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교회

교회, 종교 단체, 기독교, 장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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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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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교회는 1980년 작은 상가에서 시작해 한국 교회의 대표적인 대형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새벽기도 열풍을 일으키며 수많은 교인을 모았고 국내외 선교 및 사회봉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비자금 조성 의혹과 담임목사 세습 논란으로 인해 사회적 관심과 비판의 중심에 서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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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명성교회 창립]

서울 명일동 홍우상가 2층, 약 47평 규모의 공간에서 김삼환 목사와 20여 명의 성도가 '명일동의 소리'가 되겠다는 포부로 명성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소규모로 출발했지만, 이들의 꿈은 곧 거대한 신앙 공동체로 피어날 씨앗이었습니다.

1983

[새 본당 건립]

창립 3주년을 맞아 명일동 330-5번지에 연건평 627평 규모의 새로운 본당을 건립했습니다.

작은 시작을 넘어, 명성교회가 지역 사회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는 중요한 발판이 됩니다.

1984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

명일동에 삼익그린, 삼익가든, 주공9단지 등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교회는 자연스레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며 교회의 존재감을 확고히 다졌습니다.

1985

[첫 해외 선교 시작]

창립 초기부터 지역을 넘어 세계로 시야를 넓혔습니다.

명성교회는 미국에 첫 해외 선교사를 파견하며 복음 전파의 지경을 확장했습니다.

같은 해, 명성기독실업인회를 발족하며 사회적 영향력도 키웠습니다.

1987

[명성장학관 개관]

강동구 고덕동에 명성장학관을 신축하고 문을 열었습니다.

이는 교회의 성장을 바탕으로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과 지원에 본격적으로 나선 의미 있는 발걸음이었습니다.

1989

[본당 재건축 완료]

기존 본당을 헐고 지하 2층, 지상 6층, 연건평 2,684평에 달하는 웅장한 새 본당을 건립했습니다.

이는 명성교회의 폭발적인 성장세를 상징하는 건축물로, 더 많은 성도들을 품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습니다.

1990

[동구권 최초 집회]

담임 김삼환 목사가 한국 개신교 목회자로서는 최초로 구 소련과 폴란드에서 동구권 집회를 가졌습니다.

이는 냉전 시대의 장벽을 넘어 복음을 전파한 역사적인 사건으로, 명성교회의 세계 선교 리더십을 보여주었습니다.

1991

[영광여고 인수]

경상북도 영주시의 영광여자고등학교를 인수하며 교육 분야로도 그 영향력을 넓혔습니다.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데 힘썼습니다.

1994

[안동성소병원 인수]

당시 300병상 규모의 안동성소병원을 인수하여 의료 선교 및 사회 봉사 영역으로도 활동 반경을 확장했습니다.

이는 교회가 영적 영역을 넘어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존재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줍니다.

1996

[국제구호 이사장 취임]

담임 목사가 국제구호선교회 이사장에 취임하며 명성교회가 국내외 구호 활동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1999

[영어예배 시작]

국제화 시대에 발맞춰 영어예배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다양한 국적의 성도들이 함께 예배하며 교회의 외연을 넓히는 중요한 시도였습니다.

[대북 비료 지원]

북한 옥수수 심기를 위한 비료 보내기 운동을 전개하여 비료 100톤과 자전거 100대를 북측에 지원했습니다.

민족 화해와 인도주의적 지원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2004

[에티오피아 MCM 개원]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명성크리스천메디컬센터(MCM)를 개원했습니다.

이는 해외 의료 선교의 거점을 마련하고 고통받는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중요한 발걸음이었습니다.

2006

[월드글로리아센터 개관]

세계적인 수준의 공연 및 국제 행사를 치를 수 있는 월드글로리아센터를 개관했습니다.

이는 지역 주민을 위한 문화 공간이자 교회의 사회적 역할을 확장하는 상징적인 건축물이 되었습니다.

