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대한민국 정당, 보수 정당, 우익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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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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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보수 정치의 상징이었던 자유한국당은 1997년 한나라당으로 시작해 새누리당을 거쳐 자유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꾸며 격동의 역사를 보냈습니다. 이명박과 박근혜 두 대통령을 배출하며 10년 넘게 집권 여당의 역할을 수행했으나 탄핵과 연이은 선거 패배로 위기를 겪었습니다. 결국 2020년 미래통합당으로 통합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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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3당 합당으로 민자당 탄생]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으로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주자유당이 출범했습니다.

이 합당은 헌정 사상 최초로 의석수가 단독 개헌선을 넘는 초거대 여당을 탄생시켰지만, 동시에 '독재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1995

[민자당, 자민련으로 분당]

김영삼 대통령의 '개혁' 요구에 반발한 김종필의 공화계가 민주자유당을 탈당하고 독자적인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며 당이 분열되었습니다.

[민자당 '신한국당'으로 개명]

비자금 사건과 과거사 청산 등으로 위기에 처한 민주자유당이 '신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전면적인 인적 쇄신을 단행하며 새로운 보수 정당으로 거듭났습니다.

이는 민주자유당의 사실상 해체를 의미했습니다.

1996

[15대 총선, 원내 1당 등극]

'젊은 피 수혈'을 내세운 신한국당이 제15대 총선에서 139석을 얻으며 원내 1당으로 부상했습니다.

특히 서울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등 압도적인 성과를 보여주었습니다.

1997

[보수 대통합 '한나라당' 창당]

신한국당 이회창 대선 후보와 민주당 조순 후보의 전격적인 단일화 합의로 양당이 합당하여 '한나라당'이 출범했습니다.

이는 대선 정국과 외환 위기 속에서 보수 세력이 결집한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이회창 후보는 당 총재로 선출되어 모든 당권을 장악했으며, 'YS 이미지 지우기'를 단행하며 김영삼 전 대통령을 전격 추방하기도 했습니다.

[15대 대선, 야당으로 전락]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김대중 후보에게 패배하며 창당 한 달 만에 야당으로 전환되었습니다.

IMF 외환 위기와 이회창 후보의 병역 기피 의혹이 패배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총풍 사건 등 불법적인 선거 개입 시도까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권 교체는 막지 못했습니다.

1998

[지방선거 참패, 위기 봉착]

김대중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며 국민 여론이 악화되던 한나라당은 영남과 강원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지방선거 참패를 겪으며 큰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이회창 총재, 당권 장악]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조순 총재가 사퇴하자, 이회창이 한나라당의 실질적인 총재로 부상하며 당권을 장악했습니다.

이는 당내 리더십 재편의 시작이었습니다.

2000

[총선 승리, 1당 지위 유지]

이회창 총재의 적극적인 활동과 김대중 정부의 권력형 비리 사건을 활용한 공격으로 한나라당은 제16대 총선에서 원내 1당 지위를 유지하며 공동 여당의 의석수를 넘어섰습니다.

'젊은 피 수혈'을 명목으로 오세훈 등 신선한 인물들을 영입하기도 했습니다.

2002

[박근혜 '한국미래연합' 창당]

이회창 대세론에 반발한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하며 보수 진영의 분열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방선거 압승]

한나라당이 호남, 충청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지방선거 압승을 거두며 대선을 앞두고 유리한 고지를 점했습니다.

[박근혜 복귀, 보수 재결집]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의원의 한국미래연합이 한나라당에 다시 흡수 합당되면서 보수 진영이 재결집되었습니다.

[16대 대선 또다시 패배]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노무현 후보에게 또다시 패배하며 정계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차떼기' 비리 의혹과 아들 병역비리 논란이 선거에 큰 악재로 작용했습니다.

이회창은 이 패배를 기점으로 모든 당권을 내놓았고, 한나라당은 새로운 리더십을 모색하게 됩니다.

2003

[개혁파 대거 탈당]

한나라당 내 개혁 성향 인사들이 노무현 대통령과 갈등을 반복하던 당에 실망하고 '열린우리당'으로 대거 이동하며 한나라당은 또다시 분열을 겪었습니다.

[서청원 대표 '차떼기' 사퇴]

이회창 총재가 대선 출마를 위해 물러난 뒤 대표로 선출된 서청원이 '차떼기 사건'으로 인해 사퇴하며 한나라당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혔습니다.

2004

[17대 총선 패배, 2당 전락]

박근혜 대표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제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에 참패하며 민주자유당 시절부터 이어져 오던 원내 1당 지위를 빼앗기고 2당으로 내려앉았습니다.

