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용조
목회자, 교육자, 복음주의자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9:01
온누리교회 설립자 한국 복음주의 운동의 선구자. 연예인교회 두란노서원 CGNTV 러브 소나타 등 문화 사역 개척. 제자훈련 열린 예배 CCM 도입으로 한국 교회 성장에 기여. 평생 7차례 암 수술 등 병마와 싸우면서도 사역에 헌신 출판 강해설교 기독교 학교 운동에 큰 족적을 남긴 시대의 지도자.
1946
[하용조 목사 탄생]
격변의 시대,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하대학과 김선일의 아들로 태어났다.
한국전쟁을 겪으며 경기도 이천과 전라남도 목포까지 피난하는 실향민의 삶을 경험하며 성장했다.
1972
[장로회신학대학 입학]
한국대학생선교회(CCC) 간사 활동을 마무리하고, 목회자의 길을 걷기 위해 장로회신학대학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했다.
1976
[목사 안수 및 연예인교회 개척]
목사 안수를 받고, 김경태 PD의 도움으로 가수 윤복희, 코미디언 구봉서 등 유명 연예인들과 함께 연예인교회를 개척하여 크게 부흥시켰다.
이는 복음의 사각지대에 있던 연예계에 복음을 전한 선구적인 시도였다.
1980
[건강 악화로 영국행]
연예인교회 성전 완공을 앞두고 지병인 간경화가 재발하면서 교회를 사임하고, 치료와 휴식을 위해 영국으로 떠났다.
1984
[영국에서 귀국]
영국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이는 한국 교회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온누리교회 설립의 발판이 되었다.
1985
[온누리교회 설립]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에 온누리교회를 설립했다.
온누리교회는 그의 혁신적인 목회 철학 아래 짧은 기간에 놀라운 성장을 이룩하며 한국 교회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국내 최초 열린 예배 도입]
시카고 윌로우크릭 커뮤니티 교회의 구도자 예배를 한국에 도입하여 '열린 예배'를 국내에 처음 선보였다.
이는 교회의 문턱을 낮추고 대중에게 다가간 혁신적인 시도로, 한국 교회 예배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994
[선교 비전 '2천/1만' 선포]
2010년까지 2000명의 선교사와 10000명의 평신도 사역자를 세우겠다는 '2천/1만' 비전을 선포하며, 한국 교회의 선교와 평신도 역량 강화에 대한 강력한 열망을 드러냈다.
2000
[끝없는 질병과의 투쟁]
평생을 다양한 질병과 싸웠다.
대학교 3학년 때 폐결핵을 시작으로 당뇨, 고혈압을 앓았으며, 특히 2000년대 중반 이후 신부전증이 악화되어 주 4회 투석을 받을 정도였다.
간염은 간암으로 발전하여 무려 7차례의 암 수술을 받으면서도 강인한 의지로 사역을 이어갔다.
2003
['Acts29' 비전 발표]
'사도행전적 교회를 재생산해 온누리에 복음을 전한다'는 'Acts29' 비전을 발표하며, 초대교회의 정신을 계승하고 전 세계 복음 전파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천명했다.
2011
[하용조 목사 소천]
향년 66세의 나이로 오전 8시 40분, 뇌출혈로 소천하며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감했다.
평생 복음주의 운동의 선구자로 한국 교회와 사회에 지대한 족적을 남긴 시대의 거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