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성공회

종교, 기독교, 성공회,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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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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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성공회는 1890년 찰스 존 코프 주교의 한국 선교로 시작된 한국의 독립된 성공회 교회입니다. - 1993년 세계성공회공동체의 정식 관구로 독립하며 한국 내 자립적인 교회 운영의 주체가 되었습니다. - 선교 초기부터 의료 및 교육 사업으로 사회 선교에 힘썼으며 3.1운동 참여와 한국전쟁 중 성직자 순교 등 격동의 역사를 함께했습니다. - 한국인 최초의 사제와 주교를 서품하고 신학원을 설립하는 등 자립적 성장을 이루었으며 지적장애인 교육기관 설립 노동자 및 이주노동자 인권 보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 고교회파 전통을 존중하여 천주교와 유사한 용어를 사용하며 한국 문화에 뿌리내리고자 한옥 성당을 건축하는 등 토착화에도 힘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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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

[고요한 주교 한국 선교 시작]

잉글랜드 성공회 찰스 존 코프(고요한) 주교가 마크 트롤로프 사제, 랜디스 의사(남득시)와 함께 부산항으로 입국하며 대한성공회 선교가 시작되었습니다.

조선인의 빈곤과 질병을 보고 의료 선교를 계획했던 그는 입국 당일 영국 세관원의 아들에게 세례를 베풀며 한국 땅에서 첫 성공회 의식을 거행했습니다.

1897

[한국인 첫 성공회 세례]

잉글랜드 성공회 선교사들의 활동 7년 만에 김희준(마가)과 김군명(요한)이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성공회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는 한국 땅에 성공회 신앙이 깊이 뿌리내리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내동성당 설립]

인천 중구 내동에 대한성공회의 첫 교회 공동체 중 하나인 내동성당이 설립되었습니다.

이는 한국 기독교 초기의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지 중 하나입니다.

[강화성당 설립]

강화도에 한국 전통 건축 양식인 한옥으로 지어진 강화성당이 설립되었습니다.

이는 선교 초기부터 한국 문화의 토착화에 힘썼던 성공회의 노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건축물입니다.

1900

[온수리성당 설립]

강화도에 한옥 양식으로 지어진 온수리성당이 설립되었습니다.

이는 대한성공회의 토착화 노력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시입니다.

1905

[2대 터너 주교 서품]

아더 터너 주교가 대한성공회 2대 주교로 서품되었습니다.

1911

[3대 트롤로프 주교 서품]

마크 트롤로프 주교가 대한성공회 3대 주교로 서품되었습니다.

그는 한국인 사제 양성에 큰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1914

[성 미가엘 신학원 설립]

3대 주교 마크 트롤로프는 한국인 사제 양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강화도에 지금의 성공회대학교의 전신인 '성 미가엘 신학원'을 설립했습니다.

이는 한국 성공회의 자립 기반을 다지는 중요한 교육 기관이 되었습니다.

1915

[첫 한국인 성공회 사제 서품]

김희준(마가) 사제가 대한성공회의 3대 주교 마크 트롤로프에게 서품을 받아,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의 성공회 사제가 탄생했습니다.

이는 한국 성공회 역사에서 자립의 중요한 상징이자, 토착화를 향한 큰 발걸음이었습니다.

1919

[3.1운동 참여 및 탄압]

대한성공회는 3.1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병천교회와 부속 신명학교에서 태극기를 제작해 독립운동을 지원했습니다.

이로 인해 학교가 폐쇄되고 교사 김구응이 일본 헌병에게 순교하는 등 큰 탄압을 겪었지만, 이는 사회 정의 실현에 대한 성공회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1925

[성가수녀원 축성]

현재 대한성공회 성가수도회인 성가수녀원이 축성되었으며, 이비비 수녀가 첫 지원자로 참여했습니다.

이는 한국 성공회 내 수도 공동체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1931

[4대 쿠퍼 주교 서품]

구세실(세실) 주교가 대한성공회 4대 주교로 서품되었습니다.

그의 재임 기간에는 복음화 운동으로 신자 수가 크게 증가하기도 했습니다.

1936

[신사참배 수용]

대한성공회는 천주교, 구세군, 감리회 등과 함께 일본의 주장을 받아들여 신사참배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당시 대부분의 기독교 교파들이 일본의 국가 의식이라는 주장에 따라 수용하게 된 아픈 역사 중 하나입니다.

1950

[한국전쟁 중 성직자 순교]

한국전쟁 발발 시, 대한성공회는 서울주교좌대성당 주임 윤달용 신부와 성공회대학교 교수 조용호 신부 등 성직자들이 공산주의자들에게 순교당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윤 신부는 인민재판의 폭력에 항의하다 순교했고, 조 신부도 납치 후 순교했습니다.

이는 성공회가 겪은 큰 시련이자 믿음을 지킨 숭고한 희생이었습니다.

1955

[5대 데일리 주교 서품]

김요한(존 데일리) 주교가 대한성공회 5대 주교로 서품되었습니다.

1965

[최초 한국인 주교 서품 및 교구 분리]

이천환(바우로) 주교가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성공회 주교로 서품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성공회 교구는 서울교구와 대전교구로 분리되었으며, 이는 한국 성공회의 자립적 성장을 알리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1974

[부산교구 분리 독립]

대한성공회 대전교구에서 부산교구가 분리 독립되었습니다.

이는 한국 성공회 교세 확장에 따른 교구 재편의 일환이었습니다.

[지적장애인 교육기관 설립]

지적장애인 교육이 생소하던 시기인 1974년, 대한성공회는 '성 베드로 학교'를 개교하며 장애인 교육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약자의 권익 보호를 위한 사회 선교 정신을 실천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1993

[독립 관구 설정]

대한성공회는 잉글랜드 성공회 산하 교구로 활동하던 시기를 마치고, 세계성공회공동체에 속하는 정식 '관구'(Province)로 독립된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는 한국 성공회가 독자적인 교회 운영의 주체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2018

[이정호 신부 동백장 수상]

성공회 남양주 샬롬의 집 사제인 이정호(골롬바) 신부가 이주노동자 인권 보호에 대한 공로로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동백장을 수상했습니다.

그의 사진과 인터뷰가 국가인권위원회 기관지 표지 모델로 실리기도 하며, 성공회의 지속적인 사회 선교 활동이 다시 한번 주목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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