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

불교, 스님, 선사, 근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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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07- 11: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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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
불교, 스님, 선사, 근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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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 불교의 중흥조로 불리는 대선사 경허는 아홉 살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치열한 구도 끝에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만공 혜월 수월 등 한국 불교계의 큰 별이 된 제자들을 길러내 법맥을 이었고 파격적인 무애행과 가르침으로 당시 침체되었던 불교에 새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그의 생애는 소설 길없는 길로도 재조명될 만큼 대중적 흥미를 끈 위대한 선구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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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9

[선사의 탄생]

전주 자동리에서 아버지 송두옥과 어머니 밀양 박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속명은 동욱이며, 본관은 여산 송씨입니다.

1857

[아홉 살, 출가하다]

아홉 살 어린 나이에 경기도 청계산 청계사로 출가하여, 대선사로서의 첫걸음을 내딛었습니다.

1879

[코 없는 소, 깨달음]

동학사 근처 이처사에게서 '소가 되더라도 콧구멍 없는 소가 되어야지'라는 선문답을 전해 듣고는, 문득 크게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한마디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결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이 구절은 중국 법안종 종주인 법안 선사의 어록에 나오는 선어입니다. 당시 경허 스님의 시봉을 들던 사미승 원규는 그의 사제인 학명 스님의 제자였고, 이처사는 원규 스님의 속가 아버지였습니다.

1880

[천장암, 대각을 이루다]

깨달음 이후, 어머니와 형님이 주지로 있던 연암산 천장암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이곳에서 1년 반 동안 치열한 참선을 계속한 끝에 '사방을 둘러 보아도 사람이 없구나'로 시작하는 유명한 오도송(悟道頌)을 지으며 확철대오(廓徹大悟)를 이룹니다.

천장암은 백제 무왕 때 담화선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입니다. 이곳에서 훗날 한국 불교계를 대표하는 수월, 혜월, 만공 스님 등 경허 선사의 핵심 제자들이 출가하여 함께 수행하며 한국 불교의 큰 흐름을 만들어냈습니다.

1886

[자유로운 무애행 시작]

깨달음을 얻은 후 6년간의 수행(보임)을 마치고는, 옷과 발우, 주장자 등을 모두 불태우고 자유로운 삶, 즉 무애행(無碍行)에 나섰습니다.

이는 세속의 형식과 제약에 얽매이지 않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파격적인 행보였습니다.

1902

[혜월에게 전법을 전하다]

천장암에서 핵심 제자 중 한 명인 혜월 스님에게 '혜월(慧月)'이라는 법호와 함께 깨달음의 전법게를 내렸습니다.

이는 그의 가르침이 다음 세대로 계승됨을 의미하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1904

[만공에게 전법, 홀연히 떠나다]

또 다른 핵심 제자인 만공 스님에게 전법게를 주고는, 천장암을 떠나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그가 남긴 전법게는 만공 스님의 법맥이 이어지는 상징적인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는 만공 스님에게 '수산 월면에게 글자 없는 도장을 부쳐 주고 주장자를 잡아 한 번 치고 이르기를 "다만 이 말소리가 이것이다. 라고 하였으니 또 말해 봐라. 이 무슨 도리인가?" 또 한 번 치고 이르기를 "한 번 웃고는 아지 못커라, 낙처가 어디인가. 안면도의 봄물이 푸르기를 쪽과 같도다." 하고 주장자를 던지고 흐음하고 내려오다.'라는 내용의 전법게를 남겼습니다.

1912

[환속 후 열반에 들다]

함경도 갑산 웅이방에서 세속으로 돌아와 박난주로 개명하고 서당 훈장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다 새벽에 임종게를 남기고 열반에 들었습니다.

나이 64세, 법랍 56세였습니다.

그의 저서로는 《경허집》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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