2008

[대형 교회로 성장]

2008년 기준 총 재적인원 9만 5천 명, 출석 교인 4만 5천 명에 달하는 대형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새벽기도의 유명세와 함께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하며 한국 교회의 주요 공동체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인권위원장 고액 헌금 논란]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2008년부터 명성교회에 연 1,000만 원 이상의 고액 헌금을 기부한 사실이 드러나며 '로비성' 기부라는 논란이 일었습니다.

위원장 임명 전 기부액과 큰 차이를 보이며 그 배경에 관심이 쏠렸습니다.

2009

[예루살렘 성전 착공]

7,200석 규모의 대예배실을 포함한 지하 4층, 지상 5층의 초대형 '예루살렘 성전' 착공에 들어갔습니다.

한국 교회의 건축 기술과 규모를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프로젝트의 시작이었습니다.

2011

[예루살렘 성전 완공]

2009년에 착공했던 지하 4층, 지상 5층 규모의 '예루살렘 성전'이 마침내 완공되었습니다.

7,200석 규모의 대예배실과 1,600석 규모의 소예배실 2개를 갖춘, 한국을 대표하는 대형 예배 공간이 탄생했습니다.

2013

[베들레헴 성전 리모델링]

구 성전이 4월부터 9월까지 대규모 리모델링을 진행한 후 '베들레헴 성전'으로 새롭게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이는 기존 공간의 활용도를 높이고 교회의 역사와 현재를 잇는 의미를 더했습니다.

[변칙 세습 의혹 제기]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가 김삼환 담임목사가 아들 김하나 목사에게 교회를 물려주려 한다는 변칙 세습 의혹을 공식적으로 제기하며 큰 논란이 시작되었습니다.

교회 측은 논의조차 없다고 부인했지만, 대형 교회 세습에 대한 교계의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성전 명칭 통일]

2011년 완공된 새 성전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기존의 '예루살렘관'과 '새예루살렘관'은 '샬롬관'으로 명칭이 통합 변경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시설물 명칭의 체계화를 이루었습니다.

2014

[새노래명성교회 설립]

명성교회는 1300평 규모의 부지 및 건축물과 부목사, 교육 전도사, 하남 지역 교인 600여 명을 지교회인 새노래명성교회로 이관하고, 김삼환 목사의 아들 김하나 목사를 담임목사로 임명했습니다.

이는 변칙 세습 의혹을 더욱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비자금 의혹 불거져]

명성교회 재정 담당 박 모 장로의 사망과 관련하여 교회 일각에서 1,000억 원 비자금 조성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교회는 '심장마비'라고 주장했으나, 투신 사망 사실과 유서 내용이 밝혀지며 논란이 커졌습니다.

법원 재판에서 12년간 800억 원의 차명 계좌 존재가 확인되며 언론의 보도가 허위가 아님이 판결되었습니다.

재정 담당 장로의 유서에는 "교회 문제로 오해받고 있고 결백하다, 죽음으로 대신한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의혹이 증폭되었습니다. 명성교회는 관련 내용을 보도한 기자와 언론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으나, 재판 과정에서 김삼환 원로 목사와 사망한 장로 외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12년간 800억원이 적립된 차명 계좌의 존재가 확인되었습니다. 담당 판사는 "대형교회가 구성원들이 모르는 800억원의 차명 계좌를 12년간 관리해 왔다는 것에 '비자금'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허위 사실이 아니다"라며 언론사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2018

[세습 판결 논란 재점화]

명성교회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재판국이 창립자 김삼환 목사의 아들 김하나 목사의 담임목사직 청빙이 유효하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교회 세습 논란이 다시 뜨겁게 타올랐습니다.

교계 안팎의 비판과 함께 장신대 학생들의 수업 거부 운동이 벌어지는 등 강력한 반발에 직면했습니다.

[세습 판결 오류 인정]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총회는 명성교회 세습 판결의 근거가 된 헌법 해석이 잘못되었음을 공식적으로 결의했습니다.

이어 다음 날 재판국원 전원 교체를 결정하며 세습 논란에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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