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당
정당, 보수 정당, 대한민국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8:22
대한민국의 주요 보수 정당.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으로 창당 군사정권 이후 첫 민간 정부를 배출했습니다. 1995년 신한국당으로 개명하며 쇄신을 꾀했으나 노동법 날치기 정치 공작 외환 위기 등 논란 속에 1997년 한나라당으로 통합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 3당 합당 전격 합의
- 민주자유당 창당
- 노태우 총재직 사퇴
- 노태우 민자당 탈당
- 최초 여당 없는 내각 출범
- 김영삼 대통령 당선
- 1회 지방선거 참패
- 신한국당 창당 및 개명
- 김영삼 만주폭격 발언
- 노동법 날치기 사건
- 전두환·노태우 사면론 대두
- 사면 논의 본격화
- 이회창 대선 후보 선출
- 사면 실무 검토 완료
- 이인제 지사 사퇴 결정
- 김대중 사면론 제기
- 이회창 조기 석방 요구
- 김영삼 사면 입장 선회
- 전두환-이회창 메시지 교환
- 이회창 총재 선출
- 김대중 비자금 폭로 시작
- 이인제 국민신당 창당
- 김대중 검찰 고발
- 김대중 비자금 수사 개시
- 비자금 수사 유보 발표
- 김영삼 신한국당 탈당
- 이회창-조순 단일화 합의
- 한나라당 창당 및 해산
- IMF 구제금융 체결
- 김대중 대통령 당선
- 전두환·노태우 사면
1987
[노태우 대통령 당선]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집권 여당인 민주정의당 후보 노태우가 당선되었습니다.
그러나 민주화 열망 속에 다음 총선에서 여소야대 정국이 형성되며, 집권 여당은 국정 운영에 난항을 겪고 보수대연합의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1988
[13대 총선 여소야대]
제13대 총선에서 민주정의당이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며 여소야대 국면이 형성되었습니다.
이는 정기승 대법원장 임명 동의안 부결 등 국정 운영에 난항을 가져왔고, 군사정권 청산 요구와 맞물려 3당 합당의 주요 배경이 됩니다.
1990
[3당 합당 전격 합의]
집권 민주정의당의 노태우, 통일민주당의 김영삼, 신민주공화당의 김종필 세 대표가 여소야대 정국 타개와 정권 안정을 목표로 전격적인 보수대연합에 합의했습니다.
이는 이튿날 거대 여당의 탄생을 예고하는 중대한 결정이었습니다.
[민주자유당 창당]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하여 '민주자유당'(민자당)이 공식 출범했습니다.
이로써 개헌선을 훨씬 초과하는 218석을 차지하며 절대 권력을 쥐게 되었으나, 민주 진영 내 노무현 등 8인이 합당에 반발하며 '꼬마민주당'을 결성하고 분열했습니다.
[민자당 1차 전당대회]
민주자유당 창당 후 첫 전당대회가 개최되어, 최고위원회의를 중심으로 하는 단일성 집단지도체제 당헌과 내각제 추진 의사가 담긴 강령을 채택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이 총재로 추대되고, 김영삼 최고위원이 대표최고위원으로 지명되며 당의 골격이 잡혔습니다.
1992
[노태우 총재직 사퇴]
노태우 대통령이 후계자 내정 문제와 김영삼과의 당권 갈등 끝에 민주자유당 총재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이는 김영삼에게 대권과 당권을 이양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김영삼 총재 취임]
노태우 총재의 사퇴 다음 날, 민주자유당 상무위원회는 김영삼 대표를 신임 총재로 선출했습니다.
노태우는 명예총재로 추대되었고, 김종필이 새로운 대표로 지명되며 김영삼 체제가 공식화되었습니다.
[노태우 민자당 탈당]
노태우 명예총재가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모든 당직을 내려놓고 민주자유당을 공식 탈당했습니다.
이는 대선 직전 현직 대통령이 집권당을 탈당하는 전례를 남겼습니다.
