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대한민국, 장로교, 교단, 종교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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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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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장로교, 교단, 종교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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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규모와 역사를 자랑하는 장로교 교단입니다. 온건 보수적 개혁주의 신학을 지향하며 세계교회협의회(WCC)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에 적극 참여하여 교회 일치 운동을 이끌어 왔습니다. 사회 현실 참여에도 적극적인 한국 장로회 역사의 시초이자 중심축입니다.

연관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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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사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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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

[장로교 선교 시작]

미국 북장로교 의료선교사 호러스 뉴턴 알렌 박사 부부가 입국하여 근대식 병원인 광혜원을 설립하며, 한국 장로교의 공식적인 선교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한국 개신교 역사에 중요한 첫걸음이었습니다.

1887

[한국 최초 교회 설립]

언더우드 목사에 의해 한국 최초의 개신교 조직교회인 새문안교회가 설립되어 세례식과 성찬식이 베풀어졌습니다.

현재 예장통합 교단을 대표하는 이 교회는 한국 기독교 역사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1901

[교단 신학교 설립]

사무엘 모펫 박사가 평양에 교단 신학교인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를 설립했습니다.

이는 훗날 교단 조직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신학 교육 기관의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언더우드학당(경신학원), 연희전문, 숭실학당(숭실대학교) 등 한국 근대 교육의 주요 기관들이 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 설립되며 기독교 교육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1912

[교단 공식 조직]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조선예수교장로회'라는 명칭으로 교단이 공식적으로 조직되었습니다.

이는 한국 장로교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중요한 사건입니다.

1943

[일제 강제 개편]

일제의 강압으로 교단 명칭이 '일본기독교 조선장로교단'으로 강제 개편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이는 일제 강점기 한국 교회 수난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1947

[교단 재건 및 개칭]

해방 후 '조선예수교장로회'가 재건되고, 교단 명칭은 '대한예수교장로회'로 개칭되었습니다.

이는 한국 교회의 자주성을 회복하는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1952

[고신 교단 분리]

신사참배 및 친일 청산 문제로 한상동 목사를 중심으로 한 고려신학교(現 고신대학교) 측이 별도의 총회를 조직하며 분리해 나갔습니다.

이는 한국 교회사에 깊은 상처를 남긴 첫 번째 주요 분열입니다.

1953

[기장 교단 분리]

성서비평학 논쟁이 원인이 되어 김재준 목사를 중심으로 한 조선신학교(現 한신대학교) 측이 별도의 총회(한국기독교장로회)를 조직하여 분립해 나갔습니다.

신학적 입장 차이가 교단 분열로 이어진 중요한 사례입니다.

1959

[통합 교단 분립]

세계교회협의회(WCC) 가입 및 에큐메니컬 운동 수용 문제를 두고 찬성하는 한경직 목사 중심의 통합측(연동교회)과 반대하는 박형룡 목사 중심의 합동측(승동교회)이 대립하여 각각 단독 총회를 열고 최종적으로 분리되었습니다.

이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가 독자적인 교단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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