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우 (조선)
조선 승려, 불교 부흥 운동가, 철학자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9:43
* 조선 명종 시대 불심 깊은 문정왕후의 전폭적인 신임을 얻어 불교 부흥을 이끈 승려입니다. * 숭유억불 정책으로 억압받던 불교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승려를 선발하는 승과와 도첩제를 부활시키는 등 불교의 위상을 드높였습니다. * 문정왕후 사후 유림 세력의 맹렬한 반발에 직면해 유배지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으나 그의 노력으로 배출된 승려들은 훗날 임진왜란 시기 호국불교의 주역이 되어 조선 불교의 맥을 잇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1515
[보우의 탄생]
훗날 조선 불교의 운명을 바꿀 인물, 보우가 태어났습니다.
그의 삶은 숭유억불 정책으로 억압받던 불교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치열한 노력과 비극적인 끝이 교차하는 드라마와 같았습니다.
1530
[금강산에 입산하다]
어린 보우는 수려한 금강산 마하연암에 들어가 참선과 경학 연구에 전념하며 수행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험난한 산중에서 그는 세상을 바꿀 깊은 불심을 키워나갔습니다.
1548
[왕후의 신임, 불교의 최전성기]
명종의 어머니이자 불심이 깊었던 문정왕후의 전폭적인 신임을 얻어 봉은사 주지에 오르며 본격적으로 조선 불교 부흥의 선봉에 섰습니다.
왕후의 섭정 아래, 보우는 선종과 교종을 부활시키고 봉은사를 선종의, 봉선사를 교종의 본산으로 삼는 등 숭유억불 정책으로 탄압받던 불교의 중흥을 이끌었습니다.
보우는 문정왕후의 든든한 지지를 바탕으로 선종과 교종의 양대 본산을 재건하고, 승려를 선발하는 승과(僧科)와 승려 자격을 증명하는 도첩제(度牒制)를 다시 시행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그는 당대 최고의 승직인 도대선사에 오르며 불교가 다시 사회의 주요 세력으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565
[불꽃 꺼지다, 비극적 최후]
불교 부흥을 든든히 지지하던 문정왕후가 승하하자,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유림 세력의 거센 반발에 부딪힌 보우는 모든 승직을 박탈당하고 제주도로 유배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제주 목사에 의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며 그가 이끌던 불교 부흥 운동은 막을 내렸습니다.
문정왕후 사후, 유교를 숭상하던 사대부들은 불교 부흥의 중심이었던 보우에게 맹렬한 공격을 가했습니다. 결국 그는 유배지 제주에서 제주 목사에 의해 살해당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그가 부활시킨 선교양종의 승과도 폐지되었으나, 당시 배출된 서산대사 휴정, 사명대사 유정 등과 같은 위대한 승려들이 임진왜란 때 호국불교 정신을 발휘하여 활약하면서 조선 불교의 법맥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