[노태우 거국중립내각 선언]
노태우 대통령이 민주자유당 탈당에 이어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한 대선 관리를 위한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선언했습니다.
이는 국정 운영의 안정화를 위한 파격적인 조치였습니다.
[최초 여당 없는 내각 출범]
노태우 대통령의 거국중립내각 선언에 따라 대한민국 역사상 '사상 첫 여당이 없는 중립내각'이 공식 출범했습니다.
이는 대선 관리의 중립성을 확보하고 국민적 신뢰를 얻으려는 전례 없는 시도였습니다.
세계최초, 최대 등 기록적인 사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집권 여당이 없는 중립내각이 출범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당선]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 김영삼이 당선되며 정권 연장에 성공했습니다.
이는 5·16 군사정변 이후 '첫 민간 정부'를 출범시켰다는 역사적 의의를 가졌으며, 김영삼은 금융실명제 등 과거사 청산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1993
[민자당 당헌 개정]
민주자유당 상무위원회는 최고위원제를 폐지하고 대표위원제를 신설하는 단일지도체제 당헌 개정안을 의결했습니다.
이는 당의 운영 체제를 보다 효율적이고 단일화된 형태로 바꾸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1995
[민자당 3차 전당대회]
민주자유당 전당대회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총재로 재선출되었습니다.
김영삼 총재는 김종필 대표의 사퇴로 공석이 된 대표최고위원에 이춘구 국회부의장을 지명하며 당내 김영삼 체제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1회 지방선거 참패]
민주자유당은 공화계와의 심각한 갈등, 김종필계의 탈당,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문제 등으로 지지율이 급락하며 제1회 지방선거에서 참패했습니다.
이 결과는 총선을 1년 앞두고 당의 대대적인 개편이 시급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신한국당 창당 및 개명]
김영삼 대통령이 제5공화국의 잔재가 강한 '민주자유당'이라는 당명을 버리고 '신한국당'을 창당했습니다.
민정계·공화계 등 기존 세력을 배제하고 이회창, 박찬종, 이재오 등 각계 스타급 인사를 대거 영입하여 대대적인 물갈이를 단행, 당의 쇄신을 선언했습니다.
1996
[신한국당 1차 전당대회]
신한국당의 첫 전당대회에서 당명 변경 및 일류국가건설 의지를 담은 정강정책이 채택되었습니다.
이는 새로운 당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대외적으로 쇄신 의지를 표명하는 자리였습니다.
[이홍구 대표위원 취임]
이홍구 전 통일원 장관이 신한국당의 새로운 대표위원으로 취임했습니다.
이는 당의 안정과 내부 쇄신을 꾀하기 위한 지도부 교체의 일환이었습니다.
[김영삼 만주폭격 발언]
김영삼 대통령이 전방부대 시찰 중 "6.25 당시 만주를 폭격했으면 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고 발언하며 여야 간 극한 언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야당은 대통령 탄핵 소추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비난했고, 여당은 안보 의식 강조 차원의 발언이라며 옹호했습니다.
이 발언은 한중 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논란을 낳았습니다.
[노동법 날치기 사건]
신한국당 의원들이 국회의장 부재 중 새벽에 기습적으로 노동법 개정안 등 11개 법안을 날치기 통과시켰습니다.
이는 정리해고를 법제화하는 내용을 포함했으며, 야당의 강력한 반발과 노동계의 전면 총파업을 야기하며 국민적 비난 여론을 초래했습니다.
이 사건은 신한국당의 반민주성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으로, 이듬해 대선 패배의 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1997
[이회창 대표위원 취임]
이회창 전 국무총리가 신한국당 대표위원으로 취임했습니다.
