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문안교회

교회, 기독교, 장로교, 한국 최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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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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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기독교, 장로교, 한국 최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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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로 선교사가 세운 조직 교회로 1887년 언더우드 목사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장로교의 어머니 교회로 불리며 연세대학교 경신고등학교 설립에 기여하는 등 교육 사업에 앞장섰습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지원과 일부 친일 행적 6.25 전쟁 중 순교 등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함께했습니다. 민주화 운동 참여 및 사회 복지 활동을 통해 한국 사회 발전에 기여해 온 역사적 상징성을 지닌 교회입니다.

연관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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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

[선교사 조선 도착]

장로교 선교사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와 감리교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가 부활절을 맞아 조선 땅에 첫발을 내디디며 본격적인 선교 활동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첫 주일 예배 시작]

조선 땅에 도착한 선교사들에 의해 주일 예배가 처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한국 기독교 역사의 중요한 한 걸음이었습니다.

1886

[언더우드고아원 설립]

교육 사업의 첫걸음으로 언더우드고아원이 설립되었습니다.

이 고아원은 훗날 연세대학교와 경신고등학교의 전신이 되는 중요한 기관으로 발전했습니다.

1887

[한국 최초 조직교회 설립]

서울 정동 언더우드 목사 사랑채에서 한국인 세례교인 14명과 존 로스 목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새문안교회로서의 첫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날 1명의 교인 세례와 2명의 장로 선출로 한국 최초의 조직 교회가 탄생했으며, 이는 최초의 한국인 장로 배출 기록입니다.

초창기에는 정동교회, 서대문교회라는 명칭도 혼용으로 불리다가 1907년부터 새문안교회라는 이름만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사랑채의 위치는 지금의 예원학교 운동장 자리입니다.

1893

[승동교회 개척]

새문안교회가 곤당골 승동교회를 개척하며 한국 기독교 확장에 기여했습니다.

1894

[연동교회 개척 및 교인 급증]

연못골 연동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이 시기 조선 말기 혼란과 동학 농민 운동, 청일 전쟁 이후 교인이 급증하며 새 예배당을 신축했습니다.

이때부터 제한적으로나마 남녀가 같이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1896

[서교동교회 개척]

서교동교회를 개척하며 교세를 확장했습니다.

1906

[노량진교회 개척]

노량진교회를 개척했습니다.

1907

[교회 이전 및 명칭 확정]

교회 위치를 현재의 장소로 이전했으며, 이 시기부터 '새문안교회'라는 명칭만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1910

[벽돌 교회당 건축]

새로운 벽돌 교회당을 건축하며 교회의 외형을 갖추었습니다.

1916

[언더우드 목사 소천]

새문안교회를 설립한 초대 담임목사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가 건강 악화로 미국에서 소천했습니다.

그의 유해는 1999년에 한국으로 옮겨져 양화진 서울외국인묘지공원에 안장되었습니다.

1920

[차재명 목사 부임]

경신학교 교장 에드윈 쿤스 목사에 이어 차재명 목사가 새문안교회의 2대 담임목사로 부임했습니다.

1937

[일제 침략전쟁 옹호]

차재명 담임목사가 전국 순회 시국강연에 참여하며 일제의 침략 전쟁을 옹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당회에서도 이를 지지하는 결의를 하였고, 교회 내 일본어 교육 실시 및 내선일체 현판을 거는 등 일제에 동조하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1941

[장로회 여자신도대회]

새문안교회 예배당에서 장로교 총회 여자신도대회가 열려 국민총력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연맹 여자부가 결성되었습니다.

천장절 봉축식과 함께 일제에 동조하는 시국강연이 진행되었습니다.

1944

[김영주 목사 부임]

김영주 목사가 새문안교회의 3대 담임목사로 부임했습니다.

1945

[해방 후 교회 정비]

광복을 맞이하여 새문안교회는 혼란스러운 시국 속에서 교회를 재정비하기 시작했습니다.

