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빈당
의적, 대한제국, 시민단체, 사회운동, 무장조직, 반일운동
최근 수정 시각 : 2026-01-26- 12:04:37
활빈당은 시대를 가로질러 부조리에 저항해 온 상징적인 조직입니다. 구한말, 동학 농민 혁명의 정신을 계승하여 부패한 탐관오리를 징벌하고 빈민을 구제했던 무장 조직에서 시작하여, 현대에 이르러서는 1인 시위와 강렬한 퍼포먼스를 통해 사회 비판과 애국 운동을 전개하는 시민 단체로 그 이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들의 역사는 단순한 저항을 넘어, 민중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표출하고 시대의 모순에 정면으로 맞서온 한국 사회의 독특한 투쟁 양식을 보여줍니다.
1894
[동학 농민 혁명의 유산]
동학 농민 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후 흩어진 농민군과 민중들이 새로운 저항의 불씨를 지핍니다. 이들은 기존의 조직을 재정비하며 활빈당의 사상적 기반을 마련합니다.
동학 농민 운동의 좌절 이후 살아남은 잔존 세력들은 산악 지대로 숨어들어 유격 전술을 익혔습니다.
이들은 '가난한 이들을 살린다'는 활빈(活貧)의 정신을 공유하며 점차 체계적인 조직으로 발전했습니다.
부패한 봉건 사회에 대한 불만이 임계점에 도달하면서 민중들은 스스로 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1899
[활빈당의 공식 등장]
충청도와 경상도 접경 지대에서 활빈당이라는 이름을 내건 무장 집단이 처음으로 역사에 등장합니다. 이들은 탐관오리의 재물을 빼앗아 빈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의적 활동을 전개합니다.
1899년경부터 본격적으로 '활빈당'이라는 명칭이 조정의 기록과 민간의 소문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 이들은 주로 충청도 북부와 경상도 지역의 부유한 지주들을 공격하여 군자금을 확보했습니다.
정부 군대와 대치하면서도 백성들의 지지를 받아 세력을 급격히 확장해 나갔습니다.
1900
[금광 습격과 부의 재분배]
경상도 일대의 금광을 습격하여 막대한 자금을 확보하고 이를 가난한 농민들에게 배분합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활빈당은 단순한 도적 떼가 아닌 의적으로 추앙받게 됩니다.
외세의 이권 침탈로 운영되던 금광들을 타격함으로써 국부 유출에 대한 항거의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
탈취한 재물은 고스란히 굶주린 백성들에게 돌아갔으며, 이는 활빈당에 가입하려는 청년들을 폭발적으로 늘렸습니다.
조정에서는 이들을 소탕하기 위해 별동대를 파견했으나 민중의 비호 아래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전라도 세력 확장]
활동 범위를 전라도 지역까지 넓히며 호남의 지주들을 압박하고 민중의 봉기를 독려합니다. 지역의 토착 세력과 결합하여 조직의 규모는 전국적으로 확대됩니다.
전라도는 과거 동학의 성지였던 만큼 활빈당의 활동에 매우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악랄한 고리대금업자들을 징벌하고 채무 증서를 불태우는 등 민중의 직접적인 한을 풀어주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획득한 군량미를 마을마다 나누어 주며 실질적인 활빈을 실천했습니다.
[대한객민의소 13조목 발표]
국가 개혁의 의지를 담은 13가지 강령을 선포하며 정치적 역량을 드러냅니다. 이는 활빈당이 단순한 무장 단체를 넘어 국가의 미래를 고민하는 조직임을 상징합니다.
주요 내용으로는 곡물의 국외 수출 금지, 악질 세금 폐지, 시장의 이권 보호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일본의 경제적 침탈에 반대하는 내용을 명시하여 항일 운동의 성격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이 강령은 당시 민중들이 원하던 사회 개혁의 방향을 정확히 짚어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1901
[전국적 연대 네트워크 구축]
각지에 흩어져 있던 소규모 저항 집단들을 통합하여 거대한 조직망을 형성합니다. 이를 통해 조정의 대대적인 소탕 작전에 유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됩니다.
충청, 경상, 전라를 잇는 삼남 지방 전역이 활빈당의 영향권 아래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산간 요새를 중심으로 점 조직 형태로 운영되어 관군의 추적을 교묘히 피했습니다.
정보 전달 체계가 매우 빨라 관군이 출동하기도 전에 이미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기동력을 보여주었습니다.