국무총리 시절 김영삼 대통령에 항명한 전적이 있는 이회창의 영입은 신한국당의 쇄신 의지를 보여주는 인선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전두환·노태우 사면론 대두]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형 집행 확정 전부터 신한국당 내부에서 이회창 대표와 김윤환 고문 등 주요 인사들이 국민 대화합을 명분으로 사면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대선을 앞둔 민감한 정치적 이슈로 부상했습니다.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는 국민 대화합을 위해 사면에 찬성 입장을 밝히겠다는 보도가 나왔고, 김윤환 신한국당 고문도 김영삼 대통령에게 사면을 건의했다고 밝혔습니다.
[사면 논의 본격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형 집행이 최종 확정되자 신한국당 내부에서 사면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김윤환 고문 등 구 여권 인사들이 '죄는 주되 벌은 면해야 한다'는 발언으로 사면 찬성 분위기를 주도했습니다.
법무부 또한 광복절 사면 가능성을 시사하며 실무 검토를 완료했다고 보도되었습니다.
[이만섭 대표 권한대행]
이만섭 의원이 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을 맡았습니다.
이는 당의 대선 체제 전환기에 잠시 비어있는 지도부 공백을 메우는 역할이었습니다.
[이회창 대선 후보 선출]
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이회창이 다수 후보를 제치고 제15대 대통령 후보로 최종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1차와 2차 투표에서 모두 1위를 기록하며 당의 대선 주자로 확정되었습니다.
[사면 실무 검토 완료]
법무부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사면에 대한 실무 검토를 완료했다고 보도되었습니다.
추징금 문제 등 법적 논란 소지를 검토했으나, 사실상 대통령의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지 사면이 가능한 상태로 준비되었음을 시사했습니다.
[이인제 지사 사퇴 결정]
이인제 경기지사가 9월 초 지사직 사퇴를 결정하며 신한국당 대선 경선 결과에 불복하고 독자 출마 의지를 강하게 시사했습니다.
이는 집권당의 분열을 예고하며 대선 정국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김대중 사면론 제기]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대통령 후보가 간담회에서 "김영삼 대통령 임기 내에 전두환·노태우를 사면하여 동서화합의 길을 열겠다"고 밝히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이는 국민적 관심을 받으며 다른 후보들의 경쟁적인 사면 공약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회창 조기 석방 요구]
이회창 신한국당 대선 후보가 보수 세력 결집과 국민 지지 확보를 위해 김영삼 대통령에게 추석 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조기 석방을 요구했습니다.
이는 김대중 후보의 사면론에 대한 맞대응 성격이 강했습니다.
같은 날 김대중 후보는 SBS 프로그램에서 전두환·노태우 용서론을 강조했습니다.
[김영삼 사면 입장 선회]
당초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며 사면 요구에 소극적이던 김영삼 대통령이 입장을 바꿔 대선 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면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대선 정국의 복잡성을 더했습니다.
[전두환-이회창 메시지 교환]
수감 중이던 전두환이 이회창 후보에게 사면 노력에 대한 감사 메시지를 보냈고, 이회창 또한 "고생 많으시다, 추석 때 나오시길 바랬는데 아쉽다"고 화답한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이회창은 간담회에서 전두환·노태우 사면론에 적극 찬성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이회창 총재 선출]
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이회창 대선 후보가 총재로 선출되었고, 김영삼 대통령은 명예총재로 추대되었습니다.
이후 이회창 총재는 집단지도체제로 개편된 당헌에 따라 이한동 고문을 새로운 대표최고위원으로 지명했습니다.
[김대중 비자금 폭로 시작]
신한국당 강삼재 사무총장이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의 670억 원 비자금 조성 의혹을 폭로하며 대선 정국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강 사무총장은 김대중 후보가 '신앙고백'까지 하며 국민을 기만했다고 맹비난했습니다.
이 폭로로 국민회의 내부에서도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신한국당은 이후 입출금 계좌와 수표 일련번호 등을 추가 공개하며 공세를 강화했습니다.
[비자금 계좌 공개]
신한국당은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 의혹과 관련하여 구체적인 입출금 계좌와 수표 일련번호를 공개하며 공세를 이어갔습니다.
