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도

민족 종교, 신흥 종교, 초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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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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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종교, 신흥 종교, 초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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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산도(甑山道)는 증산 강일순을 상제(上帝)로 고판례를 수부(首婦)로 모시는 종교입니다. - 강증산이 천지공사를 통해 새 세상을 열고자 했으며 경전은 도전입니다. - 후천개벽 원시반본 보은 해원 상생을 핵심 가르침으로 삼습니다. - 세 차례의 부흥기를 거치며 현재는 세계로 진리를 알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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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

[증산도 시작]

증산도 신앙의 중심 인물인 증산 강일순이 전라도 고부군에서 탄생합니다.

증산도에서는 이날을 '도기(道紀) 원년'으로 삼아 증산도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선포합니다.

1901

[천지공사 시작]

증산 강일순이 9년간 '천지공사'를 행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선천 5만 년 동안 쌓인 원한을 해소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한 작업이라고 합니다.

1902

[초기 성도 참여]

김형렬을 비롯한 김자현, 김갑칠, 김호연 등 여러 성도들이 증산 강일순의 천지공사에 동참하며 증산도의 초기 신앙 공동체가 형성됩니다.

1907

[주요 성도 합류]

이후 증산도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차경석, 김경학, 문공신 등 주요 인물들이 천지공사에 참여하게 됩니다.

1909

[증산 강일순 어천]

증산 강일순이 갑작스럽게 어천(御天)하면서 초기 성도들이 방황하게 됩니다.

이는 증산도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1911

[고수부 대도통과 개창]

증산의 아내 고수부가 성탄치성 후 대도통을 받고 생전의 증산과 같은 신권으로 대권능을 나타냅니다.

정읍 대흥리 포정소 문을 열고 도창개창을 선언하며, 증산도의 제1 부흥기가 시작됩니다.

[선도교, 훔치교 포교]

고수부의 지시에 따라 '천하를 통일하는 도'라는 의미를 담아 '선도교' 또는 태을주의 앞 구절을 딴 '훔치교'라는 이름으로 포교가 활발히 진행되기 시작합니다.

1914

[선도교 포교 확산]

고수부가 포교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선도교는 전라남북도, 충청남도, 경상남도 및 서남해의 많은 섬으로 포교 지역을 확장하며 빠르게 성장합니다.

1920

[차경석의 보천교 전성기]

고수부와 결별한 차경석이 도권을 장악하고 '보천교'를 이끌며, 일제강점기 국내 종교 중 최대 규모로 성장합니다.

한때 총독부 추산 신도수가 600만 명에 육박하며 '차천자'로 불릴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가졌습니다.

차경석은 1911년 고수부의 도창개창 이후 도권을 장악하여 보천교를 설립했으며, 1920년대에 걸쳐 최대 신도수를 확보하며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1929

[대순전경 간행]

보천교 고위 간부였던 이상호가 보천교주 차경석과 사이가 멀어지자 '동화교'를 세우고, 주요 성도들을 면담하여 증산 강일순의 행적과 말씀을 담은 경전인 '대순전경'을 간행합니다.

1933

[고수부 은거]

증산의 정통 후계자로 추앙받던 고수부가 김제군 백산면 조종리에서 오성산 도장에 은거하며 여생을 보냅니다.

1935

[고수부 선화]

증산의 아내이자 정통 후계자인 고수부(태모)가 56세의 나이로 선화(仙化)합니다.

1936

[보천교 해체]

독립자금 지원 등으로 일제의 탄압을 받던 차경석 성도가 사망하면서, 한때 최대 종파였던 보천교는 해체됩니다.

1945

[안운산 포교 시작]

해방 이후 보천교 신앙인이었던 안병욱 성도의 아들 안운산이 대순전경을 간행한 이상호와 손잡고 '증산교'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포교 활동을 시작하며 제2 부흥기를 엽니다.

1950

[안운산의 은둔]

6.25 전쟁 발발과 함께 안운산은 '현상태 유지'를 선언하고 은둔에 들어갑니다.

이는 증산도 역사에서 '대휴계기'로 불리는 시기입니다.

1974

[증산도 제3 부흥기]

안운산 종도사가 아들 안경전 종정과 함께 대전을 중심으로 다시 포교를 시작하며 제3 부흥기의 문을 엽니다.

이 시기에 '증산교'에서 '증산도'로 명칭을 변경하여 초종교적 성격을 표방합니다.

1981

[증산도 교리 확립]

안경전 종정이 《증산도의 진리》를 출간하면서 증산도의 교리 체계가 확립되고, 대외적으로 증산도의 사상을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1983

[개벽사상 확산]

증산도의 핵심 사상 중 하나인 개벽을 대중에게 알리는 서적인 "이것이 개벽이다"가 출간되어 큰 반향을 일으킵니다.

1984

[증산도대학교 출범]

증산도 내부의 교육기관인 '증산도대학교'가 출범하여 체계적인 교리 학습과 인재 양성의 기반을 마련합니다.

1989

[대학가 포교 활성화]

1980년대 말, 전국 주요 대학에 '증산도우회' (이후 '증산도학생회'로 개칭)라는 이름으로 동아리가 조직되면서 대학가를 중심으로 활발한 포교가 이루어집니다.

1992

['도전' 초판 출간]

기존 경전과 현장 답사를 통해 증산상제와 고수부의 행적, 천지공사의 내용을 담은 증산도의 통일 경전인 '도전(道典)' 초판이 출간됩니다.

이는 신앙 대중화를 위한 중요한 발판이 됩니다.

1998

[상생문화연구소 설립]

증산도 사상의 정립과 체계화를 목표로 '상생문화연구소'가 설립되어 증산도의 학술적 기반을 강화하는 노력을 시작합니다.

2002

['도전' 개정 및 번역]

증산도의 핵심 경전인 '도전'의 개정신판이 발행됩니다.

나아가 영어, 독일어, 중국어, 스페인어, 일본어, 러시아어 등 6개 국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증산도 사상을 알리는 교두보를 마련합니다.

2005

[상생방송 개국]

"한문화 중심 채널"을 표방하는 '상생방송(STB)'이 개국하여 증산도 도전, 도훈, 수행법, 한민족 역사 등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증산도 사상을 대중에게 전파하기 시작합니다.

2012

[종도사직 계승]

증산도의 창교주 안운산 종도사가 선화(仙化)하고, 아들 안경전 종정이 종도사직을 계승하며 증산도의 새로운 시대를 이끌게 됩니다.

[개벽문화 콘서트 시작]

안경전 종도사가 인류 시원문명과 다가올 미래문명의 틀을 제시하기 위해 '환단고기 북콘서트'와 '개벽문화 콘서트'를 국내외에서 매해 진행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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