1948

[농촌계몽 및 의료봉사]

사회적 역할을 강화하며 농촌계몽운동과 의료봉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49

[언더우드 부인 피살]

호러스 호톤 언더우드 목사의 사저에서 모윤숙 시인 간담회 중 괴한이 난입하여 그의 부인 엘터 여사가 피살당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원한경 목사는 범인들을 용서하고 선처를 호소하며 이념 대립으로 인한 사회상을 한탄했습니다.

1950

[한국전쟁 중 담임목사 납북]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김영주 담임목사와 김규식 장로가 북한군에 의해 납북되어 북한 땅에서 소천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원한경 목사의 세 아들도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1951

[호러스 호톤 언더우드 소천]

호러스 호톤 언더우드 목사가 소천했습니다.

임시수도 부산의 남성여자중학교에 피란 교회가 세워졌고 강태국 임시목사가 부임했습니다.

1955

[강신명 목사 부임]

강신명 목사가 새문안교회의 4대 담임목사로 부임했습니다.

1957

[창립 70주년]

새문안교회 창립 70주년 기념행사가 성대하게 열렸습니다.

1958

[언더우드학술강좌 시작]

언더우드학술강좌가 시작되며 학술적 기여를 확대했습니다.

1967

[언더우드교육관 건축]

언더우드교육관을 건축하며 교육 시설을 확충했습니다.

1968

[대학생회 창립 및 민주화 운동]

새문안교회 대학생회가 창립되었으며, 이후 군부 독재에 맞서 70년대에서 80년대 후반까지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1972

[새 교회당 건축]

왕손 이구의 설계로 새 교회당을 건축했습니다.

1979

[박정희 대통령 국장 참여]

박정희 대통령의 국장에서 새문안교회 찬양대가 찬송을 불렀고, 강신명 목사가 기도문을 낭독했습니다.

1980

[원로목사 추대 및 개척]

강신명 목사가 원로목사로 추대되었고, 황인기 목사가 임시로 부임했습니다.

또한 군산새문안교회를 개척하며 교세를 확장했습니다.

1981

[김동익 목사 부임]

김동익 목사가 새문안교회의 5대 담임목사로 부임했습니다.

1982

[국내외 교회 개척]

새창원교회, 고성 새문교회, 정읍 새정교회, 당진 새곡교회 등 국내 여러 교회를 개척했으며, 해외로는 태국 람푼교회까지 개척하며 활발한 선교 활동을 펼쳤습니다.

1987

[창립 100주년 기념]

창립 100주년 기념회가 열렸고, 이화여자대학교 강당에서 기념 음악회가 성대하게 개최되었습니다.

1992

[복지원 설립]

사회복지법인 새문안교회 복지원을 설립하며 사회 복지 활동을 본격화했습니다.

1997

[수양관 준공]

경기도 가평에 새문안교회 수양관을 준공하며 교인들의 영적 수련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최초 여성 장로 장립]

황경운 장로가 새문안교회 최초의 여성 장로로 장립되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했습니다.

1998

[김동익 목사 소천]

김동익 담임목사가 숙환으로 소천했습니다.

2000

[이수영 목사 부임]

이수영 목사가 새문안교회의 6대 담임목사로 부임했습니다.

2003

[최초 여성 목사 부임]

양해란 목사가 새문안교회 최초의 여성 목사로 부임하며 새로운 역사를 썼습니다.

2005

[언더우드교육관 헌당]

언더우드교육관을 헌당했습니다.

2006

[종로종합사회복지관 개관]

종로종합사회복지관을 개관하며 지역 사회 봉사를 강화했습니다.

2014

[예배당 재건축 착수]

기존 예배당 재건축을 위해 임시로 언더우드교육관과 광화문빌딩으로 예배 장소를 이전하고, 예배당 건물 철거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2016

[이수영 목사 은퇴]

이수영 담임목사가 정년 은퇴했습니다.

2017

[이상학 목사 부임]

이상학 목사가 새문안교회의 7대 담임목사로 부임했습니다.

2019

[새 성전 입당 예배]

새 성전이 완공되어 역사적인 첫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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