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민주당
대한민국 정당, 야당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1:28:15
신한민주당은 제5공화국 시기 민주화를 열망하던 이들이 모여 창당한 야당입니다. 1985년 총선에서 야당 돌풍을 일으키며 단숨에 제1야당으로 우뚝 섰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양김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이민우 총재와의 갈등 끝에 분당되었습니다. 결국 1988년 총선에서 실패하며 짧은 역사를 마감했습니다.
1984
[정치활동 금지 해제]
제5공화국 시기, 민주화 운동가와 구여당 인사들에게 내려졌던 정치활동 금지가 해제되었습니다.
이는 기존 관제 야당에 실망한 국민들에게 새로운 정통 야당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5
[제1야당 위상 강화]
제12대 총선 돌풍 이후, 기존 야당인 민주한국당 소속 의원들이 신한민주당으로 대거 합류했습니다.
이로 인해 신한민주당의 의석수는 103석으로 크게 늘어나며 명실상부한 제1 야당으로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에 더욱 박차를 가했습니다.
기존 제1, 제2야당이던 민한당과 국민당은 소속 당선자들의 잇따른 탈당으로 12대 국회 개원 당시 교섭단체 등록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와해되었습니다.
[신한민주당 창당]
정치활동 금지가 해제된 인사들과 기존 야당 탈당파가 힘을 합쳐 신한민주당을 창당했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양김의 강력한 설득으로 이민우가 총재직과 정치 1번지 종로.중구 출마를 수락하며 돌풍을 예고했습니다.
[2.12 총선 돌풍]
창당 한 달도 안 된 신한민주당이 제1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며 정국을 뒤흔들었습니다.
전두환 정권의 안기부 예상을 뒤엎고 총재 이민우의 종로.중구 당선과 함께 제1 야당으로 급부상하며 정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결과로 노신영 안기부장이 경질되는 사태까지 발생했습니다.
신한민주당은 지역구 50석과 전국구 17석을 확보하며 돌풍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당초 안기부는 신한민주당이 12~13석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 결과는 기존 제1야당이던 민한당과 국민당을 밀어내고 압도적인 제1 야당으로 자리매김한 것입니다. 이는 전두환 대통령의 격노를 불러왔고, 잘못된 분석을 내놓은 노신영 안기부장이 사실상 경질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1986
[이민우 구상 발표]
이민우 총재가 '전두환 정권이 민주화 조치를 먼저 단행하면 내각제 개헌을 수용할 수 있다'는 이른바 '이민우 구상'을 발표했습니다.
이는 김영삼, 김대중 양김을 중심으로 한 대통령 직선제 개헌파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왔고, 당내 내분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1987
[통일민주당 창당, 분당]
이민우 구상으로 촉발된 당내 갈등 끝에, 김영삼과 김대중 양김이 자파 의원 74명을 이끌고 집단 탈당하여 통일민주당을 창당했습니다.
이로 인해 한때 야당 돌풍의 주역이었던 신한민주당은 존립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었습니다.
1988
[제13대 총선 참패 및 해산]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신한민주당은 단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하며 참패했습니다.
결국, 정당법에 따라 등록이 취소되며 해산 수순을 밟게 되면서, 야당 돌풍의 역사는 막을 내렸습니다.