이는 비자금 의혹의 심각성을 강조하고 김대중 후보를 압박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이인제 국민신당 창당]
이인제 경기지사가 신한국당 대선 후보 경선 패배를 불복하고 탈당하여 '국민신당'을 창당했습니다.
이는 신한국당 지지율 하락과 함께 집권당의 대선 구도에 큰 악영향을 미쳐 이회창 후보에게는 결정적인 악재로 작용했습니다.
[김대중 134억 기업 자금 폭로]
신한국당은 김대중 후보가 야당 총재직을 이용해 기업으로부터 134억 7천만원을 챙긴 사실을 추가 폭로하며 정국을 더욱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이는 비자금 공방을 더욱 격화시켰습니다.
[김대중 친인척 비자금 폭로]
신한국당이 김대중 후보 친인척 명의의 378억 원 비자금 의혹을 추가 폭로하며 비자금 공방이 극한 대치로 치달았습니다.
이는 대선 정국을 송두리째 흔들었습니다.
[김대중 검찰 고발]
신한국당이 김대중 후보를 조세포탈 및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며 비자금 의혹 사태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습니다.
한국일보 토론회에서도 이회창과 김대중 간 비자금 공방이 치열하게 오갔습니다.
[김대중 비자금 수사 개시]
검찰이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 의혹에 대해 공식 수사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대선을 앞두고 검찰의 중립성 논란과 함께 정국에 큰 영향을 미치며 민감한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비자금 수사 유보 발표]
검찰이 김대중 후보의 비자금 수사를 대선 이후로 유보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악화된 경제 상황과 호남 지역의 국민적 저항, '제2의 광주사태' 우려 등 복합적인 배경에서 결정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었습니다.
이회창 후보는 즉각 재수사를 요구하며 김영삼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했습니다.
[새정치국민회의 사면 촉구]
새정치국민회의 박정수 부총재가 국회 본회의 연설에서 김대중 후보의 '정치 보복 절대 없음' 약속을 강조하며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촉구했습니다.
이는 김대중 후보의 사면론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대선 공약 경쟁을 심화시켰습니다.
[김영삼 신한국당 탈당]
김영삼 대통령이 이회창 대선 후보의 지속적인 탈당 요구를 수용하며 신한국당을 공식 탈당했습니다.
같은 날 신한국당은 민주당과의 '3김 시대 청산'과 'DJP 연합' 부당성을 주장하며 당 대 당 통합 및 대통령 후보 단일화에 전격 합의했습니다.
[이회창-조순 단일화 합의]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와 민주당 조순 총재가 '3김 시대 청산'과 'DJP 연합'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당 대 당 통합 및 대통령 후보 단일화에 합의했습니다.
이에 따라 조순이 총재, 이회창이 대선 후보로 나서기로 결정되었습니다.
[한나라당 창당 및 해산]
신한국당과 민주당이 공식 통합하며 '한나라당'이 출범하고, 동시에 신한국당은 해산했습니다.
이회창은 한나라당의 명예총재 및 제15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추대되었습니다.
이는 보수 정치 세력의 중대한 재편을 알리는 사건이었습니다.
[IMF 구제금융 체결]
김영삼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차입하는 조건으로 양해각서를 체결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경제 주권이 IMF에 넘어가 'IMF 체제'가 공식화되었음을 선언하며, 국가 경제의 전례 없는 위기를 보여준 사건입니다.
세계최초, 최대 등 기록적인 사실: 대한민국의 경제 주권을 국제 기구에 넘기는 전례 없는 위기 상황을 맞았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며 이회창 후보는 낙선했습니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정권 교체를 맞이하게 되었고, 한나라당은 10년간 야당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전두환·노태우 사면]
김대중 당선자와 김영삼 대통령의 협의에 의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특별 사면되었습니다.
대선 기간 동안 주요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사면을 공약했던 것이 반영된 결과로, 외국 언론에서는 '용기 있는 결정'이라고 평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