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신흥 종교, 불교계, 한국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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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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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 종교, 불교계, 한국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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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소태산 박중빈이 창시한 신흥 종교. 물질문명 시대에 정신 개벽을 주창하며 새로운 불교의 길을 제시. 일원상을 근간으로 한 독자적 교리와 남녀 평등 교무 제도가 특징. 일제강점기 탄압을 이겨내고 영광과 익산을 거점으로 성장. 2016년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며 세계로 나아가는 교단으로 발돋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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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

[소태산 박중빈 탄생]

원불교의 창시자인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전라남도 영광군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우주와 인간 세상에 대한 깊은 궁금증을 가지고 수행의 길을 걸었습니다.

원불교의 창시자인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우주의 자연현상과 인간의 만사에 궁금증이 컸다고 전해집니다. 20세에 아버지를 여읜 뒤에도 심한 생활고 속에서 고행과 수도를 이어갔습니다.

1916

[원불교 개교 및 대각]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깊은 깨달음을 얻으며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이는 원불교 역사의 위대한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자, 물질과 정신 문명의 조화를 지향하는 원불교의 핵심 목표가 되었습니다.

같은 해 영광에서 불법연구회를 조직하며 최초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이때부터 '원기'라는 연호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불교의 역사는 1916년 교조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의 '대각(大覺)'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는 개교의 동기를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로 요약하며, 정신 문명의 주체성을 확립하여 물질문명을 올바르게 활용하는 새로운 세계를 지향했습니다. 깨달음을 얻은 뒤 고향인 영광을 중심으로 불법연구회를 조직하여 8~9인의 초기 공동체를 규합했으며, 이들은 저축조합을 함께 운영했습니다. 원불교는 이 해를 '원기 원년'으로 정하고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1920

[신흥마을 공동체 확장]

영광군 묘랑면 신흥마을에 수신조합을 세워 초기 공동체를 확장했습니다.

이 조합은 상조조합 역할도 겸하며 경제적 기반을 다졌고, 야학 등 교육 사업을 통해 마을 주민들과의 유대를 강화했습니다.

영광군 묘랑면 신흥마을에 수신조합을 세워 공동체를 확장했습니다. 신흥의 수신조합은 상조조합을 겸하여 경제적으로도 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또한 야학 등의 교육사업으로 마을 주민들과 인연을 맺고, '문맹 없는 마을'을 만드는 데 기여했습니다.

1924

[익산 총부 설립]

박중빈 대종사가 전국적인 교세 확장을 위해 익산에 총부를 설립했습니다.

이곳에서 불법연구회를 공식 결성하고, 기초 확립, 교법 재정, 포교와 확장으로 이루어진 3단계 교단 발전 방향을 기획하며 교단의 기틀을 확고히 했습니다.

박중빈 대종사는 영광을 벗어나 전국적인 종교로 확장하기 위해 전주를 비롯한 여러 곳을 총부의 후보지로 물색하다가 익산에 총부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1924년, 그는 각 단계가 12년으로 이루어진 3단계 교단 발전 방향(기초 확립, 교법 재정, 포교와 확장)을 기획하고 익산에서 불법연구회를 공식 결성했습니다. 불법연구회는 생산과 경제, 종교적 실천을 공유하는 신앙공동체로서 '동정일여', '영육쌍전', '이사병행'의 원리를 추구했습니다.

1929

[익산 공회당 건축]

익산 성지에 원불교 공회당이 건축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훗날 원광대학교의 모태가 되는 교육 시설로서, 원불교 교단의 성장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929년 원불교 익산 성지에 공회당이 건축되었습니다. 이 공회당은 훗날 원광대학교의 모태가 되며,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목조 건물들이 밀집하여 있어 2005년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179호로 지정되어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1930

[조선총독부의 탄압 시작]

조선총독부가 불법연구회를 '유사 종교'로 분류하며 억압을 시작했습니다.

