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선로동당

공산당, 정치 단체, 역사적 정당, 한국 좌익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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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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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 정치 단체, 역사적 정당, 한국 좌익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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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6년 남한의 주요 좌파 세력이 합쳐 창당된 거대 공산당 • 2·7파업 제주 4·3 사건 여순 14연대 반란 등 격렬한 투쟁과 폭동 주도 • 대한민국 정부의 강력한 탄압으로 지상 활동 사실상 소멸 • 월북한 주요 인물들은 한국 전쟁 이후 김일성에게 숙청되며 와해 • 대한민국 현대사 초기 혼란과 갈등의 중심에 있던 핵심 정치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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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광복과 좌파 세력 재정비]

해방 후 남한에는 여러 좌파 정당이 난립했으나,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등으로 조선공산당의 활동이 위축되자, 남한 내 사회주의·공산주의 세력을 재정비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습니다.

이는 이후 남로당 결성의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1946

[남로당 대통합 창당]

서울에서 조선공산당, 남조선신민당, 조선인민당이 대대적인 합당을 통해 '남조선로동당'이라는 거대 공산당 조직이 공식 출범했습니다.

초대 위원장에는 허헌, 부위원장에는 박헌영이 선출되었으나, 당내 주도권 문제로 박헌영과 여운형 간의 갈등이 깊어져 결국 여운형은 탈당 후 근로인민당을 창당하게 됩니다.

[허헌 위원장 대외선언]

남로당의 허헌 위원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사회로동당'을 기회주의적이고 영웅주의적이라 비난하며, 진정한 독립과 인민의 이익을 위한다면 남로당에 합류해 함께 싸울 것을 공개적으로 촉구했습니다.

1947

[제주 3.1절 발포 사건]

제주도에서 열린 3.1절 기념식 중 경찰이 어린아이를 말로 치고 지나가는 사건이 발생하자, 이에 항의하던 도민들에게 경찰이 발포하여 12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이후 남로당을 중심으로 한 민관 총파업으로 이어져 제주도민과 당국 간의 갈등이 격화되는 도화선이 됩니다.

1948

[전국 2·7 총파업 발생]

남로당이 강경 투쟁으로 전환하며 주도한 '2·7 총파업'이 서울을 포함한 전국에서 대규모로 발생했습니다.

노동자들이 통신과 운송 시설의 가동을 전면 중단하며 당시 정부에 대한 강력한 저항을 보여주었습니다.

[제주 4·3 무장 봉기]

1947년 3.1절 발포 사건 이후 제주도민의 불만이 고조되던 중, 남로당 소속 김달삼 등이 5.10 총선거와 남한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며 무장봉기를 일으켰습니다.

미군정과 조병옥 경무부장의 강경 진압 의지로 인해 김익렬 연대장과 김달삼 간의 평화 회담이 무산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이후 10월, 정부군이 대대적인 소탕 작전에 돌입하여 최대 수만 명에 달하는 제주도민이 살해당하고 중산간 마을의 95%가 불에 타는 참혹한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남북 로동당 연합중앙]

남로당은 북로당과 본격적인 통합을 위해 '연합중앙위원회'를 설치하며 힘을 합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여순 14연대 반란 발발]

남로당원이었던 육군 14연대 상사 지창수가 제주 4.3 진압 명령에 항명하며 부대를 이끌고 봉기, 여수와 순천 일대를 장악했습니다.

이는 지창수의 우발적인 행동이었으나, 이후 남로당 당중앙의 승인을 받게 됩니다.

이 반란은 10월 27일 진압되었고,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남로당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에 들어가면서 사실상 남로당의 지상 활동은 소멸하게 됩니다. 수천 명의 민간인이 반란 공모자로 몰려 살해당하는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박정희, 남로당 혐의 체포]

당시 육군본부 작전정보국에 근무하던 박정희 소령이 여수·순천 사건 연루 및 남로당 하부조직책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감형되고 형 집행이 정지되었습니다.

1949

[박정희, 군에서 예편]

여순사건 연루 혐의로 인해 군에서 강제 예편되었던 박정희는 이후 정보국 문관으로 전환하여 근무하게 됩니다.

[조선로동당 비밀 합당]

남로당은 북로당과 공식적으로 합당하여 '조선로동당'으로 재탄생했습니다.

그러나 이 합당 사실은 대외적으로나 일반 당원들에게도 철저히 숨겨진 비밀이었습니다.

대한민국 내에서 활동하는 남로당원들에게는 여전히 '남로당'이라는 이름으로 지시가 내려져, 마치 남한 내부의 자발적 저항인 것처럼 위장되었습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에야 '조선로동당'이라는 이름이 공개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1953

[남로당파 대숙청 시작]

한국 전쟁이 끝나갈 무렵, 북한으로 월북했던 박헌영을 주축으로 한 남로당 출신 세력은 김일성 주도의 만주파와 대립했습니다.

김일성은 전쟁 실패의 책임을 남로당파에게 돌리며 대규모 숙청을 시작, 리승엽과 박헌영을 '미제 간첩' 혐의로 구속하며 핵심 인물들을 차례로 제거했습니다.

이는 남로당파의 사실상 와해를 의미했습니다.

이 숙청은 이후 '8월 종파 사건'이 있기 전 남로당 세력을 사실상 와해시켰으며, 북한 내에서도 남로당의 잔존 세력은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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