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동산

사이비 종교, 공동체, 사회 문제,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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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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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종교, 공동체, 사회 문제,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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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김기순이 설립한 공동체형 협동농장 표방 단체입니다. 일부 종교계와 언론에서는 사이비 종교로 분류합니다. 1996년 아가동산 사건으로 조직원 폭행 노동착취 살해 등 충격적 실상이 드러나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재판에서 살인 혐의는 무죄를 받았으나 조세포탈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2023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로 재조명되며 실소유 회사인 신나라레코드 불매운동이 촉발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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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

['삭발교'의 탄생]

1940년생 이교부가 전북 이리시 주현동에 독립교회인 주현교회를 세웠습니다.

그가 삭발한 채 검은 옷을 입고 다녔고 일부 신도들도 삭발을 하여 '삭발교'라 불리며 기이한 종교적 특성을 보였습니다.

이 사건은 훗날 아가동산의 기원이 됩니다.

이교부는 김현봉 목사의 검소한 생활과 금욕주의에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며 신도들의 감동을 이끌어내 한때 주일예배 참석자가 1,500명이 넘기도 했습니다.

1975

[김기순, 삭발교 입교]

평범한 주부이자 기독교인이었던 김기순이 '삭발교'라 불리던 이교부의 주현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는 훗날 아가동산 설립의 중요한 발판이 됩니다.

그녀는 이교부의 충실한 추종자였습니다.

1978

[이교부 '나체댄스' 물의]

금욕적인 생활을 설파하며 신도들을 끌어모았던 이교부의 실체가 '나체댄스사건'으로 드러나 큰 물의를 빚었습니다.

그는 신자들과 함께 옷을 입지 않은 채 나체춤을 추며 예배를 봤으며, 이 과정에 김기순도 동참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이교부는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됩니다.

이 사건에 항의하는 교계 관계자들에게 이교부는 신도들을 동원해 폭력을 행사하고 강제로 삭발까지 시켰습니다.

1981

[김기순, 삭발교 이탈]

이교부 수감 중 조직 관리에 핵심 역할을 하던 김기순은 출감한 이교부와 갈등을 겪다 결국 조직을 떠났습니다.

이교부가 김기순에게 "너는 뱀이다"라며 교회에서 나갈 것을 요구한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1982

[아가동산 독립의 서막]

삭발교를 이탈한 김기순은 약 300여 명의 추종자들과 함께 서울 목동에 2층 건물을 임대해 독자적인 집회를 열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떡, 어묵 장사와 음반 판매 등으로 자금을 마련하며 새로운 공동체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이천 '아가농장' 건립]

김기순은 공해 없는 삶을 내세우며 삭발교 이탈자들과 함께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에 13,200여 평방미터(약 4천 평) 토지를 매입했습니다.

이곳에 '아가농장'을 설립하며 폐쇄적인 공동체 생활의 거점을 마련했습니다.

[신나라레코드 탄생]

김기순은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에 레코드 유통 전문 업체인 '신나라레코드'를 설립했습니다.

이는 아가동산의 주요 자금원 중 하나로, 가요 테이프와 음반 판매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며 단체의 경제적 기반을 강화했습니다.

이 회사는 훗날 아가동산 사건이 재조명될 때 불매운동의 대상이 됩니다.

1985

['신나라' 시대의 개막]

김기순은 이천의 아가농장을 "신나라"로 선포했습니다.

이는 그녀가 자신만의 독특한 교리를 펼치기 시작하며 단체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한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그녀는 스스로를 "아가야"라고 부르도록 했습니다.

1987

[7세 아동 살해 사건]

김기순의 지시로 7세 아동 최낙원 군이 돼지우리에서 일주일 동안 굶고 폭행당해 사망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훗날 '아가동산 사건'의 핵심 범죄 중 하나로 밝혀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1988

[윤모씨 살해 사건]

아가동산 과수원 관리책임자이던 윤모 씨가 김기순의 지시로 살해당했습니다.