총독부의 유사종교 해산령은 전쟁 시기의 억압적 사회 통제와 맞물려 원불교가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1930년대, 조선총독부는 개화기 이후 조선에 있던 여러 종교를 공인 종교와 유사 종교로 나누어 관리했습니다. 불법연구회는 유사 종교의 하나로 지목되어 억압을 받기 시작했으며, 총독부의 유사종교 해산령은 이후 지속된 전쟁 시기의 억압적 사회 통제와 관련이 깊습니다. 일제 말기에는 원불교에 대한 탄압이 더욱 극심했습니다.

1940

[삼례 대농장 건설]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면에 대농장을 건설하며 경제 생활을 공유하는 신앙 공동체로서의 성격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이는 교단의 자립과 성장을 위한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1940년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면 수계리에 대농장을 건설하여 생산과 경제 생활을 공유하는 신앙 공동체의 성격이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교단 운영의 중요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는 동시에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기관지 《월보》 휴간]

일제강점기 말기 조선총독부의 탄압이 극심해지면서, 불법연구회는 허가를 받아 간행하던 기관지 《월보》의 발행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이는 원불교가 겪었던 고난의 시기를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1930년대까지는 불법연구회가 총독부의 허가를 받아 《월보》 등을 간행할 수 있었으나, 1940년대에 이르러 일제 말기 조선총독부의 원불교 탄압이 더욱 극심해지면서 결국 《월보》의 발행을 휴간하게 되었습니다.

1943

[소태산 대종사 열반]

원불교의 창시자인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열반에 들었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송규 대종사가 2대 종법사로 취임하며 교단의 리더십을 이어받아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1943년 원불교의 교조인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열반에 들었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송규 대종사가 2대 종법사로 취임하며 교단의 운영과 발전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원불교 역사에 있어 중요한 리더십 교체의 순간이었습니다.

1945

[교단 명칭 '원불교'로 개칭]

해방 이후 2대 종법사 송규 대종사의 주도로 교단의 이름이 '불법연구회'에서 '원불교'로 정식 개칭되고, 교리 또한 대대적으로 정비되었습니다.

이는 원불교의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해방 이후 2대 종법사 송규 대종사는 교단의 이름을 원불교로 개칭하고 교리를 정비했습니다. 1948년에는 종교단체로 법인 설립 허가를 받았고, 전국적으로 교세를 확장하며 현대 원불교의 모습을 갖춰나갔습니다. 2004년 기준 13개 교구에 503개의 교당이 있을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1948

[종교 법인 설립 허가]

원불교가 종교단체로서 법인 설립 허가를 받으며 사회적으로 공인받는 종교로서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이를 통해 교세 확장의 발판을 다졌습니다.

1948년 원불교는 종교단체로서 법인 설립 허가를 받았습니다. 이는 원불교가 제도권 안에서 안정적으로 활동하고, 전국으로 교세를 확장하는 데 중요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이후 2004년 기준 전국 13개 교구에 503개의 교당을 갖출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1962

[송규 종법사 열반]

2대 종법사 송규 대종사가 열반에 들고, 대산 김대거 대종사가 5대 종법사로 취임했습니다.

이는 원불교의 리더십이 다음 세대로 교체되는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1962년 2대 종법사 정산 송규 대종사가 열반에 들었습니다. 이어서 대산 김대거 대종사가 5대 종법사로 취임하며 교단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김대거 대종사는 3회 연임하며 1995년까지 교단을 이끌었습니다.

1967

[불교총연합회 창립 가입]

현재의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전신인 대한불교총연합회가 출범할 당시, 원불교가 창립 회원으로 가입하며 불교계와의 교류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불교를 근원으로 표방하는 원불교의 대외적 관계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1967년 5월, 현재 한국불교종단협의회의 전신인 대한불교총연합회가 출범할 당시 원불교가 창립회원으로 가입하며 불교계와 교류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1970년 불교재산관리법에 대한 의견 차이로 탈퇴하게 되었고, 이후 2004년 재가입 논의가 있었으나 2020년까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1970

[불교총연합회 탈퇴]

불교재산관리법에 대한 입장 차이로 대한불교총연합회에서 탈퇴했습니다.