[노무현 탄핵안 가결 동참]

한나라당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발의에 동조하며 탄핵안이 가결되었습니다.

이는 헌정 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소추였으며,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적 지지율을 10%대까지 추락시키는 '탄핵 역풍'을 불러왔습니다.

[박근혜 '천막당사' 대표 취임]

탄핵 역풍으로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을 구원하기 위해 박근혜 의원이 당 대표로 취임했습니다.

그녀는 '천막 당사'를 세우고 국민에게 사죄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로 당을 쇄신하며 '선거의 여왕'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2006

[지방선거 대대적 압승]

박근혜 대표의 리더십 아래 한나라당은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대대적인 압승을 거두며 정권 교체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자민련 흡수 합당, 보수 재결집]

사실상 잊혀졌던 자유민주연합을 한나라당이 흡수 합당하며 보수 정당의 외연을 확대하고 재결집을 시도했습니다.

2007

[이명박 대선 후보 확정]

서울시장으로서 인기를 얻은 이명박이 박근혜를 누르고 한나라당의 제17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친이계와 친박계 간의 치열한 계파 갈등이 극심했습니다.

[17대 대선 승리, 정권교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되면서 10년 만에 정권을 되찾았습니다.

이로써 한나라당은 다시 집권 여당의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2008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명박 후보가 제17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며 한나라당은 명실상부한 여당이 되었고,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공천파동, 친박연대 창당]

제18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친박근혜계 의원들이 대거 탈당하여 '친박연대'를 창당하며 당내 갈등이 극심해졌습니다.

이는 보수 진영의 또 다른 분열이었습니다.

[18대 총선 압승, 여대야소]

한나라당이 제18대 총선에서 153석을 얻어 압승하며 국회 내 '여대야소' 정국을 형성, 안정적인 국정 운영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미국산 소고기 촛불시위]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논란으로 대규모 촛불 시위가 발생하고 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국민적 실망감이 커지며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급락했습니다.

[박희태 신임 대표 선출]

지지율 추락 속에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이 정몽준 회장을 누르고 새로운 대표로 선출되었습니다.

2009

[재보궐선거 대참패]

촛불 시위 등으로 인한 지지율 추락의 결과로 한나라당은 2009년 재보궐선거에서 참패를 당하며 위기를 맞았습니다.

2010

[지방선거 참패, 정몽준 사임]

천안함 피격 사건이라는 안보 이슈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수도권과 영남 일부 지역에서만 승리하며 참패했습니다.

이로 인해 정몽준 대표가 사임했습니다.

2011

[홍준표 대표 선출]

당내 갈등과 지지율 하락 속에서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홍준표가 새로운 대표로 선출되었습니다.

[디도스 사태, 지도부 총사퇴]

최구식 의원 수행비서의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과 야권 연대로 인한 재보궐선거 참패로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와 지도부가 전원 사퇴하며 당이 붕괴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 취임]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의 '구원투수'로 박근혜 전 대표가 만장일치로 비상대책위원장에 추대되었습니다.

이는 당의 전면적인 재편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2012

[미래희망연대 흡수 합당]

보수 정당의 재결집 노력의 일환으로 한나라당이 미래희망연대를 흡수 합당했습니다.

[한나라당 '새누리당'으로 변경]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로 재편된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상징색도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변경하며 대대적인 이미지 쇄신을 시도했습니다.

[19대 총선 승리, 과반 확보]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 하락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은 제19대 총선에서 152석을 얻어 과반 의석 확보에 성공하며 승리했습니다.

[선진통일당 흡수, 보수 통합]

선진통일당을 흡수 합당하며 2000년대 중반 이후 분열되었던 제도권 보수 정당들이 새누리당으로 모두 통합되었습니다.

이로써 새누리당은 2017년까지 유일한 제도권 보수 정당이자 여당이 되었습니다.

[18대 대선 승리, 정권 연장]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51.6%의 득표율로 당선되면서 정권을 연장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는 1987년 이후 대선을 앞두고 당적을 버리지 않은 첫 대통령 사례를 만들었습니다.

박근혜는 당 대표 시절부터 사실상 당권을 쥐고 있었고, 대선을 통해 명실상부한 보수 진영의 리더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13

[박근혜 대통령 취임]

박근혜 당선자가 제18대 대통령에 취임하며 새누리당은 집권 여당의 지위를 확고히 했습니다.

