안 수많은 제자들에게 설법을 전했습니다.
《금강경》, 《육조단경》 등으로 가르치며 성적등지문, 원돈신해문, 경절문의 세 가지 수행법을 제시하여 많은 이들이 깨달음에 이르도록 이끌었습니다.
1204
[희종, 송광산에 '조계산' 명명]
희종이 즉위하여 송광산을 '조계산'으로, 길상사를 '수선사'로 개명하고 친필 제방을 보냈습니다.
또한 희종은 지눌에게 만수가사를 하사하고 120일 동안 낙성법회를 열게 하여 그의 가르침을 크게 인정하고 불교 개혁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1210
[법석에서 입적하다]
4월 22일, 제자들을 소집하여 법복을 입고 설법을 하던 도중, 주장(주장자)을 잡은 채 평화롭게 입적했습니다.
희종은 그에게 '불일보조국사'라는 시호와 '감로'라는 탑호를 내렸고, 지눌은 한국 불교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고승으로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