이는 원불교가 기존 불교계와는 독립적인 교단 운영의 길을 걷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1970년, 원불교는 불교재산관리법에 대한 의견 차이로 대한불교총연합회에서 탈퇴했습니다. 이후 2004년 대한불교종단협의회 재가입 논의가 있었으나, 2020년까지 재가입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1977

[원불교전서 초판 발행]

원불교의 경전과 교헌 등을 집대성한 《원불교전서》의 초판이 발행되었습니다.

이는 원불교 교리의 체계화와 대중 보급에 큰 의미가 있는 중요한 발자취였습니다.

1977년 원불교의 경전과 교헌 등을 집대성한 《원불교전서》의 초판이 발행되었습니다. 이 전서에는 《교전》, 《불조요경》, 《예전》 등 원불교의 주요 경전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44년 만인 2021년 개정·증보판이 나왔으나, 여러 오류로 인해 회수되는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1995

[김대거 종법사 열반]

3회 연임하며 오랫동안 교단을 이끌었던 대산 김대거 종법사가 열반에 들었습니다.

이후 좌산 이광정 대종사가 11대 종법사로 취임하며 새로운 리더십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1995년, 5대부터 10대까지 원불교를 이끌었던 대산 김대거 종법사가 열반에 들었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좌산 이광정 대종사가 11대 종법사로 취임하여 교단의 새로운 발전을 모색하게 되었습니다. 이광정 종법사는 2회 연임하여 2006년까지 재임했습니다.

1999

[종단협 재가입 논의 시작]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재가입을 둘러싸고 원불교 교단 내에서 정체성 논란과 함께 활발한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논의는 2020년까지도 이어졌습니다.

1999년부터 원불교의 대한불교종단협의회 재가입에 대한 논의가 교단 내외부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원불교의 불교계 내 정체성 및 대외적 관계 설정에 대한 중요한 이슈로 부상했으며, 2004년에도 관련 논의가 있었으나 2020년까지 재가입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2005

[익산 성지 문화재 지정]

원불교 익산 성지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목조 건물들이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17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는 원불교 역사의 중요성을 대외적으로 공인받은 의미 있는 사건입니다.

원불교 익산 성지는 1924년 원불교 총부가 세워진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필요한 건물을 세워 하나의 마을을 이루었습니다. 1924년 불법연구회의 간판이 걸린 본원실을 비롯하여 1929년 세워진 공회당 등 일제강점기의 목조 건물들이 밀집해 있어, 2005년 대한민국의 등록문화재 제179호로 지정되어 그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2006

[이광정 종법사 열반]

11대 종법사 좌산 이광정 대종사가 열반에 들었습니다.

이후 경산 장응철 대종사가 13대 종법사로 취임하며 원불교는 새로운 리더십과 함께 교단의 발전을 이어갔습니다.

2006년, 11대와 12대 종법사를 역임했던 좌산 이광정 대종사가 열반에 들었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경산 장응철 대종사가 13대 종법사로 취임하며 2018년까지 교단을 이끌었습니다. 이는 교단의 지속적인 리더십 교체를 통한 성장을 보여줍니다.

2011

[미주 원다르마센터 설립]

미국에 미주총부법인 원다르마센터(Wondharma center)가 신설되었습니다.

이는 원불교의 글로벌 포교 활동을 위한 중요한 전진 기지가 마련된 것으로, 세계화를 향한 원불교의 의지를 보여줍니다.