이 역시 '아가동산 사건'의 핵심 범죄 중 하나로, 폐쇄적인 공동체 내부에서 벌어진 잔혹한 실상을 보여줍니다.

[21세 강모씨 살해]

21세 여성 강모 씨가 창고로 끌려간 후 각목에 맞아 타살당했습니다.

이 사건 또한 김기순의 지시로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수년간 은폐되다가 훗날 '아가동산 사건'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습니다.

1989

[김기순, 교주 등극]

김기순이 스스로 교주가 되어 종교적 성격을 가진 "아가동산"을 창립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농장 형태의 공동체를 넘어, 그녀를 중심으로 한 독자적인 교리를 갖춘 집단으로 변모했음을 의미합니다.

1992

[재산 확장 가속화]

아가동산은 신나라레코드 수익을 바탕으로 킹레코드와 하나레코드(대전)를 설립하며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신도들의 무상 노동력을 착취해 저렴한 가격으로 경쟁력을 확보, 막대한 재산을 축적하며 세력을 불려나갔습니다.

1993

[정부 지원금 편취]

아가동산은 종교적 성격을 숨긴 채 농업시범단지를 운영한다고 위장하여 정부와 경기도로부터 23억 5천만 원을 지원받았습니다.

이와 함께 명반레코드(인천)와 신나라 레코드백화점 등을 설립하며 사업을 더욱 확장했습니다.

1996

['아가동산 사건' 발발]

아가동산 이탈자들이 김기순의 지시로 신도 3명이 살해당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은 탄원서를 제출하며 검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폐쇄적 단체 내부의 엽기적인 실상이 세상에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그동안 유족들의 비협조, 부실한 사체 검안, 경찰의 안일한 대처 등으로 수년간 은폐되어 왔습니다. 관련자들은 곧바로 구속되었습니다.

1997

[김기순 사형 구형]

검찰은 '아가동산 사건'의 주범인 김기순에게 살인교사 등 혐의로 사형을 구형하며 단체의 잔혹한 실상에 대한 엄중한 처벌 의지를 보였습니다.

[살인 '무죄' 충격 판결]

대법원 선고 공판에서 김기순은 조직원 살해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받고, 조세 포탈과 횡령, 폭행 등 6가지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가 인정되어 징역 4년과 벌금 56억 원을 선고받았습니다.

이는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김기순 보석 석방]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던 김기순이 보석으로 석방되었습니다.

이는 '아가동산 사건'이 사회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법적 처벌이 예상보다 약했다는 비판을 받게 된 계기 중 하나입니다.

2001

[암매장 발굴·방송금지]

사건 발생 5년 후, 일부 신도들이 1988년 실종된 강모 씨의 암매장 장소를 지목하며 경찰이 발굴 작업에 나섰습니다.

관련 내용을 다루려던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법원의 가처분 신청 인용으로 방송되지 못하며 의혹을 증폭시켰습니다.

2002

[강모씨 시신 재발굴]

유가족의 요청으로 2002년 4월, 암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강모 씨 시신에 대한 발굴 작업이 재개되었으나, 끝내 시신을 찾지 못하고 작업이 종료되었습니다.

이는 사건의 미스터리를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2023

[신나라레코드 불매운동]

넷플릭스 다큐 방영 이후, 김기순이 신나라레코드의 실소유자이자 아가동산의 주요 자금원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중들 사이에서 불매운동이 확산되었습니다.

이는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웠습니다.

['나는 신이다' 방영]

잊혀져가던 '아가동산 사건'이 넷플릭스 8부작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의 5, 6부에서 다뤄지며 20여 년 만에 다시금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는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방송금지 가처분 기각]

넷플릭스 다큐 방영 후 아가동산 측이 제기한 방송금지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기각되었습니다.

이는 '나는 신이다'의 내용에 대한 법적 정당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24

[손배소송 1심 패소]

아가동산 측이 MBC, 조성현 PD 및 넷플릭스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1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는 다큐멘터리 내용의 사실성이 법적으로 인정된 중요한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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