2014

[세월호 침몰, 위기 봉착]

제6회 지방선거를 앞두고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하며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큰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재보궐 선거 연전연승]

세월호 참사에도 불구하고 7.30 재보궐선거에서 11명을 당선시키며 국정 운영 동력을 강화했습니다.

특히 호남 지역구(전남 곡성-순천)에서 이정현 의원이 당선되는 사상 최초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는 1987년 민주화 이후 호남 지역에서 보수 정당 후보가 당선된 최초 사례였습니다.

2016

[20대 총선 참패, 1당 상실]

공천 갈등과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불만으로 새누리당은 제20대 총선에서 122석을 얻어 원내 과반수 확보에 실패하고 16년 만에 원내 1당 지위를 더불어민주당에 내주며 충격적인 참패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수도권 완패, 영남 텃밭 이탈 등 역대 최악의 성적이었습니다.

[무소속 복당, 1당 복귀]

총선 참패 후 혁신비상대책위원회가 무소속 의원 4인의 복당을 승인하며 일시적으로 원내 1당 지위를 되찾았습니다.

[이정현 당 대표 선출]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친박계의 지원을 받은 이정현 전 최고위원이 당 대표로 선출되었습니다.

[대통령 탄핵, 비박계 동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비박계 의원들의 동조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었습니다.

이는 당에 큰 혼란과 지지율 하락을 가져왔습니다.

[이정현 대표 사의 표명]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이정현 대표가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비박계 '바른정당' 창당]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친박-비박 계파 갈등 심화로 비박계 의원 29명이 새누리당을 대거 탈당하고 '바른정당'을 결성하며 보수 정당 사상 최초의 분당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이로써 새누리당은 다시 원내 2당으로 내려앉았습니다.

[인명진 비대위원장 취임]

분당 사태로 위기에 처한 새누리당은 인명진 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만장일치 추대하며 당 재건을 모색했습니다.

2017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변경]

새누리당이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변경하며 새로운 시작을 알렸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최종 파면]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인용하여 대통령직에서 최종 파면했습니다.

이로 인해 자유한국당은 명목상 집권 여당의 지위를 상실했습니다.

[홍준표 대선 후보 선출]

자유한국당은 당내 경선을 통해 홍준표 경상남도지사를 제19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했습니다.

[19대 대선 패배, 1야당 전락]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게 패배하며, 9년 5개월 만에 제1야당으로 전환되었습니다.

대구·경북권을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참패하며 보수층의 이탈을 확인했습니다.

[홍준표 당 대표 당선]

제19대 대선 후보였던 홍준표가 자유한국당 대표에 당선되며 당권을 다시 쥐게 되었습니다.

[박근혜 제명, 보수 통합 추진]

홍준표 대표의 주도로 보수통합을 추진하며 박근혜 전 대통령을 당에서 제명했습니다.

[바른정당 탈당파 복당]

바른정당 통합파 8명의 의원이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하며 보수 진영의 재결집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2018

[늘푸른한국당 흡수 합당]

자유한국당이 늘푸른한국당을 흡수 합당하며 보수 세력 결집을 계속했습니다.

[지방선거 역대 최대 참패]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대구·경북을 제외한 모든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패배하고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53명 배출에 그치며 자유한국당 역사상 최대 참패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수도권과 부울경에서 완패하며 홍준표 대표가 사퇴했습니다.

[당사 영등포로 이전]

김성태 대행 체제 하에 자유한국당이 여의도 당사에서 영등포로 당사를 옮기며 '기득권 타파'와 '서민 정당'으로의 전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 했습니다.

[김병준 비대위원장 취임]

지방선거 참패로 홍준표 대표가 사퇴한 뒤,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되며 당 재건의 중책을 맡았습니다.

[전원책 조강특위 위원 합류]

전원책 변호사가 자유한국당의 인적 쇄신을 책임질 조직강화특별위원회(조강특위) 위원으로 합류하며 대규모 인적 청산을 예고했습니다.

[전원책 조강특위 해촉]

전원책 위원과 당 비대위 간의 전당대회 개최 시기 등 현안을 둘러싼 갈등으로 결국 전원책 위원이 해촉되었습니다.

2019

[5.18 망언 논란 발생]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 의원의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왜곡 및 폄하 발언으로 큰 악재가 발생하며 당의 지지율이 크게 하락했습니다.

[황교안 당 대표 선출]

리얼미터 조사에서 야권 차기 대권 주자 지지율 1위를 달리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출되며 자유한국당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2020

[미래통합당 통합, 당 해산]

자유한국당이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 등 여러 정당과 통합하여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으로 출범하며, 자유한국당은 1997년 창당 이후 23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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