2011년 10월 2일, 미주총부법인 원다르마센터(Wondharma center)가 미국에 신설되었습니다. 이는 원불교가 창교 100년을 앞두고 세계화 시대를 맞아 해외 포교를 가속화하기 위한 전진 기지를 마련한 것으로, 원불교의 국제적 확장을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2015

[여성 교무 결혼 허용 논의]

개교 100주년을 앞두고 여성 교역자(교무)의 결혼 허용을 위한 교헌 개정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오랫동안 유지해온 여성 교무의 독신 관례에 대한 교단의 진지한 고민과 변화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2015년 2월 11일, 개교 100주년을 앞두고 '여성 교무 결혼 허용'에 대한 교헌 개정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초기에는 한국 사회 문화의 영향으로 여성이 결혼하면 자유로운 활동이 힘들다 판단하여 여성 교무들은 독신 생활을 하도록 했었습니다. 이 중요한 논의는 이후 여성 교무의 결혼 허용으로 이어지며 교단의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2016

[개교 100주년 대기념]

원불교가 창교 100주년을 맞이하며 대규모 기념사업을 추진했습니다.

원불교 대사전 발간, 문화예술단체 육성, 출판 및 영상물 제작 보급, 앱 개발, 익산 및 영산성지 장엄사업 등 다채로운 사업을 통해 지난 1세기를 기념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뜻깊은 해였습니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종교의 성장과 발전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이정표입니다!.

2016년, 원불교는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대회를 개최하고 다양한 기념성업을 추진했습니다. 원불교 대사전 발간, 문화예술단체 육성, 출판 및 영상물 제작 보급, 원불교 앱 개발, 익산성지 및 영산성지 장엄사업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처럼 대규모로 진행된 100주년 기념사업은 원불교의 역사적 의미와 미래 비전을 대내외에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2018

[장응철 종법사 열반]

13대 종법사 경산 장응철 대종사가 열반에 들었습니다.

이는 교단의 리더십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2018년, 13대와 14대 종법사를 역임했던 경산 장응철 대종사가 열반에 들었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2019년 전산 김주원 대종사가 15대 종법사로 취임하며 원불교는 리더십의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2019

[김주원 종법사 취임]

전산 김주원 대종사가 15대 종법사로 취임하며 원불교의 새로운 시대를 이끌게 되었습니다.

교단의 최고 수장으로서 미래 발전을 위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2019년, 전산 김주원 대종사가 15대 종법사로 취임하여 현재까지 원불교를 이끌고 있습니다. 종법사는 원불교를 대표하는 수장으로, 교화 조직과 행정 조직을 총괄하며 교단의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수위단회에서 임기 6년으로 선출됩니다.

[여성 교무 결혼 허용]

원불교가 개교 104년 만에 여성 교역자(교무)의 결혼을 공식적으로 허용했습니다! 이는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독신 관례에 대한 파격적인 변화이자, 성 평등을 향한 교단의 진취적인 발걸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결정입니다.

2019년 8월 12일, 원불교가 개교 104년 만에 여성 교역자(교무)의 결혼을 공식적으로 허용했습니다. 초기에는 결혼에 남녀구분이 없었으나, 당시 한국 사회 문화의 영향으로 여성이 결혼을 하면 자유로운 활동이 힘들어 여성 교무들은 협의를 통해 독신 생활을 해왔었습니다. 이 중요한 교헌 개정은 현대 사회의 가치와 교단의 미래를 위한 진취적인 변화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021

[원불교전서 오류 회수]

원불교전서 개정·증보판이 발간되었으나, 여러 내용 및 편집 오류가 발견되어 결국 회수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교정원장이 사과하고 책임자들이 사의를 표하는 등 큰 홍역을 치렀습니다.

1977년 초판 발행 이후 44년 만인 2021년, 원불교전서 개정·증보판이 발간되어 전국 교당과 기관에 배포되었습니다. 그러나 배포 후 '(전서 중) 목우십도송 글과 그림 4장이 바뀐 상태였으나 발견하지 못하고 승인했고, 수많은 오·탈자 등 편집 오류가 발생했는데, (이후) 최종 수위단회의에서 방기하는 총체적 문제점이 드러났다'는 내용의 성명서가 나오며 논란이 일었습니다. 결국 교단 교화훈련부는 전서 회수를 공지했고, 오도철 교정원장이 사과문을 발표하며 발간 책임자들이 사의를 표하는 등 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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