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공화당 (대한민국)
정당, 보수주의 정당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8:20
대한민국의 권위주의적 보수주의 정당. 1963년 5·16 군사정변 주도 세력에 의해 창당. 박정희 대통령 당선 이후 17년간 집권 여당으로 대한민국 제3공화국을 이끌었다. 권고병 장관 해임안 가결과 이어진 4·8 항명 사건으로 당내 숙청이 이루어졌다. 박정희 3선 개헌을 주도하며 유신체제의 핵심 정치 세력으로 기능했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해산될 때까지 대한민국의 최장수 정당 기록을 유지했다.
1963
[민주공화당 창당]
5·16 군사정변 주도 세력과 기존 정치인, 학계 인사들이 모여 민주공화당을 창당했다.
초대 총재에는 정구영, 당 의장에는 김정렬이 선출되었다.
창당 준비 과정에서 야권을 중심으로 군사 정부의 신당이 좌익 '사회노동당'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으나, 군사 정부는 이를 부인하며 보수 양당제를 희망한다고 해명했다.
[박정희 대통령 후보 추대]
민주공화당 제2차 전당대회에서 당헌이 개정되었고,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던 박정희가 제5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공식 추대되었다.
[박정희 총재 추대]
박정희가 철원비행장에서 예편하자, 민주공화당은 제3차 임시 전당대회를 통해 박정희를 총재이자 대통령 후보로 정식 추대했다.
[5대 대선 승리와 집권]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후보가 당선되면서 민주공화당은 17년간 대한민국 집권 여당으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1965
[박정희 총재 재추대]
민주공화당 제5차 전당대회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총재로 재추대되었고, 김종필 전 의장이 당의장으로 임명 동의되며 정책 방향이 채택되었다.
1967
[6대 대선 후보 박정희 추대]
민주공화당 제6차 전당대회에서 대한민국 제6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박정희 대통령이 추대되었고, 대선 공약이 채택되었다.
1969
[4·8 항명 사건 발생]
신민당이 제안한 권고병 문교부장관 해임권고건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민주공화당 내 반란표로 가결되는 '4·8 항명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여당이 제안한 장관 해임안이 반란표로 가결된 역사상 두 번째 기록이었다.
박정희 총재는 즉시 주동자 처단을 지시했으며, 이 사건은 개헌 논의에 대한 반대 의사 표명으로 해석되었다.
[항명 의원 제명]
박정희 총재의 지시에 따라 민주공화당은 의원총회에서 4·8 항명 사건을 주도한 양순직, 예춘호 등 5명의 의원을 제명했다.
[당원 대규모 제명]
민주공화당은 당명불복을 이유로 중앙위원 11명, 지구당부위원장 4명을 포함한 총 93명의 당원을 대규모로 제명하는 숙당 조치를 단행했다.
[3선 개헌 추진 결의]
민주공화당 제7차 임시 전당대회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 집권을 위한 3선 개헌 추진이 공식적으로 결의되었다.
1971
[7대 대선 후보 박정희 추대]
민주공화당 제8차 전당대회에서 대한민국 제7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박정희 대통령이 추대되었고, 백남억 의장서리가 당의장으로 임명 동의되었다.
1972
[유신정우회 조직]
10월 유신 선포 이후, 박정희 총재에 의해 친위 조직이자 제2여당 격인 유신정우회가 조직되어 민주공화당과는 별도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79
[박정희 총재 피살]
민주공화당의 총재를 겸하고 있던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되면서 당은 급격한 혼란과 함께 존립 위기에 직면했다.
[김종필 총재 추대]
박정희 총재 피살 이후, 민주공화당 당무회의에서 김종필 전 총리가 새 총재로 추대되며 당의 수습에 나섰다.
1980
[민주공화당 해산]
신군부의 정치활동금지법에 따라 민주공화당은 공식적으로 해산되었다.
당의 재산은 민주정의당에 양도되었고, 구 공화당 인사 중 일부는 한국국민당을 창당하며 명맥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