1902
[황해도 산포수와의 결탁]
북부 지역의 숙련된 사격 실력을 갖춘 산포수들과 연대하여 무장력을 한층 강화합니다. 이들의 합류로 활빈당의 화력은 정규군에 필적할 수준으로 올라섭니다.
지형에 익숙하고 사격에 능한 산포수들의 합류는 활빈당의 전투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켰습니다.
이들은 주로 신식 소총으로 무장하여 일본의 경제적 침투를 돕는 기관들을 공격했습니다.
북부와 남부의 저항 세력이 결합하면서 활빈당은 전국구적인 저항 조직으로 완성되었습니다.
1903
[반외세·반일 투쟁의 심화]
일본 상인들의 시장 침탈과 철도 부지 강매 등에 강력히 저항하며 민족주의적 색채를 짙게 띱니다. 백성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일제와 정면으로 충돌하기 시작합니다.
일본이 경부선 철도 부설권을 이용해 땅을 강탈하는 행위에 맞서 철도 공사 현장을 습격했습니다.
일본 상인들이 조선의 쌀을 헐값에 대량으로 사들여 반출하는 것을 무력으로 저지했습니다.
이들의 활동은 단순한 민생 문제를 넘어 국권 수호 운동으로 그 성격이 격상되었습니다.
1904
[의병 운동으로의 통합]
러일 전쟁이 발발하고 국권 침탈이 가속화되자 활빈당 세력은 대대적으로 의병 부대에 합류합니다. 조직의 형태는 변했지만, 그 저항 정신은 항일 의병으로 계승됩니다.
전국의 활빈당 지도부들은 각지의 의병장들과 손을 잡고 조직적인 항일 전쟁을 전개했습니다.
풍부한 실전 경험과 유격 전술을 보유한 활빈당원들은 의병 부대의 핵심 전력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구한말 활빈당의 독자적인 활동은 막을 내리나 그 불꽃은 더 큰 독립 운동으로 번져갔습니다.
1998
[현대 활빈당의 재탄생]
홍정식 대표에 의해 사회 정의 구현과 애국 실천을 목표로 하는 시민 단체로 새롭게 출범합니다. 구한말 활빈당의 정신을 계승하여 부패한 권력을 감시하는 활동을 시작합니다.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고위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고발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설립자 홍정식은 과거 활빈당의 상징성을 현대적인 시민 운동에 접목시키고자 했습니다.
이때부터 특유의 현수막 시위와 강한 어조의 성명서 발표가 이들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1999
[방한 일본 총리 항의 시위]
일본 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과거사 반성과 독도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강력한 시위를 벌입니다. 이를 통해 현대 활빈당의 항일 사회 운동 노선이 확고히 정립됩니다.
공항과 도심 곳곳에서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전개했습니다.
일본의 우경화 경향에 대해 경고하며 전국적인 반일 정서를 환기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이후 일본 관련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가장 먼저 행동에 나서는 단체로 각인되었습니다.
2000
[공직 부패와의 전쟁 선포]
뇌물 수수 및 비리 혐의가 있는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직접적인 고발 행위를 전개합니다. 사회 전반의 청렴도를 높이기 위한 감시자 역할을 자처합니다.
비리 정치인의 사무실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거나 검찰청에 고발장을 접수하는 활동을 반복했습니다.
현대판 '암행어사'를 자임하며 권력의 횡포에 고통받는 서민들의 제보를 적극적으로 수용했습니다.
이들의 활동은 언론을 통해 보도되며 공직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2001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규탄]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시도에 반대하며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 격렬한 시위를 이어갑니다. 미래 세대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는 가치를 강조합니다.
왜곡된 내용이 담긴 교과서 모형을 불태우거나 항의문을 전달하는 등 강도 높은 퍼포먼스를 보였습니다.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가 한일 관계의 근간을 흔들고 있음을 국제 사회에 알리고자 노력했습니다.
전국의 다른 시민 단체들과 연대하여 대규모 규탄 대회를 조직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2002
[양주 미선·효순 사건 항의]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 사건에 대해 불평등한 SOFA 개정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입니다. 자주국방과 주권 수호의 목소리를 높이며 거리로 나섭니다.
미군 부대 앞과 광화문 등지에서 사건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강력히 촉구했습니다.
한미 관계의 수평적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치며 많은 시민의 공감을 이끌어냈습니다.
