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기
목회자, 종교인, 교회 설립자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8:56
세계 최대 규모의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설립하고 50여 년간 이끌어 온 한국 기독교의 거목. 4차원 영성이라는 독자적인 신학을 정립하며 교세 확장에 기여했으며 국제교회성장연구원 설립 국민일보 창간 등 다방면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북한에 심장병원을 건립하는 등 인도적 지원에도 앞장섰던 인물이다.
1936
[한 생명의 시작]
경상남도 울산군 삼남면 교동리에서 5남 4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함을 보였으나, 훗날 그의 삶을 바꿀 고난을 겪게 된다.
아버지 조두천과 어머니 김복선 사이에서 태어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밝게 자랐다.
1953
[삶과 죽음의 기로]
부산공업고등학교 2학년, 17세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사경을 헤매며 죽음을 직면했다.
이 시기를 통해 그는 깊은 신앙을 경험하며 목회자의 길을 결심하게 된다.
병마와의 싸움 속에서 그는 절망 끝에 희망을 찾고, 영적인 부르심을 강력히 느끼게 되었다.
1956
[신학의 첫걸음]
서울 순복음 신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하여 본격적인 신학 공부를 시작했다.
이곳에서 훗날 그의 목회 동반자이자 장모가 될 최자실 전도사를 만난다.
수석 입학은 그의 학문적 열정과 능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의 미래 사역에 큰 영향을 미칠 인연을 맺는 시기이기도 하다.
1958
[세계 최대 교회의 시작]
신학교를 졸업한 후, 최자실 전도사와 함께 서울 은평구 대조동 천막촌에서 단 세 명의 성도와 함께 '대조동순복음교회'라는 작은 천막 교회를 시작했다.
이것이 훗날 세계 최대 교회가 될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시초이다.
천막 교회는 그들의 열정과 비전이 담긴 첫걸음이었다. 당시 불과 몇 명의 신도로 시작했지만, 이는 기적 같은 성장의 씨앗이 되었다.
1960
[정식 목사 안수 및 확장]
전도사에서 목사 안수를 받으며 정식 목회자가 되었다.
같은 해, 교세 확장에 힘입어 '순복음중앙부흥회관'을 준공하고 헌당 예배를 드렸다.
목사 안수는 그의 영적 권위를 공식화했고, 새로운 회관 준공은 교회의 성장세를 증명했다.
1965
[평생의 동반자]
최자실 목사의 딸인 김성혜 사모와 결혼하여 슬하에 3남을 두었다.
김성혜 사모는 이후 한세대학교 총장 등을 역임하며 그의 목회에 큰 힘이 되었다.
개인적인 삶의 중요한 전환점이었으며, 그의 사역에 든든한 지원군을 얻게 된 계기가 되었다.
1966
[교단 총회장 취임]
한국 오순절 교단의 중심인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총회장에 취임하여 1978년까지 교단 운영의 주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총회장으로서 그의 리더십은 한국 오순절 운동의 성장에 기여했으며, 그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2005
[뉴욕, '조용기 목사의 날' 선포]
미국 뉴욕시가 그의 뉴욕 성회를 기념하여 '조용기 목사의 날'을 공식 제정했다.
이는 그의 국제적인 위상과 영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세계 문화와 경제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그의 이름을 딴 날이 제정된 것은 그의 선교 활동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2006
[목회 활동 연장]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로서 정년을 맞았으나, 99.7%라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성도들이 그의 계속적인 목회를 요청하자 은퇴 의사를 번복하고 목회 활동을 이어갔다.
정년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의 뜨거운 지지 속에 그의 리더십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보여주는 일화이다. 그는 이후로도 교회를 이끄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2007
[평양 조용기심장병원 착공]
북한 조선그리스도교연맹과 계약을 맺고 평양에 '조용기심장병원' 착공식을 가졌다.
평소 반공을 지론으로 삼던 그가 대북 인도적 지원에 나선 것은 큰 화제가 되었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남북 관계 개선에 기여하려는 그의 노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 병원은 오랜 난항 끝에 훗날 완공된다.
2008
[담임목사직 은퇴]
세계 최대 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로서 50여 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원로목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후임으로 이영훈 목사가 취임했다.
반세기 넘게 이끌어온 교회 담임목사직에서 물러나면서 한국 교계에 새로운 리더십 시대가 열렸음을 알렸다. 이후 원로목사로서도 영향력을 유지했다.
2021
[평양심장병원 완공]
오랜 시간 추진해 온 평양 '조용기심장병원'이 북한에서 마침내 완공되었다.
이는 남북 간의 인도적 협력의 상징으로 기록되었다.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그의 헌신적인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으로, 북한의 심장병 환자들에게 희망을 선사하게 되었다.
[세기의 목회자, 소천]
1년여간 뇌출혈로 투병하던 중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6세.
그의 별세는 한국 기독교는 물론 전 세계 기독교계에 큰 슬픔을 안겨주었다.
그의 죽음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위대한 목회자의 마지막을 알렸으며, 그의 업적과 신앙적 유산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