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대한성결교회

개신교 교단, 웨슬리안 성결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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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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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교단, 웨슬리안 성결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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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주요 개신교 교단 중 하나로 존 웨슬리의 신앙 전통인 성결운동에 뿌리를 둡니다. -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의 사중복음을 핵심 교리로 삼아 전도에 힘써왔습니다. - 1907년 동양선교회를 모체로 시작하여 일제강점기 박해와 한국전쟁의 어려움을 겪으며 성장했습니다. - 해방 후 교단 명칭을 변경하고 내부 갈등으로 인한 분열과 재통합의 역사를 거쳤습니다. - 2000년대 들어 유아세례와 여성 안수를 허용하는 등 시대적 변화를 수용하며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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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

[한국 성결교회 시작]

김상준과 정빈이 도쿄성서학원 훈련 후 경성 염곡(현 서울 종로2가 관철동)에 중앙 복음전도관을 설립하며 한국 성결교회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곳은 크게 부흥하며 한국 기독교 역사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습니다.

1911

[경성성서학원 개설]

성결교회는 무교정으로 이전한 복음전도관에서 '경성성서학원(현 서울신학대학교)'을 개설했습니다.

이는 실력 있는 복음전도자를 양성하고 구령 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한 것으로, 교단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921

[교단으로 정식 출범]

성결교회는 '조선야소교 동양선교회 성결교회'를 조직하며 단순한 전도 단체에서 정식 교단으로 변모했습니다.

어니스트 길보른이 초대 감독으로 취임하며 한국 개신교 내 중요한 교단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33

[선교사로부터 독립 결의]

제1회 총회에서 선교사들로부터의 독립을 결의하고 자치연회를 개최하며, 한국 성결교회가 자체적인 운영 기반을 다지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이는 한국 기독교의 자주성 확립에 기여한 의미 있는 사건입니다.

1936

[초기 교단 분열]

내부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십여 명의 목회자들이 성결교단을 떠나 '하나님의교회'를 설립하는 분열이 발생했습니다.

이 교단은 이후 1948년 대한기독교나사렛성결회로 합동됩니다.

1942

[일제에 의한 해산 (일본)]

태평양전쟁 중 일본 천황의 신성을 부정하고 성경의 재림론을 고수한다는 이유로, 일본 제국에 의해 일본 내 성결파 계열 교회들이 강제로 해산되는 박해를 겪었습니다.

1943

[일제에 의한 해산 (조선)]

일본에 이어 조선의 성결교회 또한 일본 천황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고 재림론을 굽히지 않아 일본 제국에 의해 강제로 해산되는 모진 박해를 겪었습니다.

이는 교단의 신앙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었습니다.

1945

[해방 후 교단 재건]

광복 이후,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산되었던 성결교단 총회가 극심한 어려움 속에서도 재건되었습니다.

이는 한국 기독교 역사에 있어 중요한 회복과 재도약의 상징이었습니다.

1948

[장로제 채택]

해방 후 재건된 성결교단은 대의민주제도로서 '장로제'를 정치제도로 공식 채택하며 교단의 운영 체제를 확립했습니다.

이는 교회의 민주적 운영을 위한 중요한 결정이었습니다.

1949

[교단명 '기독교대한성결교회'로 변경]

제4회 총회에서 대한민국 국호 확정에 발맞춰 교단명을 '기독교조선성결교회'에서 현재의 '기독교대한성결교회'로 공식 변경하며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1950

[한국전쟁 박해와 순교]

한국전쟁 발발로 수많은 성결교회와 교인들이 공산군의 모진 박해와 순교를 겪었습니다.

이는 교단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시기 중 하나로,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1961

[신학적 입장 차이로 분열]

전후 사회의 좌우 이념 갈등이 교회에도 영향을 미쳐,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컬 운동 참여 문제를 놓고 심각한 정치적·신학적 갈등을 겪던 한국성결교회가 두 그룹으로 분열되었습니다.

1962

[예수교대한성결교회 독립]

1961년의 분열 이후, 보수파가 '예수교대한성결교회 총회'를 조직하고 별도로 '성결신학교(현 성결대학교)'를 설립하며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두 개의 주요 성결교단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1996

[유아세례 공식 허용]

제51회 총회에서 유아세례가 공식적으로 허용되었습니다.

이는 교단의 신학적 폭을 넓히고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중요한 결정으로 평가됩니다.

2004

[여성 안수 공식 허용]

제59회 총회에서 여성 안수가 공식적으로 허용되었습니다.

이는 한국 개신교 내에서 진일보한 결정으로, 교단 내 여성 사역자의 역할을 확대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7

[창립 100주년 기념]

기독교대한성결교회가 창립 100주년을 맞아 대규모 기념 행사를 가졌습니다.

이와 함께 발간된 기념 신학서에서는 성결교회의 신학을 '개신교 복음주의 웨슬리안 사중복음 신학'으로 규정했습니다.

2015

[웨슬리안교회 준회원 가입]

기독교대한성결교회가 웨슬리안교회 국제총회의 준회원이 되면서, 세계적인 웨슬리안 성결운동의 흐름에 더욱 깊이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국제적 교류와 연합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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