이 시기 활빈당은 민족 자존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는 행보를 뚜렷이 했습니다.
2003
[대북 지원 투명성 요구]
정부의 대북 지원이 북한 주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돌아가는지 감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무조건적인 지원보다는 원칙 있는 대북 정책을 촉구합니다.
북한 정권에 대한 비판과 동시에 억류된 국군 포로 및 납북자들의 송환을 요구하는 활동을 병행했습니다.
국가 안보가 위태로워지는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보수적 안보관을 견지했습니다.
이로 인해 활동 범위가 인권과 안보 영역까지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4
[독도 수호 전국 순례]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에 맞서 전국을 돌며 독도 수호의 의지를 다지는 캠페인을 벌입니다.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하고 독도 주권 수호를 생활화합니다.
직접 독도를 방문하여 태극기를 휘두르는 퍼포먼스를 통해 우리 영토임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전국 각지의 주요 도시를 돌며 독도 사랑 서명 운동을 전개하여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독도 수호는 이후 현대 활빈당의 가장 핵심적이고 지속적인 활동 테마로 자리 잡았습니다.
2005
[다케시마의 날 제정 반대]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 제정에 대해 강력한 규탄 활동을 전개합니다. 일본 현지를 방문하려는 시도를 하며 전례 없는 강경한 대응을 보입니다.
주한 일본 대사관 앞에서 조례 폐기를 요구하는 철야 시위를 벌였습니다.
일본의 영토 도발이 노골화되는 것에 대해 정부 차원의 강력한 대응을 주문했습니다.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일본의 야욕을 조목조목 비판하며 국민적 분노를 대변했습니다.
2010
[천안함 피격 사태 대응]
천안함 피격 사건 발생 후 북한의 도발을 강력히 규탄하고 안보 의식 강화를 촉구합니다. 순직한 장병들을 추모하며 국가를 위한 희생을 잊지 말 것을 호소합니다.
북한 정권을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를 주도하며 확고한 안보 태세를 주문했습니다.
희생 장병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는 추모 행사를 전국적으로 전개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종북 세력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며 보수 시민 단체로서의 선명성을 강화했습니다.
2011
[위안부 소녀상 건립 지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평화의 소녀상 건립 운동에 동참합니다. 일본 정부의 진정 어린 사죄와 법적 배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지속합니다.
매주 열리는 수요집회에 참여하여 할머니들의 목소리에 힘을 보탰습니다.
일본 정부가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 주권 침해라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과거사 청산 없이는 미래 지향적인 한일 관계도 없음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2012
[서해 NLL 수호 선언]
북방한계선(NLL) 무력화 시도에 대해 영해 수호의 강력한 의지를 표명합니다. 해상 주권을 침범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서해 최전방 지역을 방문하여 국군 장병들을 격려하고 경계 태세 강화를 요청했습니다.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NLL 관련 발언들을 모니터링하며 국가 안보를 우선시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해상 주권은 곧 국가의 생존권임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2013
[아베 정권 우경화 규탄]
일본 아베 정권의 평화헌법 개정 시도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력히 비판합니다.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징후에 대해 국제적 경각심을 고취합니다.
아베 총리의 얼굴이 그려진 현수막을 이용한 시각적인 시위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일본의 재무장 시도를 중단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국내외 지식인들과 연대하여 일본의 우경화를 저지하기 위한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2014
[세월호 참사 추모 시위]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정부의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합니다.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을 질타합니다.
참사 초기부터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였으나, 점차 정쟁화되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실질적인 법안 마련과 공직 사회의 혁신을 요구했습니다.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에 대해 성찰할 것을 호소했습니다.
2015
[한일 위안부 합의 반대]
피해자들의 동의가 결여된 한일 위안부 합의는 원천 무효라고 주장하며 거리로 나섭니다. 졸속 합의를 주도한 관계자들의 사퇴를 요구합니다.
외교부 청사 앞에서 합의 폐기를 주장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였습니다.
역사를 돈으로 환산하려는 태도는 민족적 자존심을 짓밟는 행위라고 비판했습니다.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의 의견이 최우선으로 반영되어야 함을 다시금 강조했습니다.
2016
[사드 배치 찬성 퍼포먼스]
국가 안보를 위해 사드(THAAD) 배치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하며 찬성 시위를 벌입니다. 반대 세력의 논리에 맞서 자국 방어권의 정당성을 설파합니다.
북한의 핵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방어 체계로서 사드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배치 지역 주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정부의 성의 있는 소통도 함께 주문했습니다.
안보 문제는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국익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함을 천명했습니다.
2017
[자위적 핵무장론 제기]
북한의 잇따른 핵실험에 대응하여 대한민국의 자위적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내놓습니다. 한반도의 힘의 균형을 위해 강력한 억지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국회와 정부에 핵 주권 확보를 위한 공론화 과정을 거칠 것을 요구했습니다.
미국의 핵우산에만 의존하는 안보 체계의 한계를 지적하며 독자적 방어 수단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주장은 찬반 논란을 일으키며 안보 전략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2018
[평창 올림픽 남북 단일팀 비판]
평창 겨울 올림픽에서 급조된 남북 단일팀 구성이 선수들의 노력을 훼손한다고 비판합니다. 스포츠가 정치적 목적에 이용되는 것에 반대 목소리를 냅니다.
평등과 공정의 가치가 훼손되었다고 주장하며 정부의 보여주기식 행정을 꼬집었습니다.
우리 선수들의 출전 기회가 박탈되는 것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올림픽이 평화의 장이 되어야 함에는 동의하나, 그 과정 또한 정의로워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2019
[노재팬 운동 적극 참여]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대응하여 대대적인 일본 제품 불매 운동(No Japan)을 전개합니다. 경제적 보복에 맞서는 국민적 결집을 호소하며 선봉에 섭니다.
일본 브랜드 매장 앞이나 대형 마트에서 불매 운동 동참을 독려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습니다.
일본의 부당한 경제 압박을 전 세계에 고발하는 온라인 캠페인을 병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정부의 사과 없이는 불매 운동을 멈추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2020
[코로나19 방역 수칙 준수 촉구]
팬데믹 상황에서 마스크 쓰기와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방역 수칙 준수 캠페인을 벌입니다.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개인의 희생과 협력이 필요함을 알립니다.
지하철역과 광장에서 시민들에게 무료로 마스크를 나누어 주며 방역의 중요성을 홍보했습니다.
방역 수칙을 위반하는 종교 시설이나 단체들에 대해 엄중한 자제를 촉구했습니다.
위기 상황일수록 '나'보다 '우리'를 생각하는 성숙한 시민 의식을 가질 것을 당부했습니다.
2021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결정에 대해 인류에 대한 범죄라며 규탄합니다. 우리 어민들의 생존권과 해양 생태계를 지키기 위한 투쟁을 선언합니다.
바다를 공유하는 인접 국가들의 동의 없는 방류는 절대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오염수 방류가 가져올 환경적 재앙에 대해 과학적인 검증과 투명한 정보 공개를 요구했습니다.
국제 해양 재판소 제소 등 정부 차원의 강력한 외교적 조치를 촉구했습니다.
2023
[정치권 돈 봉투 의혹 고발]
정치권의 부패한 관행인 돈 봉투 살포 의혹에 대해 철저한 수사와 엄벌을 요구합니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매표 행위를 근절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검찰청 앞에서 고발장을 접수하며 연루된 정치인들의 정계 은퇴를 요구했습니다.
깨끗한 정치 문화를 만들기 위해 유권자들이 먼저 감시의 눈을 부릅떠야 함을 역설했습니다.
부패한 권력은 반드시 심판받는다는 선례를 남겨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2024
[반국가 세력 척결 운동]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안보를 위협하는 세력들에 대해 강력한 비판 활동을 전개합니다.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국민적 단합을 호소합니다.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려는 시도들에 대해 단호히 맞서 싸울 것을 선언했습니다.
애국심을 고취하는 다양한 퍼포먼스를 통해 젊은 세대의 국가관 확립을 돕고자 했습니다.
시대가 변해도 국가를 지키는 마음은 변치 않아야 함을 강조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갑니다.
2025
[지속되는 정의의 목소리]
창립 이후 현재까지 변함없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비추고 정의를 외칩니다. 활빈당은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끊임없이 진화하는 시민 운동의 모델이 됩니다.
과거 무장 투쟁에서 현대의 1인 시위로 형식은 바뀌었으나 그 근본 정신은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권력의 감시자이자 민중의 대변인으로서 멈추지 않는 행보를 약속했습니다.
활빈당의 역사는 우리 현대사의 굴곡진 면을 그대로 반영하며 미래를 향해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